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뱀파이어 헌터>(이하 <링컨>). 그것도 3D. 제목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된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장르 매시업 소설을 선보여 인기를 얻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마도 제목에 가장 충실한 할리우드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제목에서 느껴지는 조크는 영화에서 볼 수 없다. 관객에게 무언의 윙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크에 가까운 소재를 무척 심각하고 진지하게 접근해 눈길을 끈다. <링컨>은 3D를 통해서 뱀파이어의 쇼킹한 이미지는 물론 화면 구석구석에서 리얼함을 느끼게 해준다. 작은 먼지 알갱이에서부터 뱀파이어의 공격과 대규모 추격전까지.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를 생각하는 관객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이를 위해 감독, 프로듀서, 원작자, 배우들과의 인터뷰도 전한다.
어린 링컨은 뱀파이어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복수를 다짐한 그는 청년으로 성장한 뒤 우연히 뱀파이어를 죽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헨리(도미닉 쿠퍼)를 만나 본격적인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뱀파이어 헌터는 사랑하면 안된다는 헨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링컨(벤자민 워커)은 자기 주장이 강한 메리 토드(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결혼한다. 이후 이야기는 링컨의 대통령 시절로 빠르게 전개된다. 링컨은 청년 시절 그를 가게 점원으로 고용한 뒤 친해진 조슈아(지미 심슨)와 어린 시절 친구이자 이제는 자유인이 된 노예 출신 윌리엄(앤서니 마키)을 조언을 구하는 친구이자 전략가로 가까이 둔다. 본래 윌리엄을 통해 노예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던 링컨은 노예를 소유한 남부 농장 대지주들이 뱀파이어였으며, 마음놓고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예제도를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남북전쟁이 시작되고, 링컨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도끼를 꺼내 뱀파이어와의 전쟁에 다시 뛰어든다.
원작 소설의 착안은 스미스가 <오만과 편견그리고 좀비>를 홍보하기 위해 미 전국을 다니던 2009년, 문학계에서 화제가 된 두 가지 소재 때문이었다. 첫째는 링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관련 서적들이었고, 두 번째는 <트와일라잇>과 <트루 블러드> 같은 뱀파이어 작품들이었다고. 어느 서점을 가도 링컨과 뱀파이어를 함께 볼 수 있었던 스미스의 필연적인 작품이었다. 제작을 맡은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와 짐 렘레이, 그리고 팀 버튼은 스미스의 차기작 제목만 듣고도 영화 구상을 시작했다고. 스미스는 “제목에 큰 관심을 보여서, 소설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몇 페이지 줄거리를 전달했고, 이후 영화화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본래 제작만 생각하던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링컨에 대한 리서치를 하면서 연출에 대한 의지가 커졌다고 한다. “논리적인 선택이었다”는 그는 “미국 감독이 만들기는 더 어려웠을 거다. 신화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미국인에게는 아이콘인 링컨의 이미지를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기가 어려웠을 거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스미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소설에 있는 내용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 대표적인 뱀파이어 역인 애덤(루퍼스 스웰)과 링컨이 노예해방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 시절 친구 윌리엄은 소설에 없던 캐릭터다. 이외에도 <링컨>의 액션장면 중 말을 타고 벌이는 추격전과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열차장면도 모두 새로운 것이다. <링컨>을 3D로 제작한 이유에 대해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지금껏 수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열차와 마차, 말 위에서 보여주는 액션을 새롭고 흥미롭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3D 요소가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링컨>이 액션으로만 가득 찬 영화는 아니다. 링컨이 부인 메리를 만나면서 보여주는 장면장면은 마치 옛 할리우드영화를 연상시킨다.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특정 장면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은 D. W. 그리피스 감독의 <에이브러햄 링컨>(1930)과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라고 밝혔다. 프로듀서 짐 렘레이는 시각적으로 <닥터 지바고>를 연상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무리를 지어 달리는 말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장면의 경우, 아마도 <태양의 서커스>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크게 웃었다.
뱀파이어는 연극배우 전문?
<링컨>의 캐스팅을 보면 유난히 연극무대 출신 배우들이 많다. 유일하게 영화로 시작한 윈스티드는 “유난히 긴장됐던 작품”이라며, “거의 모두가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무척 두려웠지만, 직접 작업을 하게 되니 모두가 편안하게 대해주었다”고 말했다. 유난히 뱀파이어 캐릭터는 연극배우들이 전담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스웰은 특히 원작 소설에 없는 애덤이라는 가장 중요한 악역을 맡았다. 단순한 악역이 없는 <링컨>에서는 대부분이 연극배우 출신이라서 그런지 ‘화면발’이 잘 나오는 장면보다는 상대배우의 눈을 보며 교감할 수 있는 장면들을 가장 아낀다고. 헨리 역의 쿠퍼는 “워커가 영화 경험은 적지만, 언제나 감정적인 준비가 돼 있어 무척 좋았다”며 “그의 눈을 보면 이 장면, 이 순간에 함께 몰입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을 인터뷰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말은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비전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과 <링컨>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인물로 멀리 느껴졌던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기 바란다는 것이다. 워커는 “링컨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그의 콤플렉스한 내면과 인간애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말처럼 지금까지 역사적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 뱀파이어영화는 없었다. 뱀파이어 신화를 가지고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다. 때문에 <링컨>은 현실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나이트 워치>와 <트와일라잇>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판타지 세계를 보여줬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이트 워치>에서 뱀파이어는 정육점 주인이었고, <트와일라잇>에서는 학생이었다. 글래머러스한 귀족들이 아니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캐릭터였다는 것. <링컨>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영화다.
총 6900만달러가량의 예산이 소요된 <링컨>은 미국에서 6월22일 개봉 뒤 현재까지 약 3719만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평론가들의 의견이 크게 갈렸는데, 혹평의 경우 대부분 제목에 부흥하지 않는 영화라는 것. 하지만 호평을 한 평론가들의 의견은 농담 같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영화 소재에 진지하게 접근했으며, 배우들 역시 정직하고 신실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