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계의 과거와 미래가 만났다. 12월1일,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뜻밖의 여정>)의 일본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피터 잭슨 감독과 배우 마틴 프리먼, 앤디 서키스, 리처드 아미티지, 엘리야 우드는 중간계 호빗마을 샤이어에서 방금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소박함과 친절함으로 아시아 취재진을 맞았다. 일본 기자회견에서, 회견이 열리기 전 한국 매체와 가진 20분간의 인터뷰 자리에서 시리즈의 새 출발을 앞둔 그들이 전한 소회와 기대감을 중계한다.
큰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스펙터클 만들었다
피터 잭슨 감독 인터뷰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에 <호빗> 시리즈를 또다시 연출하게 된 계기는.
=<호빗>을 영화화하는 것이 처음에는 확실하지 않았다. 영화의 저작권을 두 군데서 나눠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서 제작이 현실화됐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면 다른 사람이 영화를 찍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시리즈는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즐거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빌보 역의 마틴 프리먼과 소린 역의 리처드 아미티지를 캐스팅한 이유를 듣고 싶다.
=나는 캐스팅을 할 때 배우의 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건 판타지영화를 연출할 때 더더욱 중요한 기준으로 느껴진다. 빌보 역의 마틴 프리먼은 캐릭터에 진실성을 부여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빌보는 유머가 있고 영웅처럼 보이지 않는 의외의 영웅이다. 마틴 프리먼은 한 장면의 테이크를 일고여덟번씩 갈 때마다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영화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 빌보가 이 영화의 심장(heart)이라면, 소린은 마음(Soul)이다. 소린 역을 위해 여러 배우의 오디션을 봤다. 난쟁이들을 이끌고 왕국을 재건하려는, 용맹함과 귀품을 가진 캐릭터를 찾고 있던 중에 리처드 아미티지를 만났다. 그는 패기있는 모습과 왕의 품위를 표현하는 데 적역이었다. 소린은 고요함 속에서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다. 리처드 아미티지는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소린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뜻밖의 여정>은 빌보, 간달프, 소린의 성장영화처럼 느껴진다.
=<반지의 제왕>의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이야기다. 빌보가 나중에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모두 아는 상태에서 <뜻밖의 여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간의 역학 관계가 영화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캐릭터는 이 영화의 엔진이다. 빌보와 간달프와 소린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영화의 색깔을 규정하는 엔진이다.
-<반지의 제왕> 1편과 반복되는 상황과 장면들이 보였다. 빌보의 생일파티로 영화가 시작되고,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꼈다면, <뜻밖의 여정>에선 빌보가 반지를 끼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렇게 반복되는 장면을 통해 두 시리즈의 어떤 차이점을 보여주려 했나.
=나는 두 시리즈가 유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단, 둘 다 톨킨의 작품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비슷한 점이 있다면 호빗의 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두 시리즈 모두 연속적으로 출연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 중간계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 있을 거다. 프로도의 경우 세상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힘든 과정을 거치는 캐릭터인 반면, 빌보는 더 경쾌하고 유머가 많은 캐릭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스타일은 같다. 누군가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의 예고편을 몰아본다면 같은 작품이라고 느낄 수 있길 바랐다. 같은 스타일을 유지해 <반지의 제왕>과 <호빗>을 관통하는 일관성을 주고 싶었다.
-1초당 48프레임을 담는 HFR 기술을 <뜻밖의 여정>에 적용했다.
=많은 제작자들이 최소비용으로 양호한 효과를 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24프레임이었고 그 방식이 85년간 영화산업의 표준 프레임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디지털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기술적으로나 가격적으로 큰 부담 없이 프레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최근 인터넷과 더불어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들이 다양해지면서 극장으로 관객을 이끄는 것이 이전만큼 쉽지 않다. HFR은 감독으로서 실감나는 영화를 만들고, 관객을 생생한 모험 속으로 이끌게 해준다. 화면이 마치 내 옆에 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가장 실제에 가깝게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나는 관객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호빗> 시리즈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HFR 기술을 통해 오직 큰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판타지영화로서의 스펙터클을 경험하도록 해 그들이 극장을 찾을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시 호빗이 될 수 있다니,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마틴 프리먼, 리처드 아미티지, 앤디 서키스, 엘리야 우드 인터뷰
-영화에 출연하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앤디 서키스_다시 골룸으로 출연하게 돼 매우 기뻤다. <반지의 제왕>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재회와 새로운 출연진과의 만남도 좋았다. 물론 물리적이거나 신체적인 어려움도 당연히 있었다.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를 들인 영화에 제2촬영팀 감독으로 참여할 수 있어 내 자신의 능력을 150% 발휘한 영화라 생각한다.
리처드 아미티지_이런 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소린 역에 대한 책임이 부담되면서도 기쁜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피터 잭슨 감독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리메이크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촬영 기간이었던 18개월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
마틴 프리먼_이 영화 촬영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먼저 ‘가족’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출연진과 제작진이 한팀으로 지냈다.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인데 분위기는 빵에 잼을 발라 먹는 것처럼 소박했다. 영화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촬영 내내 즐거웠다. 연기, 더 나아가 예술 등 내가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마틴 프리먼에게 묻겠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빌보를 연기한 이안 홈과 비교되는 것에 대한 부담과 각오가 있다면.
=마틴 프리먼_빌보의 60년 뒤 모습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그 틀을 기초로 연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당연히 이안 홈의 캐릭터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반지의 제왕>과 큰 흐름은 이어지지만, <호빗> 시리즈는 그 자체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진 않았고 오히려 즐거움이 더 컸다.
-앤디 서키스에게 묻겠다. 이번 영화에서 다시 골룸으로 출연했는데, 모션캡처 연기의 노하우를 들려준다면.
=앤디 서키스_모션캡처라는 다른 연기 장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연기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과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를 체화해 자연스럽게 연기하면 된다. 팁을 주자면 오버해서 마치 팬터마임을 하듯 연기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젊은 연기자의 경우 모션캡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나이 많은 배우는 생소하기 때문에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엘리야 우드에게 묻겠다. 19살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첫 출연했고, <뜻밖의 여정>에 출연하는 지금은 서른살이다. <뜻밖의 여정> 세트장에 다시 들어갔을 때의 감회가 어떻던가.
=엘리야 우드_다시 출연 제안을 받고 <뜻밖의 여정> 세트장으로 들어갔을 때 감상에 젖게 되더라. <반지의 제왕>을 시작했을 때부터 4년간 시리즈에 묻혀 살았고, 그 4년이 지난 뒤 영화와 헤어지기가 힘들었다. 나는 프로도라는 캐릭터와 이제 작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시 <뜻밖의 여정> 세트장에 오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촬영은 4일이었지만 한달간 머물면서 새 출연진과 어울려서 가까워지고 기존 배우들과는 회포를 풀기도 했다.
-<뜻밖의 여정>의 두 주연배우, 마틴 프리먼과 리처드 아미티지에게 묻겠다. 서로를 평가한다면.
=마틴 프리먼_리처드 아미티지는 사귀기 쉬운 사람이다. 운동광이기 때문에 같이 운동을 하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웃음) 소린이라는 캐릭터는 목적의식과 자의식이 강한 캐릭터인데 그런 점이 리처드와 비슷하다. 그가 하는 서킷 운동을 따라한 적이 있는데, 마치 자신의 캐릭터처럼 땀도 안 흘리고 묵묵히 몰두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하다가 힘들어서 기절할 뻔했다.
리처드 아미티지_같이 촬영하면서 따로 둘이 친해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같이 맥주를 더 마실걸, 아쉽네. 귀 분장을 뗄 때 알코올을 사용하는데, 내가 술을 더 마시면 분장한 게 떨어질까봐 못 마셨다. (웃음) 마틴의 연기를 벤치마킹했다.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