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선댄스영화제 월드 드라마 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차지한 <애니멀 킹덤>이 8월2일 개봉한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됐던 <애니멀 킹덤>의 감독 데이비드 미코드는 한국 관객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조셉 고든 레빗이 한 가정에 무단침입해 골 때리는 해프닝을 벌이는 <히셔>(2010)의 각색 작업을 한 것 말고는 장편 참여 경험이 없다. 하지만 중고 신인감독 데이비드 미코드는 장편 데뷔작 <애니멀 킹덤>에서 뻔한 재기로 눙치려 드는 대신 10년 가까이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야심을 풀어놓는다. 극중 주인공의 대사처럼, <애니멀 킹덤>은 아직 미완(未完)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미코드는 조금 더 지켜보고픈 미완이다.
당신에게 두개의 카드가 주어진다. 카드 A에는 세개의 선이 그려져 있다. 이 선들의 길이는 조금씩 다르다. 카드 B에는 하나의 선이 그려져 있다. 이 선의 길이는 카드 A의 세개의 선 중 하나와 일치한다. 실험에 참여한 당신은 카드 B의 선과 길이가 같은 카드 A의 선 하나를 골라내면 된다. 정상적인 지능을 갖고 있다면, 당신에게 이 문제는 식은 죽 먹기다. 실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실험에선 피험자 수가 7명이 더 늘었다.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8명의 피험자들은 차례대로 답을 말해야 한다. 이 경우, 첫 번째 실험과 같이 당신은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실험이 계속 반복된다고 치자. 만약 나머지 7명의 피험자가 어느 순간부터 당신과 달리 계속해서 오답을 선택할 때 당신은 끝까지 정답을 고수할 수 있을까.
1955년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동조 연구는 진실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을 뒤엎는다. 당시 애시의 실험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123명이었는데, 그중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 이는 25%에 불과했다. 나머지 75%의 피험자들은 오답을 말하도록 투입된 7명의 가짜 피험자의 의견을 따랐다. “집단의 압력에 굴복한” 75%의 피험자 중 일부는 “집단이 맞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반면, 나머지 피험자들은 “자신이 본 것과 집단의 합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편하다”고 판단했다. 이 실험이 흥미로운 건, 오답을 말할 경우에 뒤따르는 어떤 불이익도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재미난 실험은 동시에 끔찍한 가정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만약, 당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내걸어야 한다면?
맹수들의 우리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공포
“여기가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내가 버려진 세상이었다.” <애니멀 킹덤>의 17살 청년 J(제임스 프레체빌)가 처한 딜레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약 과다복용으로 엄마가 죽자 J는 연락을 끊고 살아왔던 외할머니 집에서 머물게 된다. 얼핏 평범한 가족 같지만 외가 친척들은 실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범법자들이다. 큰삼촌 팝(벤 멘델슨)은 은행 무장강도사건으로 경찰의 눈을 피해 도피 중이고, 둘째삼촌 크레그(설리번 스테플턴)는 마약 사업에 손대고 있다. 막내삼촌 대런(루크 포드) 역시 두형의 불법 행각을 은밀히 돕고 있다. “네 어미가 죽은 건 한쪽 손에 든 조커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해서지.” 외할머니 스머프(재키 위버)는 세 아들의 악행을 모르는 척 눈감지 않고 적극적으로 두둔한다.
스머프가 말한 또 한손의 조커가 ‘악’을 뜻하는 것임을 J는 어렴풋이 느낀다. 하지만 J는 조커를 택한 그들의 삶은, 자신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J에게 항상 책임이 면제되는 관찰자로서의 역할만 주어지진 않는다. 팝은 같은 패거리이자 이웃인 바즈(조엘 에저튼)가 경찰에게 죽임을 당하자 형제들을 부추겨 복수를 계획하고, J 역시 그들의 복수를 간접적으로 돕는다. 순찰 중이던 2명의 경찰관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로 팝은 체포되지만 곧바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온다. 사건 당일 팝과 그 형제들의 알리바이를 반박할 수 있는 건 J 혼자뿐이다. 안전한 보호를 약속하면서 진술을 종용하는 형사 렉키(가이 피어스)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침묵을 강요하는 팝 사이에서 J의 불안과 동요는 가중된다.
<애니멀 킹덤>은 여타 범죄영화처럼 원한과 복수의 악순환을 따른다. 데이비드 미코드 감독은 1988년 호주 멜버른에서 있었던 왈시(Walsh)가(街) 경찰 살해사건을 끌어왔는데, 실제로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경찰과 무장강도 일당 사이에 잔인하고 끔찍한 보복과 살육이 존재했다. 하지만 <애니멀 킹덤>의 관심은 20여년 전에 발생했던 폭력의 양상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으르렁거리는 맹수들의 우리 한가운데 내던져진 J의 공포야말로 <애니멀 킹덤>의 진짜 구심점이다. J의 눈에 팝의 형제들의 장난은 생사를 건 사자들의 쟁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그들은 두려운 존재였지만, 내겐 친절했다”고 중얼거린다. 이러한 자기 암시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줄이거나 회피하고 싶은 본능적인 생존의 제스처다.
아버지와 아들, 애증의 신화
<애니멀 킹덤>을 권위와 복종에 관한 실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전반부의 바즈와 J의 화장실 대화 장면은 인상적인 근거다. 바즈는 볼일을 본 뒤 왜 손을 씻지 않느냐고 J를 꾸짖는다. 얼버무리는 J를 다그쳐 손을 닦게 한 바즈가 나가자, J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소년은 바즈에게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일까. 앞서 바즈의 간섭을 따져보자. 바즈는 손을 씻으라고 J에게 말했다. 이건 단지 올바른 화장실 사용법에 관한 사소한 조언이 아니다. 바즈의 말엔 “내 명령을 따르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J의 웃음은 배면에 복종의 동의와 수긍을 깔고 있는 것이다. 팝이 J에게 (범죄에 사용할) 차를 한대 새벽에 끌고 나오라고 부탁하자 J는 “왜요?”라고 반문하지만, 팝은 간단히 이렇게 응수한다. “내가 부탁했기 때문이지.”
상투적이긴 하나, <애니멀 킹덤>을 본 다음 아버지-아들의 애증 신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J 앞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의 등장과 퇴장은 사건의 흐름 안에서 무리없이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바즈 대신 크레그, 크레그 대신 팝, 팝 대신 렉키, 이런 식으로 카메라의 포커스가 조금씩 이동하기 때문인데, 이는 나쁜 아버지를 버리고 좋은 아버지를 선택하려는 J의 심리적인 갈등 동선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좀더 무리하면, <애니멀 킹덤>의 포악하고 동시에 불완전한 J의 유사-아버지들은 절대로 넘어선 안되는 원초적 금기를 위반한 다음 공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는 형제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옥에 갇힌 그들은 책임을 회피한 채 울먹이는데, 스머프의 눈에 그들은 가엾은 새끼들일 뿐이다.
좋은 아버지처럼 보이는 렉키는 어떤가. 가족을 배신해선 안된다는 J의 마음을 그는 돌릴 수 있을까. 그가 J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오직 이것뿐이다. “넌 약한 존재야. 아직 어리기 때문이지. 하지만 살아남을 거야. 강한 존재가 널 보호해줄 것이고. 하지만 네 삼촌들은 강한 존재가 아니야.” 렉키는 자신이야말로 J를 보호해줄 수 있는 강한 존재라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렉키가 말한 강한 존재는 그럼 누구일까. 그런 존재들이 세상에 있긴 한 걸까. 렉키는 확고한 선의 수호자라기보다 “범죄자들을 유명인으로 만드는 (미디어가 앞장서 흉악 범죄자들을 스타로 치켜세우는) 세태에 휩쓸리기 싫어서 처음부터 이 작품을 픽션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데이비드 미코드의 입장이 반영된 현실적 캐릭터에 머물 뿐이다.
결말이 불편하고 끔찍하다면
“가족이라고 알려진 살인 기계의 검은 심장을 도려낸, 사라져가는 호주산(産) 범죄물의 진전”(피터 트래버스, <롤링 스톤>), “작가이자 감독인 데이비드 미코드는 은유적인 제목에 걸맞은, 빽빽하게 직조된 도덕적 세계를 창조했다”(J. R. 존스, <시카고 리더>), “먹잇감에서 포식자로 변이한 한 소년에 관해 집중하는, 끈기있는 범죄스릴러”(크리스 보그너, <댈러스 모닝 뉴스>). ‘로튼토마토닷컴’에 주렁주렁 달린 <애니멀 킹덤>에 대한 상찬을 열어보면, 팝 역의 벤 멘델슨, 스머프 역의 재키 위버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배우들의 호연에 대한 찬사까지 확인할수 있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론가들의 박수와 비교하면 관객의 반응은 그에 못 미치는 편이다. 자국 흥행수익은 제작비 59억원(IMDb 추정액)을 넘지 못했고, 미국 개봉 때도 10억원 조금 넘는 수익만을 거뒀다. 아마 이는 <애니멀 킹덤>이 장르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으면서도 이 장르 특유의 유희를 배제하고 있는 데다 대사나 사건으로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대신 침묵과 외부 사운드로 음울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의 반전(위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반전이라기보다 당연한 귀결이다)이 던져주는 얼음장 같은 충격은 몇번을 꼬아놓고 맥없이 놓아버리는 여느 범죄물의 성급한 마무리와 차원이 다르다.
단, J의 마지막 선택을 또 다른 앙갚음이라고 본다면, 혹은 선한 의지의 위험한 발로라고 받아들인다면, 반전의 묘미는 반감될 것이다. J는 복수를 집어든 것이 아니라 복종을 체화했다. <애니멀 킹덤>의 결말이 불편하고 끔찍한가. J는 누군가로 인해 비정한 세계로 등떠밀린 것이 아니다. 누구도 J에게 그러한 행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돌진했다. 왜냐고? 그래야만 갈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뜻대로 행하지 않는 애시의 동조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카메라는 그 중요한 순간에 J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데, J의 침묵에 이런 주석을 달아도 좋을 것이다. “인류의 길고 음울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반항보다는 복종이라는 미명하에 더 끔찍한 범죄들이 저질러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C. P. 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