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설경구]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는 설경구
2012-12-31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그는 좋은 배우다. 적어도 그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극판에서 다져진 연기는 데뷔작 <꽃잎>(1996)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고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박하사탕>은 물론이거니와 2009년 최고의 블록버스터 <해운대>에서조차 ‘설경구’라는 세 글자는 연기력으로 상징되는 이름이었다. 그저 작품성있는 영화 몇편의 주연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멜로부터 코미디, 시대극, 블록버스터, 심지어 시리즈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는 걸 알려주면 의외로 놀라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토록 경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대중은 그를 여전히 스타가 아닌 색깔있는 연기자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얼굴 아닌가. 지금 <감시>를 찍고 있는데 (한)효주가 난간위에 걸치고 서 있는 (정)우성이를 보고 ‘진짜 배우 같다’고 감탄하더라. 그럼 나는? (웃음)” 맞는 말이지만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편안하고, 익숙하고, 감정으로 가득 찬 얼굴이다. 아니 어떤 감정이든 채워넣을 수 있는 얼굴이다.

<해운대>에 이어 또다시 블록버스터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묻자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다. “블록버스터의 기준이 뭔가? 5, 6층에서 불나면 블록버스터 아니고 고층빌딩이라서 블록버스터인가? (웃음)”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작품을 고르는 걸로 유명한 그에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기준이 없는 게 기준이란다. 선천적으로 기준을 세우고, 틀에 가두고, 이름을 매겨 줄 세우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작품 선택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대로 하는 편이다. 특별히 시나리오를 보고 고르는 건 아니다. 사람이 좋으면 사람이 좋아서 하고, 작품이 좋으면 작품이 좋아서 하고, 같이하는 배우가 좋으면 배우가 좋아서 하고. 생각해보면 주로 사람 됨됨이를 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타워>도 김지훈 감독이랑 밥 먹다가 결정했다. (웃음)” 그러다보니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제작 보고회 때 기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야 <타워>가 재난영화란 걸 알았다. 펼쳐진 그림이 보이지 않는 세트 안에서 찍다보니 그저 고립된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런 무심함과 창의적인 해석, 그리고 그에 대한 집중력이 그를 배우로 기억하는 이유일 것이다. <타워>를 보고나면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호흡만으로 블록버스터영화 <타워>를 재난을 당한 ‘사람들’ 이야기로 변모시킨다. “끝나고 김지훈 감독한테 전화해서 ‘재난영화였어?’라고 물어보니 웃으면서 인재도 재난이라더라. 그럴 바엔 차라리 참사영화라고 부르는 편이 낫지 않나? 사실 많이 대피시켰는데. (웃음)”

그에게는 연기조차 ‘연기한다’는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저 카메라 앞에서 하는 대화에 불과해 보인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기는 역할 전반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이어진다. <타워>의 소방관 역할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했냐는 질문에 훈련을 받긴 했어도 어려운 건 없었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뒤이은 대답은 영락없는 소방대원의 그것이다. “불과의 사투라는 기사를 보며 창피했다. 안전장치 다 하고 하는 건데. 위험하고 급박했던 ‘순간’은 없었다. 진짜 소방관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소방관분들은 전설이고 영웅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존경받아야지’ 하고 그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분들에게는 그저 일일 뿐이다. 그래서 더 존경받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소방관의 ‘일’과 배우의 ‘일’에 임하는 그의 태도가 겹쳐 보이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타워>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묻자 “영화를 보고 나면 집에 전화 한통 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살더라도 ‘엄마 뭐 해?’라고 괜히 다시 안부 한번 묻고 싶어지는.” 블록버스터라는 의식도 장르영화라는 경계도 없이, 작품을 고를 때부터 끝나고 난 뒤에도 그의 초점은 오로지 사람에 맞춰져 있다. 고로 그는 좋은 배우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배우다.

<씨네21> SNS를 통해 받은 독자들의 질문

-최근 들어 <해결사> <해운대> <타워> <협상종결자> <감시> 등 규모가 큰 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이창동 감독님과 작지만 울림이 큰 영화를 할 계획은 없는지…. 두분이 함께하는 영화를 언제 또 볼 수 있나요? _ActorDaram2(트위터)
=여기저기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 걸 보니 이제 배우에 집중하는 영화를 할 때가 됐구나 싶다.물론 하고 싶고 조만간 할 예정이다.

-<타워>를 어떤 분들께 추천하고 싶나요? _아이미(미투데이)
=12살 이상은 전부? (웃음)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강지영(INTREND), 의상협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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