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오션스 일레븐>? 노노노!(2)
2012-08-02
글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코멘터리-홍콩·마카오 로케부터 액션, 멜로 코드까지

6. <오션스 일레븐>에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과 전 부인 테스(줄리아 로버츠) 사이에 남아 있는 앙금이 <도둑들>에서 마카오 박과 팹시 사이의 그것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최동훈 감독 스스로는 그걸 부정하고 도둑들의 숫자도 11이 아닌 10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오션스 일레븐> 전체가 카지노 강탈 사건 하나로만 이뤄져 있는 영화라면 <도둑들>에서 카지노 강탈은 또 다른 사건으로 나아가기 위한 맥거핀에 가깝다. 또한 엄밀히 말해 <범죄의 재구성> 때처럼 금고를 턴다기보다 카지노 내의 또 다른 호텔방을 터는 것이다. 그리고 <오션스 일레븐>처럼 딜러들의 성향이나 기질도 파악하고 금고방과 똑같은 세트를 만들어 강탈 연습까지 하는 것과 비교하면 카지노에서의 강탈 신 자체의 묘미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의 <오션스 일레븐>’이라는 간단한 인식법이 무척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션스 일레븐>을 연상시킬 수도 있겠지만 염두에 둔 측면은 전혀 없다. 도둑들의 숫자가 많고 카지노가 중요한 공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비교일 것이다. 하지만 <오션스 일레븐>이 성공담이라면 <도둑들>은 실패담이다. 그 실패로 인해 다른 사건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캐릭터다.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가 중심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은 조지 클루니가 유일하다. 하지만 <도둑들>은 인물 모두에 균등한 시선을 배분하고 있다. 그렇게 한바탕 놀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카지노 한곳에서만 펼쳐지는 게 아니고 매번 장소가 바뀌면서 새로운 국면이 계속 펼쳐지는 느낌을 원했다. 그런 식으로 닮은 영화들을 찾자면 더 나올 거다. 당연히 <순류역류>도 생각나고 라스트 터미널 장면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1993)의 마지막과도 닮았으니까. 또 지난해 <도둑들> 촬영을 다 끝내고 편집하던 당시에 <미션 임파서블4: 고스트 프로토콜>이 개봉했다. 100층 넘는 데서 뛰어내리고 그러니 역시 할리우드구나 했다. 이거 우리는 너무 촌티 나는 거 아닌가 해서 한 3, 4일 진짜 우울했다. (웃음)

7. 예니콜은 직접적으로 <리얼 맥코이>(1993)의 킴 베이싱어, <엔트랩먼트>(1999)의 캐서린 제타 존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범죄 공모와 진행의 양상이 할리우드 하이스트 무비라면 그 정서는 홍콩 누아르적인 지점도 있다. 홍콩 로케이션과 더불어 <도둑들>이 주는 다채로움의 한 양상일 것이다.

-영화가 공개된 뒤 옛날 홍콩영화 같은 정서가 난다는 얘길 많이 해서 사실 좀 놀랐다. 전지현이 줄 타는 장면에서 <엔트랩먼트>의 캐서린 제타 존스를 얘기하는 사람들한테는 할리우드적일 것이고. 나는 오히려 이번 영화의 정서가 <타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나는 <영웅본색>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중·고교 시절 홍콩영화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다. 오히려 할리우드영화에 더 경도됐다. 서부극을 좋아했고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도 줄스 다신의 <리피피>(1955) 같은 범죄영화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실제 홍콩에서 촬영을 했고 임달화가 출연해 여자를 안은 채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리고 실제로 긴 총격전을 벌이니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따지고 보면 이런 한·홍 합작 영화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어려서 봤던 영화 중에 박원숙 선생님이 홍콩 무슨 조직의 정부로 나오는 그런 영화도 있었다. (웃음) 그때는 서로 교류도 많고 해외 로케이션도 지금보다 더 활발했다.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가 동남아에서 발견되고 그러는 일도 있지 않았나. 그래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향수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임달화는 현장에서 스탭들이 다들 뛰어다닌다며 너무 열정적이라고 하더라. 홍콩 배우들은 현장에 시간을 초과해서 있으면 오버 차지를 줘야 하는데 그런 거 필요없다고 현장에 더 계시기도 했고. (웃음)

8. <타짜>에서 고니가 손가락 하나 잘려도 상관없다는 각오를 보이며, 정 마담(김혜수)이 있는 부산으로 향한다. <도둑들>도 오히려 마카오나 홍콩보다 부산에서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후반부 부산에서 펼쳐지는 건물 액션 신은 서극의 <순류역류>를 연상시키는 건물 외벽 액션 신을 보여준다. 또한 하나의 공간을 두고 경찰, 범죄자, 그 범죄자를 쫓는 또 다른 범죄자가 등장하는 모습은 두기봉의 <비상돌연>이나 <대사건>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기도 하다. 창문의 차양과 에어컨 실외기, 그리고 전선이 꼬일 대로 꼬인 <도둑들>의 건물 외벽 액션 신은 단연 올해의 액션 신이라 할 만하다.

-길과 건물은 부산 동광동에 있는 부산 데파트이고 와이어 액션이 펼쳐지는 건물 외벽은 서울 충무로 진양상가다. 내부 격투 신을 찍은 곳도 진양상가다. 그렇게 여러 곳에서 나눠 찍다보니 촬영이 5개월 반이나 걸렸다. (웃음) 진양상가에서는 진짜 총을 쏘며 찍었다. 경찰들도 계속 왔는데 그 총소리가 청와대에도 들리겠다고 했다. 건물 외벽 액션의 경우 서극의 <순류역류>는 정말 좋은 영향을 줬다. <대사건>은 오래전에 봤다. <황해>의 유상섭 무술감독과 <순류역류>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순류역류>는 직각으로 떨어지는 것만 하니까 우리는 평면적으로 계속 타고 이동하는 액션을 해보면 어떨까 했다. 와이어 액션의 경우 <전우치> 때 노하우를 많이 쌓았고 유상섭 무술감독이 파주 서울액션스쿨 외벽에서 찍은 것을 데모로 찍어 보내줬다. 그 열성이 놀라웠고 그걸 바탕으로 과연 어떤 숏이 시각적 쾌감이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실제 촬영을 할 때는 딱히 리허설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총도 직접 쏴야 하고 에어컨 실외기도 마구 떨어지고 조그만 형형색색 창문 차양들이 찢어져야 하니까. 그걸 뗐다 붙이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리니까. CG팀이 동선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꼼꼼하게 했고 김윤석 선배는 우리만 믿고 딱 착지하면 그때 확 터트려서 실외기를 떨어트린다. 전적으로 우리를 믿고 액션을 해야 한다. 그럴 때 감독이 생각해야 할 것은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현장의 안전이다.

9. 부산국제영화제 때 김성수 감독은 <전우치>(2009)를 보고서 그에게 “넌 이제 액션감독이야”라고 말했다. 줄곧 액션영화를 고민해온 선배 감독으로서 외로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에서 액션에 대한 고민을 봤다는 것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탁월한 장르영화 감독’은 ‘탁월한 액션 신을 만드는 감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말이다.

-<도둑들> 후반부는 내 영화 중에서 가장 긴 액션 신을 보여준다. 그럴때 중요한 것은 전체 신에서의 통일성과 쾌감의 지속성이다. 가령 <타짜>에서 기차 액션을 찍을 때도 기차 구조는 간단하지만 좌석과 화장실에서의 세밀한 이동과 액션을 고민했다. 성격이 소심해서 액션 신이나 강탈 신을 연출할 때 쉽게 점프컷을 못하고 일일이 다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웃음) <도둑들>에서 마카오 박이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고,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이동하여 결국 맨션 바깥으로 도망갈 때까지 공간적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소룡의 <사망유희>가 대표적이지만 액션영화들이 주로 적들을 제거하면서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도둑들>은 그 반대로 적들을 따돌리고 힘겹게 아래로 내려가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그 동선이 길지만 연출자로서는 <타짜> 때 ‘10분 동안 화투치는 걸 보여줘도 절대 지루하지 않을 거야’라는 확신으로 찍어야 하는 것처럼 <도둑들> 역시 ‘같은 공간에서의 액션이 길 수도 있지만 관객들이 엄청난 쾌감을 느낄 거야’라는 확신하에 찍어야 한다. 얼마나 심장을 바짝바짝 졸였는지 모른다. 외벽 액션만 10회차를 12일 정도 촬영했다. 총을 들고 마카오 박을 쫓는 두 킬러는 권문철과 김영민이다. 권문철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정우성 대역도 했던 친구다. 그러고 난 다음 액션의 끝은 페리 터미널이다. 긴장감 넘치는 긴 추격 시퀀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또한 이번에 느낀 점 중 하나는, 동작과 스펙터클도 중요하지만 액션 신의 관건은 결국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라는 것이다. 액션 신 역시 감정의 지속이기 때문이다.

10. <도둑들>은 묘한 신파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잠파노와 예니콜의 연상과 연하의 사랑도 있고, 첸과 씹던 껌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도 있으며, 마카오 박과 팹시의 바라만 보는 사랑도 있다. 지금껏 최동훈의 영화에서 직접적인 멜로 코드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면, 디테일한 액션 신과 더불어 그것도 무려 세 커플의 멜로 코드가 드러난다. 최동훈 감독의 과욕일까.

-사랑의 컨셉도 다르지만 전지현, 김혜수, 김해숙, 그렇게 각각 30대, 40대, 50대의 사랑이기도 하다. 이거 닭살 돋을 수도 있는데, 평소 좋아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나이 든 부부가 손 꼭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다. 나중에 나도 저런 부부가 돼야지 하고 생각한다. (웃음) 내가 지금껏 그런 멜로적 요소를 일부러 피해왔던 건 아니다. <범죄의 재구성> 때도 박신양과 염정아의 멜로 코드를 넣고 싶었는데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타짜> 때도 본격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계속 장르영화에서 사건의 진행과 함께 펼쳐지는 인물간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랑과 배신, 양날의 검처럼 붙어 있는 걸 해보고 싶었고 내가 진짜 장르영화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걸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 할리우드 상업영화들도 주인공 1명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을 서사에 잘 넣지 않는다. <오션스 일레븐>도 조지 클루니의 사적인 감정 정도만 보인다. 그런 점에서 임달화와 김해숙의 감정은 드라마의 속도를 위해서 빼야 맞는 거다. 하지만 나는 여러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을 넣되 장르의 힘이 떨어지지 않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전체 드라마를 해치지 않으면서 순간순간 여러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이 끼어드는 그런 장르영화? 모두 사랑스런 캐릭터들이라 각자의 감정이 드러나게, 다 뭉쳐서 한덩어리로 보이지 않게. 그래서 나는 <도둑들>에 관한 여러 평가 중 ‘1급 오락영화’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 할리우드적인 것과 홍콩적인 것, 거기에 사랑과 우정과 배신, 그리고 협잡, 또 액션과 코미디, 끝으로 이국적이되 이질적이지 않은 스타일. 말하자면 나는 늘 나만의 강탈영화, 첩보영화, 서부영화, 멜로영화를 만든다. 그렇게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달려간다. <도둑들>을 보면서 관객이 새로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편,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를 만든 사람의 영화구나’ 하는 것도 느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최동훈이라는 연출자의 욕망이다.

11. 최동훈 감독의 장르영화에 대한 욕심이란 측면에서 <도둑들>은 여러모로 그의 이전작들이 깊게 바탕에 깔려 있다. 범죄를 위해 구성원들이 모여드는 <범죄의 재구성>의 강탈 사건, 주인공이 숨겨두는 은은한 멜로 코드라는 점에서 <타짜>의 정서, 그리고 와이어 액션에 관한 한 엄청난 물량을 동원했던 <전우치>의 액션이 한데 합쳐진 모습이다. 그는 늘 ‘두번 봐도 질리지 않는 장르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해왔었다.

-“너는 만날 화투치다 도끼로 쳐 맞는 영화만 할 거냐?”며 아버지가 사실 그동안 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웃음) <나바론 요새>나 <대탈주> <대장 부리바> 같은 게 영화지 요즘 영화들이 영화냐, 뭐 그런 얘기다. 그런데 <도둑들>을 보시고는 ‘본격적이고 짜릿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린 이후 내 평생 두 번째로 아버지한테 들은 칭찬이다. (웃음) 그러면서 수현이가 고생한 거 같다고 잘 해줘야겠다는 말씀도. <도둑들>을 끝내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영화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옛날 생각이 났는데 문득 친구들한테 “<세븐>하고 <8월의 크리스마스>가 하나로 합쳐지면 어떨까”를 물은 적 있다. 참 말도 안되는 얘긴데(웃음) 핵심은 장르와 정서가 같은 영화랄까. 그게 어쩌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무능력으로도 비칠 수 있는데, 어쨌건 나의 목표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며 최대한 그것에 가깝게 가보는 거다. 오래 하다보면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경우도 생기지 않겠나. (웃음) 현재 다음영화로는 경찰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지금껏 내 영화들은 늘 시선의 주체가 도둑이나 사기꾼이었는데 그 주체를 경찰로 바꿔보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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