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1세기의 영화를 찾을 수 있을까?
2012-05-29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제65회 칸국제영화제 현지보고, 미국영화 대거 경쟁부문 진입

여기도 개막, 저기도 개막이다. 프랑스는 지금 사방이 개막으로 바쁘다. 올랑드 시대가 막 개막했고, 5월16일 칸국제영화제가 그 뒤를 바짝 이어 65회 개막을 가졌다. 대선 직후의 흥분 속, 프랑스인의 제1 관심사는 역시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 초기 향방이다. 도미닉 스트로스 칸의 추문이 영화의 거리, 크루아제를 뒤덮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올랑드의 푸근한 미소가 서비스로 마련되어 있다. 올해 칸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가 섹스심벌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사뭇 다른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것도 부러 쌍을 맞춘 듯한 선택처럼 보일 정도다. 관건은 영화제가 올랑드 시대의 개막에 필적할 카드를 내밀 수 있냐는 거다.

칸에 모인 전세계 기자들의 관심을 일거에 집중시킨 건 결국 개막작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의 몫이었다. 칸 메인 상영관 드비시 극장. 웨스 앤더슨은 전세계 기자들로 구성된 관객을 보란 듯이 1965년의 뉴잉글랜드 근교 작은 섬마을로 안내한다. 빌 머레이와 제이슨 슈워츠먼, 브루스 윌리스와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까지 앤더슨 사단이 총출동했지만, 이번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역은 신진세력인 아역배우들이다.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12살 동갑내기 소년소녀 샘과 수지. 고아가 된 샘과 부모에게 반항하는 수지는 어른들의 온갖 억압과 구속에 대항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쟁취해나간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관광엽서 같은 인도에 대한 실망은 잊어도 좋다. 앤더슨 특유의 마이너한 웃음 코드는 그대로이고, 그럼에도 난해하거나 이해 못할 농담도 아니다. 아마 지금까지 나온 앤더슨 영화 중 가장 친절한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개가 명확하다. 웃기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어린아이들의 성장통은 곧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미니어처같이 보일 정도로 정제된 비주얼이지만 막상 속내는 쓰디쓴 앤더슨의 세계를 두고 로튼토마토는 신선도 지수 100%을 선사했다. 영화제의 개막에 올해만큼 딱 맞는 작품도 많지 않았다는 호의적 평가가 줄을 잇는다. 칸의 개막이 ‘진짜의’ 화제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미국영화의 활기는 독립영화에”

집행위원장으로서 티에리 프레모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의 정점은 어쨌든 지난해였던 것 같다. 테렌스 맬릭부터 아키 카우리스마키, 다르덴 형제, 라스 폰 트리에 등의 신작을 대거 포진하며 ‘꿈의 셀력션’이라 불렸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경쟁 리스트에는 흥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선정이 보이지 않는다. 22명의 감독 리스트를 훑어봐라. 켄 로치를 필두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미하엘 하네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자크 오디아르 등 이미 16명이 경쟁부문에 초청된 적 있고, 수상 경력도 적지 않은 ‘아는 감독’이다. 제목도 만만치 않다. 미하엘 하네케의 제목은 무려 <사랑>이다!(발표 직후 제목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테오 가로네는 <리얼리티>를,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텐버라의 빛을 넘어>, 울리히 사이들은 <천국의 빛>이다. 하나같이 거창하고 웅대하다. 지난해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처럼 제목만큼 근사한 영화가 나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현재를 대변할 수 있는 20~30대 새로운 감독의 시각이 많지 않다는 건 심심한 결정이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안전모드이고, 그래서 자칫 지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면 올해는 4편의 데뷔작이 포함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주목하자.

그럼에도 경쟁작의 흥미로운 쟁점을 찾자면 미국영화의 대거 진입이다. 지난해 비평가 주간에서 상영돼 관심을 한몸에 받은 <테이크 쉘터>의 제프 니콜스 감독은 신작 <머드>로 곧바로 경쟁 섹션에 진입해 또 한번 이슈를 모았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을 연출한 뉴질랜드 출신 앤드루 도미닉은 강도를 쫓는 집행자의 이야기를 다룬 <킬링 뎀 소프틀리>로, 리 대니얼스는 니콜 키드먼과 함께 1960년대 배경의 에로틱드라마 <더 페이퍼 보이>로 칸을 찾는다. 여기 <더 로드>를 만든 존 힐코트의 <로리스>까지 미국영화만 다섯편이다. 이는 경쟁작 쿼터로 총 4편의 작품이 경쟁작에 올 수 있는 프랑스보다 더 많은 수다. 다섯편 모두 경쟁에 처음 초청된 감독의 작품이자, 할리우드 메이저 자본이 아닌 독립제작사들이 만든 작품이란 점 역시 주목해서 봐야 한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미국영화의 활기는 확실히 독립영화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침체된 미국영화의 쇄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새로운 시네아스트의 등장에 환호했다. 켄 로치의 <천사의 나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 월터 살레스의 <온 더 로드>까지 더하면 영어권 영화만 무려 8편, 경쟁작 중 1/3이 영어로 된 작품이다.

개막작 <문라이즈킹텀>의 감독과 출연진들. 제이슨 슈워츠먼, 브루스 윌리스, 웨스 앤더슨 감독, 에드워드 노튼, 틸다 스윈튼, 빌 머레이(왼쪽부터)

비평가 주간 vs 감독 주간

사실 ‘심심한’ 경쟁작보다 올해 칸의 초미의 관심사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출신의 샤를 테송이 이끄는 비평가 주간과 영화 독학자인 에두아르 와인투루가 이끄는 감독 주간의 맞대결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올해 처음 각 섹션의 수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선택이 더 궁금해지는 해이기도 하다. <카이에 뒤 시네마> <인록> <르몽드> 등 프랑스의 주요 매체들은 빠트리지 않고 둘을 대결구도로 한 더블 인터뷰를 진행하며 관심을 반영했다. 다르덴식의 흔들리는 화면, 고독을 주제로 롱테이크를 일삼는 미니멀한 영화도, 증명된 영화 형식을 가진 작품도 피하며 오로지 발견을 모토로 하는 테송과 웃음과 눈물을 중심으로 한 대중영화에 집중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영화에 집중한다는 와인투루의 셀력션이 영화제에 어떤 활력을 가져올지 두고볼 일이다. 5월16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열흘간의 영화제 동안 가장 골머리를 앓을 사람은 다름 아닌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장 난니 모레티다. 물론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의 교황처럼 그가 숨어서 고뇌할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모레티는 좀처럼 타협을 할 줄 모르는 단호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그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1997년 영화제에서는 황금종려상이 공동수상이었을까(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가 공동수상했는데 모레티는 끝까지 키아로스타미를 지지, 심사위원이었던 마이크 리와 엄청난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번에 그 키아로스타미가 또 왔다!). 쓸데없는 폭력, 공허한 효과 같은 건 질색, 아티스트도 형식주의자도 다 싫다고 하니 몇몇 작품은 벌써 탈락의 조짐이 보인다. 전적이 걱정됐는지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다행인 건 심사위원장의 권한이 제한돼 있다는 거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황금종려상의 향방은 아직 미지수다. 이미 영화를 본 <카이에 뒤 시네마>가 ‘21세기가 원하는 바로 지금의 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별 네개를 선사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가 유력 후보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도 수상권 내에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자벨 위페르가 있어서 홍상수를 더 기다린다”고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 기대를 나타냈으며 영화문학 잡지 <트랑스퓌주>는 크로넨버그, 하네케, 카락스와 함께 홍상수의 작품을 주요 수상작으로 점쳤다. 91살의 알랭 레네 역시 과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공로상 정도로 분류해 놓아선 안된다. 그는 경쟁 섹션이 아니면 차라리 베니스로 가겠다고 선포했다는 후문이다. 한참 어린 웨스 앤더슨과 동등하게 경쟁하겠다는 의지다. 무엇보다도 ‘서프라이즈!’를 주겠다는 심사위원단의 결심이 있으니, 혹 제프 니콜스가 받지 않는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겠나. 현재까지 공개된 작품은 개막작 <문라이즈 킹덤>과 이집트 혁명을 멜로드라마와 엮은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의 <애프터 더 배틀>이다. 다음주 현지보고에서는 보다 구체화된 갑론을박을 게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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