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노래하라, 우리의 인생을(2)
2012-12-20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뮤지컬에서 영화로 다시 태어난 <레미제라블> 뉴욕 현지보고

CGI 효과 같은 놀라움, 오케스트라

마리우스 역의 에디 레드메인

-영화는 봤나? 기분이 어떻던가.
=며칠 전 완성된 작품을 봤다. 아직도 그때 느낌이 남아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촬영할 때 노래를 부르면 꼭 혼자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아서 “나중에 이상하면 고쳐주겠지” 하고 위안을 삼았는데, 후반작업에서 시위할 때 구호 외치는 정도만 다시 녹음하더라. “톰, 녹음할 게 이게 전부예요?”라고 물었다. 나머지는 현장 녹음된 노래를 그대로 쓴다더라. 촬영 때는 그냥 위협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쓰다니. (웃음)

-CGI가 많은 영화를 찍는 것과 비슷했겠다.
=그러게. 촬영할 때는 CGI처럼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만 피아노 소리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부르긴 하는데, 나중에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더해질 것을 상상해야 하니까.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노래를 받쳐주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크레이지’했다.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지 몰랐다. 원래 노래를 해왔나.
=어렸을 적 학교에서, 그리고 대학에서도 불렀다. 이 작품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명성있는 코치들이 도움을 줘서 너무 즐거웠다. 문제는 스태미나가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로 뮤지컬 경험이 있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뮤지컬영화 찍고 나면 건강이 너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더라. 술도 못 먹지, 늦게까지 나가 놀지도 못하지, 소리도 못 지르지. 영국인으로서 무척 힘든 도전이었다. (폭소) 촬영 다 끝나고 펍으로 달려갔다. (웃음)

-아만다 시프리드와 함께 노래를 부른 소감은.
=매우 즐거웠다. 뮤지컬에서는 아만다가 맡은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묘사됐다. 뮤지컬을 본 이들 중에는 마리우스가 에포닌과 맺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만다는 코제트라는 역을 통해 어둡고 무거운 작품 전체에 밝은 빛을 가져다줬다. 동시에 캐릭터를 강하게 표현했다. 극중 마리우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자, “그러면 아무 소리도 내지 마”(make no sound)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랑 앞에서 말을 더듬는 마리우스에게 아만다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온전한 캐릭터로 코제트를 표현했다.

어릴 적에도 코제트를 연기한 적이

코제트 역의 아만다 시프리드

-<레미제라블>의 팬이었나.
=그렇다. 어릴 적에 코제트를 연기할 기회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17살 때 그만뒀다. <맘마미아!>를 했지만, 음악 레슨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팝스타일인 내 목소리 그대로 불렀다.

-세트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던가.
=원래 노래한 다음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을 피하는 편인데, 솔직히 목소리가 창피해서다. (웃음) 그런데 같은 노래를 계속 반복해 촬영하는데도 아무도 식상해하지 않더라. 특히 뮤지컬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20, 30대 남성 스탭과 인부들도 노래를 즐기더라. 반응이 좋았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믿나.
=믿지 않는다. 5살이나 10살 때는 믿었다. 이제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다.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나 할까. 10살 때였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고 첫눈에 반했었다. 물론 레오는 당시 나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서로 알지만, 감정이 그때 같지는 않다. (폭소)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핸섬하고 능력있는 배우다.

-몇년간 배우로서 크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다. 개인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면.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할리우드 특성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힘든 것이 덜해지진 않잖아.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기자들과 내가 사랑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무슨 옷을 입는지, 어떤 레스토랑에 가는지, 키우는 개의 이름이 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대화는 나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영화배우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게 한다. 길거리에서 누가 날 알아보는 것이 아직도 놀라울 때가 있으니까.

톰 후퍼는 모든 캐릭터를 꿰뚫고 있었다

에포닌 역의 사만다 뱅크스

-톰 후퍼와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떤가.
=톰처럼 똑똑한 사람은 못 봤다. 배우로서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디테일한 분석이 필요한데, 톰은 모든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보다 더했다. 안전하게 가이드를 받는 느낌이었다.

-에포닌처럼 짝사랑을 한 경험이 있나.
=당연하지. (웃음) 짝사랑 안 해본 사람 있나. 그 고통을 잘 안다. 특히 내가 에포닌을 연기한 것은 행운이다. 짝사랑으로 가슴 아파본 사람들을 대표해 깃발을 날려주는 캐릭터 아닌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 사랑을 고백했지만, 이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고통은 정말 표현하기 힘들다. 에포닌의 경우 이보다 훨씬 깊은 고통을 겪는다. 사랑을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등지기 때문이다. 또 그 사랑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사샤 바론 코언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부모로 출연하는데.
=생각할수록 무척 즐거웠다. 헬레나와 만난 첫날 함께 술을 한잔 하다가 갑자기 그녀가 “너가 내 딸이구나”라고 하더라.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폭소) 영화 자체가 어둡고 슬픈 내용인데 헬레나와 사샤가 나오면 너무 즐거웠다. 촬영할 때도 웃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사샤가 내 빰을 때리고, 내가 사샤에게 침뱉는 장면을 찍을 때는 무척 힘들었다. 나는 뺨이 부어올랐고, 사샤는 침 범벅이 됐고…. 다 진짜로 촬영한 거다.

-<레미제라블>은 오스카의 강력한 경쟁작이다. 그 열풍에는 당신도 포함돼 있다. 기분이 어떤가.
=이 작품이 내 첫 영화다. 그 자체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다.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즐기고 있다. 시어터와 영화 세계가 함께 만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상상은 안 했다, 판틴은 지금도 존재하니까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

-이번 아카데미상은 따놓은 거나 다름없는 것 같다. 연기가 엄청나더라.
=오 마이 갓. 감사하다. 죽을 때까지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웃음)

-판틴 역을 매우 잘 소화했다. 함께 관람한 일반 관객이 엄청 울더라.
=고맙다. 내가 처음으로 <레미제라블>을 본 게 일곱살 때다. 엄마가 공장 인부 앙상블과 판틴의 언더스터디 역할을 맡았는데, 어린 나이에 엄마의 연기를 본 것이 내용을 더 ‘리얼’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너무 어려서 ‘솔’(soul)이란 뜻을 당시엔 몰랐지만, 돌아보면 그때 내 ‘솔’에 이 작품이 스며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그 역할이 다시 내 인생에 찾아올지도 몰랐다.

-이 역할을 위해 자료조사도 많이 했다던데.
=판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적 노예로 생활한 여성들의 심리적, 감정적인 상태에 대해 연구했다. 덕분에 연기할 때 과거에 있었던 슬픈 기억을 되살릴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실생활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 역할을 맡았을 때 그렇게 배역에 깊이 몰입할 줄 알았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인지했다. 리서치를 하던 중 한 여성이 “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라는 말을 반복할 때, 그녀가 잃어버린 인생에 대해 가슴이 찢어지게 흐느끼는 것을 자료화면으로 봤다.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매춘을 하게 된 여성이다.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여서 얼굴은 못 봤지만, 그녀의 흐느낌은 마치 영혼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손을 이마에 가져다대며 흐느꼈는데, 그렇게 가슴에 와닿는 절절한 제스처는 처음이다. 바로 저기 판틴이 있다고 느꼈다. 그저 상상으로 하는 연기를 하면 안되겠더라. 판틴이 현실에도 존재하니까. 그래서 사실을 연기하기로 마음먹었고, 나 자신에게 다른 선택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캣우먼에서 판틴으로의 변화가 어렵지는 않았나.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둘 다 여전사이고, 강인하다. 셀리나를 연기하기 위해 받은 육체적인 트레이닝도 판틴을 연기하기 위한 정신적인 준비에 큰 도움이 됐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부터 지금까지 배우로서 큰 변화가 있었다면.
=그 영화를 생각할 때 유일한 후회는 함께 출연한 선배들에게 괜히 주눅 들어서 작업을 즐기지 못한 점이다. 그런 느낌을 견뎌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돼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도, 일단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겨야 한다는 것 말이다.

-판틴 역할에서 벗어나기 쉬웠나.
=난 아직 역할에서 쉽게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남편(애덤 셜먼)과 촬영기간 일부를 함께 보내기로 했는데, 3일 정도 지났을 땐가, 혼자 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애덤과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으니까. (폭소) 역할을 위해선 괴롭고 슬픈 느낌이 필요하기에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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