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클래식]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에게
2013-01-18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주머니 속의 주먹> I Pugni in Tasca, 마르코 벨로키오, 1965년
<주머니 속의 주먹>
<주머니 속의 주먹>

<홈부르크의 왕자>를 볼 때만 하더라도 마르코 벨로키오가 끝장난 줄 알았다. 새로운 이탈리아영화의 시대를 열었던 감독은 지루한 시대극을 만들고 있었다. 몇해 뒤, 밀란의 한 스크리닝 룸에서 <내 어머니의 미소>를 보았다. 이탈리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난해한 영화였으나 그건 걸작이었다. 이후 벨로키오가 발표한 작품과 연결되면서 걸작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벨로키오는 이어 (몇편의 다큐멘터리와) <굿모닝, 나잇>과 <웨딩 디렉터>를 발표했다. <내 어머니의 미소>는 아들 세대가 바라보는 어머니에 관한 영화이고, <굿모닝, 나잇>은 딸 세대가 바라보는 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즉, 부모 세대에 저항하는 역사를 썼던 벨로키오 세대가 잃어버린 부모를 새롭게 읽는 영화였다. <웨딩 디렉터>의 의미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근래 <승리>(Vincere)부터 <잠자는 미녀>까지 특유의 정치영화를 완성하는 중인 벨로키오의 새 시작은 가족에 대한 관점의 변화에서 기인한다(물론 그것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다).

벨로키오 영화에서 가족의 의미는 각별하다.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의 도움으로 만든 자전적 데뷔작 <주머니 속의 주먹>은 그야말로 가족을 박살내는 영화였다. 보수적인 이탈리아사회와 부모 세대는 치를 떨며 기겁했고 상영 중지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교외의 중산층 가정, 맹인인 어머니와 네명의 자식이 살고 있다. 장남인 아우구스토는 어머니는 물론 세 동생 때문에 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알레산드로와 넷째 레오네는 간질 환자이고, 셋째 줄리아도 균형 감각에 문제가 있다. 주인공 알레산드로(스웨덴 배우 루 카스텔이 연기했다)는 복잡한 심리상태와 해결할 길 없는 상황으로 인해 괴로워한다(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안겨 “난 너무나 불행해요”라고 속삭인다). 그는 속박의 공기를 내뿜는 어머니와 두목으로 행세하는 형, 그리고 머저리 같은 막내가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줄리아를 사랑하지만, 근친상간의 고통은 그의 정신질환을 더욱 부추긴다.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알레산드로는 마침내 어머니 살해범과 형제 살해범의 운명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줄리아와 자신의 자유를 위한 해결책이라고 여긴다. 벨로키오가 존경했던 루이스 브뉘엘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조차 쓴소리를 냈다고 하는 <주머니 속의 주먹>은 ‘부르주아 가족의 가치와 가톨릭 도덕률의 눈을 정면에서 찌른 송곳’으로 평가받곤 한다. 바로 전해에 발표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혁명전야>와 함께 <주머니 속의 주먹>은 곧 다가올 68혁명의 시대와 자연스러운 동맹 관계를 맺게 된다. 근 몇년 사이에 제3세계는, 수십년 동안 군림했던 독재자들을 땅 밖으로 축출하는 역사를 이루어냈다. 그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수십년 전에 죽었던 독재의 망령이 귀환하는 치욕적인 역사를 쓰게 됐다. 독재의 시대를 달콤하게 추억하는 세대는 제거당해 마땅하며, 그들로 인해 더러운 역사를 떠안게 된 미래의 세대는 구세대의 죽음 위로 새 역사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주머니 속에 주먹을 감춘 채 머릿속으로만 괴로워하면 안된다. 주먹은 휘두르라고 존재하는 것, 미래는 행동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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