제9회 서울환경영화제가 5월9일부터 15일까지 CGV용산에서 열린다. 총 829편이 출품된 올해는 11개국 20편의 경쟁부문 작품을 비롯해 포커스 2012, 기후변화와 미래, 그린 파노라마, 한국 환경영화의 흐름, 지구의 아이들 등 다양한 섹션에 걸쳐 총 112편의 환경영화가 상영된다. 개막작은 민병훈, 이세영 감독의 <아! 굴업도>. 골프장 개발 논란으로 시끄러운 서해안의 진주 굴업도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품이다. 서울환경영화제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내년이 10주년이다. 10주년을 앞두고 지난 9년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점에서 이번 환경영화제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쟁부문과 함께 눈에 띄는 건 포커스 2012 섹션이다. 올해 주제는 ‘후쿠시마, 그 이후의 이야기들’로, 3·11 대지진을 소재로 한 일본 장편영화 3편, 단편영화 4편 등 총 7편이 공개된다. 영화제 시간 및 상영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www.gffis.org)를 참조할 것.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Friends after 311
이와이 슌지 / 2011년 / 120분 / 일본 / 포커스 2012 : 후쿠시마, 그 이후의 이야기들
지난해 3월11일 일본 센다이 지역을 휩쓴 대지진은 일본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영화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일본 영화인들이 3·11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와이 슌지가 만든 TV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도 그중 한편인데, 이번 환경영화제에서 공개되는 것은 TV 버전을 재편집한 극장용 버전이다.
영화는 이와이 슌지를 비롯해 배우 마쓰다 미유키, 교토대 원자로 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 유명 저널리스트 우에스기 다카시, 음악감독 고바야시 다케시 등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대지진 이후 일본의 미래를 묻고, 이와이 슌지가 현재 활발하게 참여하는 탈원전 운동의 중요성을 알린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원자력 개발이 얼마나 위험한지 듣고 있으면 3·11이 단순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건 한국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TV다큐멘터리와 극장용 영화 두 버전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원전 반대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감독의 웹사이트인 ‘이와이 슌지 필름 페스티벌’(http://iwaiff.com)을 방문하면 매달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친구들’과의 인터뷰도 함께 볼 수 있다.
스시 로드 Sushi: The Global Catch
마크 S. 홀 / 2011년 / 74분 / 미국 / 기후변화와 미래
제목만 보고 스시의 기원을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명 스시집만 골라 소개하는 맛집 프로그램은 더더욱 아니다. <스시 로드>는 우리가 즐겨 먹는 생선초밥이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더듬어보는 작품이다. 영화는 스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일본의 유명 스시집에서 출발한다. 칼은 어떤 종류를 쓰고, 가게는 몇대째 운영되고 있는지,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야 하는 이유 등 영화 초반부에 소개되는 스시와 관련한 정보는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다가 영화는 스시 중에서도 최고의 재료로 꼽는 참치가 들어오는 도쿄 쓰키지 수산시장,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 참치의 수요량과 공급량, 바다 생태계 중 상위 계급에 속하는 참치가 줄어들면서 일어나는 생태계 변화 등 스시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탄탄한 구성으로 풀어낸다. 영화 말미에 이르면 불법 참치 어획에 반대하는 그린피스의 피켓 문구인 ‘No Fish! No Future!’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전쟁 You've Been Trumped
안토니 벡스터 / 2011년 / 95분 / 영국 / 국제환경영화경선 장편경쟁부문
메니(Menie). 스코틀랜드 애버딘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스코틀랜드의 아마존’이라 불릴 정도로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동네라고 한다. 이 동네가 한동안 떠들썩했다. 부동산 억만장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이 동네의 땅 수백만 에이커를 사들여 골프장, 수영장, 호텔, 주택으로 구성된 리조트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설상가상인 건 스코틀랜드 정부가 이 구역의 개발을 금지하는 환경법이 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이다. 불도저가 마을에 들이닥치자 마을 주민들은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의 계획과 정부의 결정에 반발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전쟁>은 시쳇말로 ‘게임이 안되는’ 억만장자와 가난한 마을 주민의 전쟁을 그리는 다큐멘터리로, 영국에서는 ‘21세기판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내레이션 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개발에 반발하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제법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개발을 강행하려는 도널드 트럼프와 아름다운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대립이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게 전개된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자연 속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은 MB의 그것과 제법 흡사하다. 2011년 샌프란시스코 환경영화제 대상 수상작.
전기자동차의 복수 Revenge of the Electric Car
크리스 페인 / 2011년 / 80분 / 미국 / 기후변화와 미래
크리스 페인 감독의 2006년작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는 소리 소문 없이 DVD로 직행했던 다큐멘터리이다. 제목대로 이 다큐멘터리는 1996년 제너럴 모터스(GM)가 개발한 전기자동차 EV1이 자동차산업과 석유업계의 어떤 음모 때문에 자동차시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그 전기자동차가 돌아왔다. 다큐멘터리 <전기자동차의 복수>는 환경오염, 전세계 금융 위기 시대에 기존 운송 수단을 대체할 만한 운송 수단으로 떠오른 전기자동차의 귀환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GM을 비롯해 닛산, 테슬라 등 자동차회사 내부로 들어가 전기자동차와 관련한 문제를 하나씩 짚어나간다. 현재 자동차산업에서 전기자동차가 다시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 전기자동차가 환경오염에 끼치는 영향, 전기자동차가 향후 자동차산업에서 차지하게 될 비중 등을 세계 자동차산업을 움직이는 거물의 입을 빌려 밝혀간다. 자동차와 자동차산업을 잘 모르는 관객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아일랜드 프레지던트: 나시드의 도전 The Island President
존 솅크 / 2011년 / 101분 / 미국 / 기후변화와 미래
지상낙원 몰디브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몰 위기에 처했다. <아일랜드 프레지던트: 나시드의 도전>은 100년 뒤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자신의 나라, 몰디브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올해 2월 하야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몰디브는 2008년 나시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마우문 압둘 가윰의 30년 독재정치에 마침표를 찍는다. 민주화 투사는 대통령이 되자 환경 대통령으로 변신한다. 그는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으로 낮추자는 ‘350 캠페인’에 적극 앞장선다(환경운동가들이 마련한 포럼장엔 ‘You are our global president!’(당신이 세계의 대통령!)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나시드 대통령은 또 환경보다는 경제개발이 우선인 나라들, 인도, 중국, 미국의 각료들을 만나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호소한다. 아마도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피오르드의 연인 What Happened on Palm Island
엘리자 쿠바르스카 / 2010년 / 30분 / 폴란드 / 그린 파노라마
거대한 암벽을 마주한 여자와 남자의 얼굴에 엷게 희열이 비친다. 엘리자와 다비드 커플은 곧 그린란드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해안절벽을 오를 것이다. 우선 빙산이 둥둥 떠 있는 피오르를 카약을 타고 가로질러 해안절벽 아래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 다음 로프에만 의존한 채 맨손으로 암벽등반을 시작한다. 그러나 기상 악화로 등반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마음이 약해진 엘리자는 괜히 다비드에게 서러운 마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문한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피오르드의 연인>은 촬영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엘리자와 다비드의 30일간의 악전고투는 고스란히 관객의 체험이 된다. 수직 촬영으로 암벽등반 모습을 담아낸 장면에선 스릴이 넘친다. 때 묻지 않은 대자연과 대자연 앞에선 너무도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계속해서 대비해 보여주는데 그 효과도 극적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과 그 도전을 받아주는 자연의 넉넉한 품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고통의 씨앗 Bitter Seeds
미차 페레드 / 2011년 / 88분 / 미국 / 국제환경영화경선 장편경쟁부문
30분에 1명꼴로 인도의 농부들이 자살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두된 인도 비다르바 지역의 농민 자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고통의 씨앗>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비다르바에 사는 농민 람 크리쉬나와 기자가 꿈인 열여덟 소녀 만주샤 암바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농민 자살 문제를 파헤친다. 이 지역 농민들은 면화를 주로 재배한다. 그들은 세계 최대 종자 회사인 몬산토의 유전자 변형 면화인 Bt면화를 사기 위해 빚을 낸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한 농민은 사채에 손을 댄다.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몬산토가 면화 종자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람 크리쉬나도 빚을 내 종자를 산다. 하지만 벌레가 꼬이지 않아 누구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몬산토의 광고와 달리 그는 1년 농사를 망친다. 망연자실한 람의 표정은 영화가 끝나도 잊히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거대 기업의 만행에 분노하게 되는 영화다.
해피 피플: 타이가에서 보낸 일년 Happy People: A Year in the Taiga
베르너 헤어초크, 드미트리 바슈코프 / 2010년 / 90분 / 독일 / 그린 파노라마
헬리콥터와 보트로만 접근할 수 있는 시베리아의 타이가 지역. 이곳엔 봄이 되면 성인의 허리 높이로 쌓인 지붕의 눈을 치우고, 여름이 되면 새 오두막을 짓고, 가을이 되면 수확하고, 겨울이 되면 꽁꽁 언 숲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산다. 타이가에 사는 사냥꾼들의 삶은 소박하다.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 대부분을 손수 만들어 사용한다. 영화엔 나무로 스키를 만들고, 덫을 만들고, 카누를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도끼로 슥슥 나무를 베어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내고 열을 가해 다시 속을 넓히면 뚝딱 카누 한척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피 피플: 타이가에서 보낸 일년>은 별다른 영화적 수사 없이 담백하게 타이가의 풍광과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다. 그런데도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우선 타이가의 풍경 자체가 압도적이다. 특히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기 일쑤인 극한의 겨울 풍경. 문명화된 사회를 비판하는 한편 대자연에 대한 존경을 표해온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은 타이가인의 삶 자체에 충분한 울림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최대한 꾸밈없이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타이가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예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