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살 시절의 <선데이서울> 인터뷰에서부터 예순다섯살인 지금의 <씨네21> 인터뷰까지, 윤여정의 말들을 모았다. 윤여정의 말들은 4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다. 어쩌면 그녀는 <화녀>부터 <돈의 맛>까지 오는 동안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TV는 죽 연결이 되어서 한번 슈팅하면 그 감정이 계속해서 사는데 영화는 컷마다 끊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드라마의 감정에 단절이 생기게 돼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더욱 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더 곤란한 것 같아요. 연기의 비결은 누구나 그렇듯 바로 극중의 인물이 된 듯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한번 슈팅에 들어갔다 하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소화할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을 소화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1970년 <화녀>를 찍기 직전 <선데이서울>과 인터뷰 중-
“화려한 재복귀. 이런 떠들썩한 말은 싫어요. 주부로만 묻혀 있어 모두들 잊었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기억해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요즘은 좀 피곤하고 지쳐 있어요. 오랜 미국 생활 탓인지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고 집안 구석구석 정리할 것도 많아요.”
-1984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고깔>로 8년 만에 연기에 복귀하며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껴왔어요. 미국에서 오랫동안 습한 지역에서 산 것도 제 목소리에 더욱 나쁜 영향을 줬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잘 유지하지 못하면 약점이지만 관리만 잘하면 매력 아니겠어요.”
-1990년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 중-
“평소 서구적이라는 평을 듣던 제가 흙냄새나는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상을 탄 것 같아요. 오랜만에 받는 상이어서 더욱 기뻐요.”
-1992년 SBS 드라마 <분례기>로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이 작품을 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누구를 사랑할 뿐이지 결코 간섭하거나 무엇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 사랑과 간섭의 미묘한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주로 의식있고 똑똑한 도시여성 역을 맡아서인지 사람들이 저를 꽤 현명하고 유식한 여자로 인식할 때면 정말 내가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요.”
-1990년 연극 <위기의 여자> 공연 뒤 <동아일보>와 인터뷰 중-
“그때(SBS 드라마 <분례기> 출연 이후)가 되니 사람들이 너 연기 잘한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런 칭찬 듣기 위해서 한 연기가 아니었어요.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주지, 그러면 안된다고.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된다고,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2005년 <바람난 가족> 개봉 뒤 <씨네21>과 인터뷰 중-
“젊은 애들 맞춰서 열번, 스무번을 찍더라고. 돈은 알고보면 걔네들이 더 많이 받는데. 나 그럼 미치겠어. 진짜 (현장에) 가기가 싫어지거든.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스스로 추슬러요. 난 아직도 일을 해야 한다. (웃음) 그런데 인정옥 작가가 ‘선생님은 앞으로 쭉 그러실 수밖에 없어요’라고 해요. 넌 왜 그렇게 악담만 하냐고 했더니, 젊은 작가들이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젊은 작가들하고 계속 일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더라고. 계속 신인 애들이 나오니까 나는 앞으로도 험난한 길을 걸어야 된다는구만. (웃음)”
-2005년 5월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에 대해서 <딴지일보>와 인터뷰 중-
“나 같은 경우는 테이크를 세번 이상 가면 더이상 안 나와요.”
-2010년 <하하하> 개봉 뒤 <씨네21>과 인터뷰 중-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어릴 땐 나보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내가 진짜 연기 잘하는 줄 알았어요. 십 몇년 공백 다음에서야 내가 못한다는 걸 알았어. 내 말소리가 들리고, 내 몸이 뜻대로 안 움직이고. 30대 말인데, 굉장히 처참했어요. 너무 심하게 바닥을 친 거지.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기 시작한 게 쉰살 무렵이에요. 이제 60이 넘었는데, 다들 너무 잘해요. 문소리도 잘하고 전도연도 잘하고, 나도 내년부터 더 잘해야겠다는 희망이 생겨요. 연기라는 게 끝없는 도전이에요. 나 혼자서 끊임없이 장애물 경기를 하는 거예요. 완벽한 연기는 있을 수도 없고, 운때가 잘 맞아떨어지면 잘했다는 소릴 듣는 정도죠. 우린 우매하니까 남들이 잘했다면 진짜 잘한 줄 아는데 그건 착각이에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데 정답이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걸 잘했다 못했다 맞았다 틀렸다를 말하는 게, 답 없는 길을 그냥 가는 거지.”
-2010년 <하녀> 개봉 뒤 <씨네21>과 인터뷰 중-
“나는 생계형 연기자예요. 연기자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궁할 때예요. 배가 고프면 뭐든 매달릴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도 배고플 때 그린 그림이 최고예요.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예요. 나는 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내 일생을 연기에 바쳤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2009년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 중-
“난 배우가 논리를 논하는 게 싫어요. 배우는 느낌으로, 감성으로 하는 거예요. 제일 싫은 게 현장에서 새벽 3시에 감독이랑 논쟁하는 애들. 왼쪽으로 넘어지는 게 감정상 안 좋다. 오른쪽으로 넘어지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러는데 아주 돌아버려요. 오른쪽으로 넘어지나 왼쪽으로 넘어지나 거기에 무슨 감정이 있겠어요. 그런 애들 진짜 때려주고 싶어.”
-2012년 <돈의 맛>에 관해 <씨네21>과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