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류승룡] 나를 누르고 또 끄집어내고
2012-09-17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허균 역의 류승룡

여자들이 카사노바에게 마음을 주는 까닭은 그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내주지만 당신은 나를 ‘독점’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시시각각 일깨워주며 애간장을 다 녹이니까. 굳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란 캐릭터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류승룡은 ‘카사노바’ 같은 배우다.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 그리고 지금 <광해>까지. 섹시함과 섬세함, 강인함과 부드러움. 정반대의 단어를 맛깔나게 요리하며 관객을 능수히 유혹하는 류승룡은 자신에게나 관객에게나 절정을 맛보여주고 있다.

최고의 순간, 그가 이번에 뛰어난 지략가가 됐다. 왕의 곁에서서 율도국을 만들고 싶었던 남자, 허균이 된 것이다. 극중 독살 위기에 처한 광해를 위해 왕의 대역을 세우는 지략을 펼치는 허균은 광대 하선을 진짜 광해처럼 보이게 만드는 ‘킹 메이커’다. 역모의 바람이 불어닥친 궁에서 미쳐가는 광해를 쉽게 저버리지 않고, 보잘것없는 광대 하선조차 백성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품 속 허균은 당대에나 현실에나 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상식적인 누군가다. “<광해>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민심이 반영된 작품이다.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백성과 서민이 원했던 나라와 임금에 대해 상식적인 이야기를 냉철하게 풀어내고자 했다.” 류승룡이 굳이 ‘냉철함’을 강조한 까닭은 그가 맡은 허균 때문이다. 어떤 위기에서도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쉽게 감정에 치우지지 않는 허균은 하선 앞에서나 광해 앞에서나 늘 차갑고 이성적이다. <평양성>이나 <최종병기 활>에서 류승룡이 보였던 호기로운 무인의 모습보다 한층 차분해진 셈이다. 그러나 미동 없는 표정 안에 가장 원대한 꿈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선보이는 허균은 차가우면서 동시에 뜨겁다. 여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슬쩍 건드리는 류승룡표 유머가 한수를 더한다. “원래는 웃음의 포인트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허균의 캐릭터를 잃지 않으면서 영화에 도움이 되는 유머를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화나 그 안의 캐릭터가 끝까지 진지하면 너무 교육적이지 않나. 유머야말로 가장 효과가 큰 설득이자 연설이니까.” 그의 말처럼 <광해>는 눈물보다 웃음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너무 나서지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유머 코드가 작품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무게를 잡는 역할이지만 보여주려고 한 것이 많았던 탓에 감독님은 나를 누르고 나는 또 끄집어내면서 허균이란 캐릭터의 적정선을 찾았던 것 같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일 같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지지직 하고 소리를 내지만 주파수가 딱 맞는 순간 선명한 소리가 나오듯이. 감독, 배우, 스탭 모두 그 조율점을 잘 찾은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배우 류승룡의 행보에 주목하는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었다.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다. 장성기가 내 경험의 확장이었다면(웃음) 허균은 내 안의 다른 모습의 확장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광해>의 허균이 배우 류승룡에 대한 환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스타일리스트 송희경·의상협찬 존 화이트, 더 수트, 로딩, 프리카, 권오수 클래식, 스튜디오 케이, 비제이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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