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추모] 일본 영화계의 불사조
2012-06-05
글 : 김성훈
향년 100세로 세상을 떠난 신도 가네토 감독(新藤兼人, 1912.4.22~2012.5.29)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11년 베스트10’ 1위는 사카모토 준지도, 소노 시온도 아니었다. 그건 <한장의 엽서>를 만든 백전노장 신도 가네토의 차지였다. <키네마준보> 영화평론가 고쇼 준이치는 “100살이라는 연륜답게 단순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서사의 힘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불과 3개월 전 일인데, 이 작품이 신도 가네토의 유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쇼치쿠(松竹) 누벨바그’이자 실험정신으로 무장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며 불사조 같은 영화 인생을 살던 신도 가네토 감독이 지난 5월2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세.

히로시마 출신인 신도 가네토 감독이 처음부터 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여러 영화사를 전전하며 미술부, 필름 건조 작업을 비롯해 온갖 심부름을 하던 그를 사로잡은 건 시나리오였다. “영화의 비밀은 시나리오에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1934년 신흥키네마에 입사해 거장 미조구치 겐지 감독 밑에서 시나리오를 배웠다. 이후 1944년 메이저 스튜디오 쇼치쿠에 입사해 1950년 퇴사할 때까지 그는 여러 시나리오를 썼다(평생 그가 쓴 시나리오는 200편이 넘는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일본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장면에서 계단을 굴러 내려오는 유모차는 권력도, 쓰러지는 군중도 아닌, 살아가고 있는 무구한 인생을 상징하고 있다. 그게 내 영화의 본질”이라는 그의 말은 그가 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단서다.

쇼치쿠를 뛰쳐나온 뒤 1951년 자신의 영화사 근대영화협회를 창립해 내놓은 첫 작품이 <애처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신도 가네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당시 많은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신도 가네토의 스승인 “미조구치 겐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후 그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원자폭탄의 아이들>,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그린 <어머니>, 성적 불능으로 방황하는 중년 남성을 구원하는 한 여성을 그린 <본능> 등 수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1960년 내놓은 <벌거벗은 섬>이 그해 열린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데뷔작 <애처 이야기>부터 유작 <한장의 엽서>까지 신도 가네토는 패망한 일본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노동을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포착해왔다. 또, 1975년 미조구치 겐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생애: 미조구치 겐지>를 만들어 스승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고, 자신의 영화의 단골배우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아내 오토와 노부코가 간암 선고를 받자 그에게 오마주를 바친 영화 <오후의 유언장>을 만들어 아내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오후의 유언장>은 배우 오토와 노부코의 유작이자 1995년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일본영화 베스트1, 감독상, 각본상,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렇다고 신도 가네토가 영화 작업에만 신경을 쓴 건 아니었다. 일본 후배 작가들과 함께 시나리오작가의 지위를 확립하기 위한 단체 시나리오회관을 설립했고, 1935년 미술부 조수로 일할 때 모셨던 스승 미즈타니 히로시(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대표작에 참여해 세트를 제작했다. 일본 영화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가 쓴 책 <미즈타니 히로시 영화미술의 창조>를 직접 편집하기도 했다. 이제 휠체어를 타고 현장을 씩씩하게 지휘하던 그를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후배 영화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신도 가네토 감독은 진정한 일본 영화계의 불사조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은 6월15일부터 21일까지 신도 가네코 감독 추모전을 개최한다. 대표작 <오니바 바>를 비롯해 <벌거벗은 섬> <추락하는 청춘> 등 연출작 5편과 <동이 뜨기 전에> <겡카 엘레지> 등 각본작 2편 등 총 7편이 상영된다.

연출작 주요 필모그래피

<한장의 엽서>(2011)
<살고 싶어>(1999)
<오후의 유언장>(1995)
<나의 길>(1974)
<오니바바>(1964)
<벌거벗은 섬>(1960)
<도랑>(1954)
<애처 이야기>(1951)

시나리오 주요 필모그래피

<하치 이야기>(1987)
<문신>(1966)
<세이사쿠의 아내>(1965)
<훔친 욕정>(1962)
<흔들리는 미덕>(1958)
<새벽의 기적>(1950)
<여성의 승리>(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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