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스카 남우주연상? 감독상을 먼저 받을지도
2012-11-1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곤 베이비 곤> <타운>에 이어 <아르고>를 연출한 감독 벤 애플렉을 말하다

벤 애플렉의 영화 <아르고>가 개봉한다. 벤 애플렉의 영화라는 말은 온전히 맞다. 그가 제작했고 감독했고 주연까지 맡았다. 영화도 재미있고 연기도 좋다. 연기자 벤 애플렉의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다뤄졌으니 이번에는 감독 벤 애플렉에 대해서 말해보자. 아직은 그가 얼마나 대성할 감독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세편의 연출작을 보자면 할리우드에 지금 주목할 만한 감독이 하나 더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감독 벤 애플렉의 영화세계란 또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아르고>

스물세살의 신인배우 벤 애플렉이 케빈 스미스의 <몰래츠>에 바람둥이로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80년대 악동들의 시대가 가고 90년대의 새로운 악동들이 나오는 중이라고들 말했다. 꼬마 때부터의 친구이자 연기 동료였던 맷 데이먼과 함께 벤 애플렉은 이내 그들 세대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케빈 스미스의 발칙한 청춘영화들 <체이싱 아미> <도그마>에 연이어 출연하며 벤 애플렉은 젊고 패기 넘치는 배우 중 하나로 자리잡아갔다. 그에 관하여 더 놀라웠던 건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들과는 동떨어져도 한참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 <굿 윌 헌팅>의 공동 각본가로 맷 데이먼과 이름을 올리며 숨은 재능을 발휘했고 마침내 오스카 각본상까지 거머쥐었다는 사실이었다. 잘생긴 데다 똑똑한 젊은이의 출현이었다.

그렇게 청춘의 1990년대가 지나고 완숙한 2000년대로 들어서는가 싶었는데, 벤 애플렉은 불행하게도 오히려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훗날 그 자신도 기억하기 싫다고 고백했던 의아한 작품 선택이 당시에 이어졌고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연기도 멈추지 않았다. 한해 최악의 주연배우에 꼽히는 조롱도 당했다. 사람들은 맷 데이먼과 비교하며 충고하기 시작했는데 요점은 간단했다. 벤, 친구를 본받아라, 였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벤 애플렉은 허우적거렸고 결국은 잊혀질 것 같았다.

서서히 회복의 기미를 보인 건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다. 2006년에 출연했던 <할리우드 랜드>와 그를 계기로 수상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반전의 계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벤 애플렉의 첫 연출작 <곤 베이비 곤>(2007)이 만들어진 시기가 이즈음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인다. 벤 애플렉이 그의 영화 인생에서 두 번째 시즌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절실하게 선택한 것 그리고 여전히 연기 면에서는 맷 데이먼보다 한수 아래로 보이는 벤 애플렉이, 맷 데이먼이 아직 해내지 못한 것을 유일하게 해낸 것이 있다면 바로 영화연출이다. 마흔이 된 지금 벤 애플렉은 뛰어난 자신의 영화 세편의 목록을 지닌 어엿한 감독이 되어 있다. 그러니 맷 데이먼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는 정상에 올랐다가 바닥을 쳤고 지금 다시 정상에 올랐다.”

<곤 베이비 곤> 주인공 케이시 애플렉(오른쪽)과 미셸 모나한(왼쪽).
<타운> 감독이자 영화 속 전설의 은행갱단 역도 함께 맡은 벤 애플렉.

뛰어난 데뷔작 <곤 베이비 곤>, 스티븐 킹이 호평한 차기작 <타운>

물론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영화감독을 겸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워런 비티, 로버트 레드퍼드, 가끔씩 로버트 드 니로와 조디 포스터와 조지 클루니, 하다못해 실베스터 스탤론까지… 그들은 연출하고 또 연기도 맡는다. 그러므로 벤 애플렉이 세편의 연출작 <곤 베이비 곤> <타운> <아르고>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놀라운 건 그의 데뷔작이 남다르게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가 <곤 베이비 곤>의 크레딧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고 한때 말했던 건 그냥 좀 심한 자기 검열의 발동에 불과했던 것 같다. 국내에는 개봉되지 않아 DVD로 직행했고 미국에서도 수익 면에서는 그다지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그의 데뷔작 <곤 베이비 곤>은,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미국영화의 뛰어난 데뷔작 명단에 올려도 될 정도로 수작이다.

보스턴의 빈민가에서 소녀가 사라지고 그 소녀를 찾으려는 사립탐정의 추적이 시작되면서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도덕적 문제들이 하나둘 드러나는데 “고상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담백하게 말하는 감독의 말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거대하고 본질적인 그 도덕적 문제들을 유려하고 깊이있게 탐사해 나간다. 캐스팅도 최적이다. 출연한 배우들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주인공인 탐정 역을 친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에게 맡긴 건 특히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여린 듯 보이지만 폭력적이고 무심한 듯 보이면서도 고뇌에 차 있는 이 인물에 그는 잘 어울린다. “구스 반 산트가 맷(데이먼)과 나에게 늘 했던 말이 있다. 캐스팅만 잘해도 90%는 다 된 거라고.” 벤 애플렉은 정말 귀담아들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곤 베이비 곤>에서는 이 초보 감독이 자기 영화의 테마와 리듬과 분위기를 온전히 파악하고 지휘하였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곤 베이비 곤>을 보고 나면 그의 나머지 두 작품 <타운>과 <아르고>는 감독으로서의 재능이라는 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영화라기보다는,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일종의 장르적 포장술과 그 시스템 안에서의 협업의 기술이라는 면에서 더 나아간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까 벤 애플렉의 첫 작품은 이미 뛰어났다.

두 번째 연출작 <타운>(2010)에서 벤 애플렉이 조금 더 강화한 건 범죄영화로서의 장르적 모양새다. 예산은 더 커졌고 연출에서는 전작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된 이 영화를 통해 벤 애플렉은 만듦새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로써 수익이 더 오르는 성과를 냈다. 규모를 늘리고 자기 연출력을 행사하고 장르적으로 분명해지면서 상업성도 커진 것이다. “첫 번째 영화보다는 훨씬 더 넓은 시야를 갖추게 됐다. 어떤 감독들에게는 이 영화가 작은 영화에 불과하겠지만 내게 이 영화는 규모 면에서나 예산 면에서 한 발짝 나아간 큰 영화였다”라고 자신도 말하고 있다.

감독에 주연까지 겸하는 여유도 갖게 됐다. “척 호건의 원작 소설이 정말 좋았고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연출도 맡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시 한번 보스턴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삼되 이번에는 은행 강도단의 이야기이며 은행을 털다가 인질로 잡았던 여인과 어쩌다 사랑에 빠져버린 주인공 역할을 그가 맡았다. 연출자로서 벤 애플렉이 이 작품을 통해 좀더 새롭게 깨달은 게 있다면 편집술에 대한 믿음인 것 같다. “세트장에서 하는 것 이상으로 편집실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영화에 관한 훨씬 더 많은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그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 편집을 통해 영화적으로 이야기의 힘을 팽팽하게 재구성해낼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이때 배운 것 같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타운>에 호평을 보냈고 그중에서도 스티븐 킹은 자신의 그해 최고의 영화 열편을 꼽는 자리에 <타운>을 2위로 올렸다.

<아르고>
<아르고> 쵤영현장의 벤 애플렉(오른쪽).

70년대라는 실화적 톤을 위한 노력들

세 번째 연출작 <아르고>에 이르러 벤 애플렉은 조지 클루니와 공동제작까지 겸하며 제작, 감독, 주연으로 활동한다. 자기의 고향인 보스턴을 벗어나 이란으로 향하고 동시대를 넘어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눈을 돌리는 다소 객관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이때 한 가지 귀담아들을 만한 자기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렇게 생각했다. ‘음, 이게 나의 세 번째 영화라고? 나는 내가 촬영할 줄도 알고 좋은 배우들도 알고 이 시나리오가 죽인다는 것도 알아. 그런 면에서 자신감도 좀 있어. 그렇다면 내게 중요한 건 톤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문제가 되어야 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물론 그게 어려웠지만 말이다. 톤을 잘못 다룬다는 건 뭘 좀 잘못 찍어서 재촬영하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건 완전히 뭐 되는 거고 그럼 영화는 끝장이다.” 이것이 시대극이자 실화였기에 80년대의 시대적 톤을, 실화의 톤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 하는 게 자연스럽게 그의 <아르고> 연출의 화두가 되었을 것이다.

1979년 11월4일 이란의 혁명 중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고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잡자 그중 6명이 대사관 바깥으로 빠져나와 캐나다 대사의 사저에 손님으로 위장해 숨어 지내게 되고 CIA의 구출 작전 전문 요원 안토니오 J. 멘데즈(벤 애플렉)가 이란에 영화 촬영지를 물색하러 온 팀으로 위장하여 그들을 구해낸다는 것이 <아르고>의 이야기다. 스탭들의 말에 따르면 벤 애플렉은 당시 분위기의 톤을 위해서 “워싱턴에서 촬영한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를 쓰지 않았고 할리우드 촬영분에서는 줌을 많이 사용했다. 헬리콥터나 자동차에서 줌을 잡아 70년대 분위기를 보여주는 기술도 사용했다”. 캐나다 대사관에 숨어든 미국인들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에게는 실제로 일주일 동안 세트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린 뒤에 70년대 방식으로 살게 했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인터넷도 모두 금지시키며 그들만의 정신적 유대감을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혹은 대규모 집회 신을 찍을 때는 이란의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소형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직접 군중 안에 들어가 촬영하기도 했다고 스탭들은 전한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할리우드와 혹은 워싱턴과 혹은 이란의 테헤란에서 있었던 실화적 ‘톤’을 조절하기 위해 벤 애플렉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려주는 대목들이다. <아르고>는 작품의 규모나 흥행이나 연출의 능숙함 면에서 벤 애플렉이 연출자로서 점점 더 균형잡힌 자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아르고>
<아르고>
<아르고>

하층민 공동체를 이끄는 영웅과 책임에 대한 관심

<아르고>에는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등장한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 공격이 감행될 것이라는 예고와 함께 캐나다 대사관에 숨은 미국인들을 탈출시키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에 처하자, 그때 주인공 멘데즈는 상사에게 “이 사람들은 우리 책임이에요”라고 말하며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할 것을 결심한다. 그 대사 자체가 인상적이라기보다는 그 대사가 어딘지 모르게 벤 애플렉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여 인상적이다. 결국은 잭 스나이더가 가져갔지만 벤 애플렉이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의 연출을 맡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게 사실이다. 일단은 할리우드가 거대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의 감독으로도 그를 인정해준다는 뜻이 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해 보이는 점이 있다. 어색해 보일 정도로 정의감에 불타 이 지구라는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전통적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의 연출자로 그가 지목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라고 말했던 벤 애플렉에 적합해 보이는 어떤 이야기의 소재들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벤 애플렉은 살인이나 폭력이 일어나는 빈민가이건 혹은 폭력적인 시위대에 둘러싸인 외국의 어느 곳이건 열악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생의 의지나 혹은 그에 따르는 모순의 이야기에 관심있어 하는 것 같다. 그때 단순히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들의 어떤 유형들이 강조되기를 그는 바라는데 그중에서도 하층민적 공동체 또는 위험에 처한 공동체를 이끄는 위태로운 영웅과 그의 책임에 관하여 보다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 영웅의 힘을 낙관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력함을 지적하고 싶기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조지 클루니와 함께 민주당의 극렬 지지자이며 유명 폴리테이너인 그에게, 아직까지 영화는 조지 클루니에 비교한다면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론적 독백 같은 것처럼 보인다. 피하기 어려운 자기 고백이자 독백. 그런 감독들이 때로 기대치 않게 높이 상승한다. 그러니 어쩌면 벤 애플렉이 오스카 남우주연상이 아니라 오스카 감독상을 먼저 수상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우린 너무 크게 놀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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