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모욕’적인 연구 결과부터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본의 한 기업이 작업장 환풍기에 돈 냄새가 나는 바람을 흘려보냈고 그 결과, 직원들의 생산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신권을 갈아 넣은 향수가 나오기도 했으니, 화학약품과 특수 잉크가 버무려진 지폐 냄새야말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강력한 유도체라 할 만하다. 이 얇고 네모난 섬유 조각이 풍기는 비린내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돈다발이 주는 희열이 매번 지독한 허기와 모멸감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말이다.
<돈의 맛>은 비서 주영작(김강우)이 윤 회장(백윤식)을 따라 들어간 비밀금고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입을 벌리는 검찰 수뇌부에게 뒷돈을 건네러 가는 길이다. 거대한 현금더미가 모습을 드러내고, 영작은 서둘러 가방에 돈을 담는다. 윤 회장이 현금을 따로 챙겨 ‘돈맛’을 봐둘 것을 권하지만, 영작에게는 아직 딴 주머니를 찰 의지나 배포가 없다. 그는 돈다발을 들어 슬쩍 냄새를 맡고는 다시 내려놓는다. 도시의 불빛이 요동하는 금류(金流)의 한 가운데에서, 이제 막 돈냄새를 맡기 시작한 이 성실한 청년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손에는 지폐더미를, 다른 한손에는 성기를 움켜쥔 최상류층 사람들 곁에서, 그는 돈과 권력이 주는 모욕적인 흥분을 마다할 수 있을까.
<하녀> 다시 쓰기
<돈의 맛>은 능력있고 패기 넘치는 한 젊은이가 겪는 유혹과 환멸을 그린 경쾌한 통속극이다. 임상수 감독은 <돈의 맛>의 기획 단계부터,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것이 영화의 우선순위임을 강조해왔다. <그때 그사람들> 이후로, 임상수 감독의 작품은 대중, 혹은 평단의 반응과 감독의 의도 사이에 다소의 간극이 있었다. 감독의 도발적 기질 때문에 불편한 영화를 만든다는 오명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돈의 맛>에는 이같은 평가를 불식시키고 대중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감독의 욕망이 담겨 있다. 덕분에 그동안 특유의 무정부주의적인 태도에 가려져 있던 인간에 대한 담백한 믿음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그 결과 겉은 좀 요란하지만 실상은 착한 영화가 들어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돈의 맛>은 임상수 감독에게 있어 커밍아웃 격의 영화가 된 셈이다.
어쩌면 임상수 감독은 매번 세간의 평가보다 훨씬 덜 냉소적인 영화를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하녀>(2010)의 결말을 둘러싼 논란은 그의 애초 의도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상수 감독은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제838호)에서, 은이(전도연)에 대한 감정이입이 어려웠던 점이 결과적으로 <하녀>의 패착이었고, 이 때문에 <돈의 맛>에서는 관객의 자기 동일시가 용이한 샐러리맨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돈의 맛>은 기본적으로 전작 <하녀>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다시 쓴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돈의 맛>에는 등장인물들이 영화 <하녀>를 함께 관람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스크린의 사건과 현실을 병치시키고 있고, 영작이 협박을 당하는 신에서는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의 클라이맥스 장면이 배경으로 쓰인다. 배우 김효진이 연기한 윤나미는 두 작품을 직접 연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미는 어린 시절 목격했던 하녀의 죽음을 언급하며 <돈의 맛>이 전작 <하녀>의 후일담임을 명시한다. 은이를 따르던 내성적이고 조숙한 소녀 나미는 주변 인물들이 욕망으로 폭주하는 사이에도 끝까지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성숙한 여성으로 자랐다.
나미네 집안 사람들은 조금씩 극단적인 면모를 보인다. 나미의 어머니 백금옥(윤여정)은 연로한 백 회장에게 젊은 여자들을 공수한 대가로 재산을 상속받았고,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녀는 남편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접 감시할 정도의 치밀함도 보인다. 윤 회장은 돈 때문에 금옥을 아내로 택한 뒤, 지금까지 그룹의 온갖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왔다. 덕분에 돈을 원없이 써보며 방탕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돈이 주는 모멸감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필리핀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의 육체만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다. 윤철(온주완)은 수완이 뛰어난 재벌 3세로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며 불법증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알고 있지만, 어떠한 것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마침내 윤 회장과 에바의 관계가 발각되고, 금옥이 영작의 육체를 탐하면서, 이들 가족은 화려한 껍질 속에 감춰진 추한 속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금옥의 신임을 얻게 된 영작은 점점 돈맛을 보는데 익숙해지고, 그의 야망이 커가는 동안 좌절과 무력감도 늘어간다.
백금옥 일가는 밖으로는 모략을 꾸미고 위선을 보일지언정 가족 내에서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고 쿨한 편이다. 대신 이들은 서로에게 철저히 계산적이다. 윤 회장은 에바와 함께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집을 떠나는데, 그의 가출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부재를 의미한다기보다, 기업의 뒷거래를 담당했던 자의 잠적으로 먼저 받아들여진다. 이들에 비한다면 <바람난 가족>에 등장하는 변호사 가족은, 오히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있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돈의 맛>의 캐릭터들은 일종의 캐리커처처럼 과장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대사와 제스처 속에서도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갈등은 줄곧 현실감을 놓치지 않는다.
임상수식 휴머니티
<돈의 맛>에는 불법증여, 착취, 살인, 난교파티 등 최상류층 사람들의 어두운 면모가 등장하지만, 영화가 재벌의 사생활에 대한 비판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백금옥 일가는 권력을 지키기 위한 그들 나름의 명분으로 움직이고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돈과 권력, 육체적인 쾌락을 향해 끝없이 촉수를 뻗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이들 가족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간에 떠도는 풍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열렬히 반목하던 두 사람, 윤 회장과 백금옥 부부가 결국 각자 불행한 속내를 드러내고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윤 회장은 아내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곤경 그 자체’였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이들은 서로에게 모욕감과 상처를 안겨주었고 똑같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종장에서, 금옥의 오열과 윤 회장의 미소가 병치되는 신은 그로테스크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며 그동안 이어져온 불균질한 유머와 해프닝에 진지한 무게를 더한다.
따지고 보면 임상수의 인물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련의 해프닝들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인물들은 조금은 잔인해지고 대개는 ‘찌질해’진다. 이 와해 과정을 포착하는 연출 태도가 때로는 악취미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너지는 육체의 물성을 통해서 감독이 우회적으로 인간다움을 타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육체의 무게 때문에, 현실은 단순히 냉소나 자조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공리가 된다. ‘악인은 없고 악한 입장만 있을 뿐’이라는 <돈의 맛>의 기획의도는 이같은 임상수식 휴머니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돈의 맛>의 결말은 영작과 나미, 두 젊은이들의 몫이다. 영화는 혼탁한 현실에 맞서 이들이 보여줄 쇄신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그런데 이들 캐릭터들이 부모 세대에 비해서 시종일관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이 결론이 다소 나이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영화의 결론은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같은 차원의 서사적 매듭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셰익스피어적인 서사와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의 결합’을 꾀했다던 감독의 소개가 과장된 진술만은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이들 두 젊은이 덕분에 모녀가 한 남자를 탐하는 요란한 설정과 섹스 신이 이어지던 영화는 경쾌한 결말의 교훈극으로 마무리된다.
기존의 임상수 영화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이들에게, 그리고 <하녀>의 리메이크에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에게, <돈의 맛>은 불균질하면서도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대저택 세트 내부를 가로지르는 김우형 촬영감독의 유려한 카메라워크와 화면 곳곳을 채우는 미술품들, 그리고 최상류층의 복식문화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고, 감독의 자기 반영적인 대사 유희를 목격하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돈의 맛’이 연상시키는 질척거리고 끈끈한 느낌을 바랐던 사람들은 그 기대를 충족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녀>의 여인들이 훈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계급관계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돈의 맛>에서는 사람이 아닌 돈 그 자체가 권력의 핵심이 된다. 등장인물 모두는 돈으로부터 모욕감을 느끼는 하녀이자 하남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 <돈의 맛>에서 정작 돈은 하나의 추상, 혹은 맥거핀으로서, 일종의 부재하는 중심이 된다. 그 공허를 문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유희할 것인가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만족감은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하녀>를 좀더 대중친화적으로 다시 쓰고자 했던 감독의 욕망이 남긴 영화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