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손예진] 이상하지 않은 나라의 손예진
2012-12-31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기억을 곰곰이 되살려보자. 영화에서 쉴새없이 뛰고 구르는 손예진을 본 적이 있던가. 남의 지갑을 슬쩍한 적은 있긴 하다고?(<무방비도시> (2007)) 매력적인 소매치기이긴 했다. 대체로 그는 경험 많은 여자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두려워했으며(<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헤어진 남편과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드라마 <연애시대>(2006)). 그뿐이랴. 두명의 남편을 두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아내가 결혼했다>(2008)). 그러니까 어떤 장르보다 감정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루어야 하는 멜로 장르에 주로 출연해온 손예진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타워>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블록버스터 속 그의 모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나보다. <타워>에서 그가 맡은 서윤희는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내 푸드몰의 매니저다. 크리스마스이브, 타워스카이에 화재가 발생하자 건물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는 레스토랑 손님들을 데리고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위기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침착한 캐릭터이지만 블록버스터 속 여성 캐릭터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솔직해지자. 서윤희는 손예진이 아닌 다른 어떤 여배우가 맡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손예진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제가 아니면 안되는 캐릭터를 선택한 게 전작들이라면 이번에는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는 캐릭터였어요.” 그럼에도 그가 <타워>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타워>의 출연 제안이 들어온 게 전작 <오싹한 연애>(2011)를 찍고 있던 때였어요. 감독이 신인이고, 함께 호흡을 맞춘 (이)민기씨가 후배라 저도 모르게 책임감이 컸던 것 같아요.” 맞다. 설경구, 김상경을 비롯한 김인권, 안성기 등 자신보다 경력이 많은 선배 배우가 즐비한 <타워>는 확실히 그가 기댈 부분이 많은 영화이다. 출연한 또 다른 이유는 순전히 블록버스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지금까지 예산이 큰 작품을 찍어본 적이 없어요. 당대의 기술이 투입되는 만큼 블록버스터 계보 안에서 길이 남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촬영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의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고생담이다. 난생처음 경험한 그린 매트 연기는 “생각하면 웃기지만 상상에 의존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고,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에 가까운 수중 촬영은 “뼛속이 시릴 만큼 추웠”다. 몸은 고되었지만 “화기애애했던 현장 분위기 덕분에 참을 만했”다. 이번 작업을 “직장생활”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타워> 현장을 직장에 비유하면 본인은 어떤 직급일 것 같냐는 질문에) 감독님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니 낙하산으로 입사한 대리 정도? (웃음)”

새침데기일 거라 생각했지만 인터뷰 내내 손예진은 털털했다. 원래 “되게 털털하고 솔직하단”다. “요즘 마음이 편해요. 20대 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연기를) 너무 못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했고, 오로지 자신이 하는 연기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작품을 경험한 지금은 몇년 안에 연기를 그만둘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여유로워졌어요.”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없이 한 작품, 한 작품 충실히 해나갈 거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얼마 전 차기작 <공범>(감독 국동석)이 크랭크업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유괴범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되는 딸의 추적극이다.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 가장 감정이 세고, 그만큼 힘들었던 작품”이라고. 어떤가. 손예진의 필모그래피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멜로나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은가.

<씨네21> SNS를 통해 받은 독자들의 질문

-엘리베이터 신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하셨는데,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_Myoungsim Shin(페이스북)
=모든 배우들이 그 신 촬영을 힘들어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기를 하다보니 굉장히 감정이입됐어요. 사람들이 울고, 소리를 지를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분이 이상해지고.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촬영이 끝난 뒤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 크고 예쁜 눈으로 어떻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나요? _vmun(미투데이)
=귀여운 질문이네요. 생각이 많아서 눈에 생각이 보이나봐요. (웃음) 눈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그렇다고 제가 거울을 보면서 어떤 노력을 하진 않아요. 마음에서 눈으로 전해지는 거니까. (웃음)

스타일리스트 안미경, 헤어 구미정(제니하우스), 메이크업 화주(제니하우스), 의상협찬 비비안웨스트우드, 이자벨마랑, 까르뱅, 지미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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