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윤종빈 감독, 김태호 PD를 만나다
2013-02-19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전 언제 윤종빈 감독에게 질문하나요?” 윤종빈 감독의 연타 질문 공세에 김태호 PD가 당황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그저 순수한 <무한도전>의 팬으로 작정하고 왔다는 윤종빈 감독이다. 유재석이 <무한도전> 달력을 전달하는 ‘무한택배’ 편에서 ‘살아 있네~’를 연발하기 직전, 윤종빈 감독은 뒤늦게 <무한도전>의 팬으로 합류한 참이었다. 질문이 두서없어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윤종빈 감독은 팬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해 <무한도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같은 연출자이기에 느끼는 기획, 편집권의 고민을 너르게 아우르며 인터뷰의 맥을 이어나갔다. 예능과 영화계에서 줄곧 남자, 캐릭터와의 전쟁을 해온 두 감독. 오늘의 만남이 무한만남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그들의 대화를 공개한다.

윤종빈_결혼하고 <무한도전>(이하 <무도>) 팬이 됐다. 결혼하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나. (웃음) 그래서 IPTV를 설치했다. 원래는 스포츠중계 말고 TV는 거의 안 봤는데, 이제 <무도>는 꼭 본다. 파업으로 <무도>가 방송하지 않을 때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방영한 <무도>를 역순으로 다 봤다. <무모한 도전>(<무도>의 전신)도 다운받아서 다 봤다. 요즘은 아내와 유일하게 함께하는 문화생활이 <무도> 보는 거다. (웃음)

김태호_영광이다. 달력편에서 ‘살아 있네~’를 한 건 (유)재석씨 영향이 컸다. 재석씨가 바빠서 극장을 못 가니까 주로 IPTV로 영화를 보는데 뒤늦게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 꽂힌 거다. 우리 팀 모두가 워낙 좋아한다. 하정우와 조직원이 다 같이 걸어오는 장면은 특히 놀랍다. 느낌이 확 오더라. 보고 나서 이거 2탄 나온다 안 나온다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마지막에 “대부님” 이런 대사도 나오지 않나. 그래서 <대부>처럼 세대를 거쳐서 아들이 주인공으로 나올 거다, 아니다 아들 역 배우가 아직은 주연급은 아니라 그렇지 않을 거다 의견이 분분했다. (웃음)

윤종빈_농담 삼아 우리끼리 ‘속편 한번 해볼까’ 하긴 하는데, 될지 모르겠다. (웃음)

캐릭터가 정말 ‘살아 있네~’

윤종빈_<무도>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캐릭터다. 사람들을 워낙 잘 알게 되니까 마치 내 친구처럼 저 사람을 다 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게 한편으론 <무도>만의 방식이자 스타일이라 계속 보는 사람이 아니면 집중도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김태호_우리도 대중적으로 갈지, 지속적인 팬층을 안고 갈지 결정한 지 4년 정도 됐다. 새롭게 영입되는 팬은 나이 많은 분이 별로 없다. 우부모님도 시끄럽다고 잘 안 보고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하 <스타킹>) 보시더라. (웃음) 기존의 팬층이 나이 먹어가면서 그대로 유지되고, 더불어 어린 팬층이 들어오는 모양새다.

윤종빈_많이 만들다보면 회차마다 편차가 있을 것 같다. 이건 좀 아쉽다 싶어도 매주 방송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김태호_맞다. 매주 나가는 방송이 제일 부끄럽다. 찍은 사람들만 아는 사연이 있잖나. 이틀만 더 있으면 잘되었을 텐데 하는 것 말이다. 스케일 벌렸다가 망한 특집은 더 기억에 남는다. 시청률이 중요하지는 않다. 그냥 우리끼리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하는데 그게 안되면 참 안타깝다.

윤종빈_<무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추격전이다. 추격전은 굉장히 영화 장르적인 장치인데, 그걸 예능에 접목한 게 참 재밌었다.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이하 <런닝맨>)의 원형이기도 한데, 어떻게 시작했나.

김태호_영화감독들이 추격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첨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포스터에서 착안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고 써 있기에 ‘우린 저 세놈 다 있는데. 저기다가 세놈만 더 넣으면 되겠네?’ 싶었다. 그래서 돈가방을 주고 시작했다. 예능은 치밀하게 규정지어놓으면 흐름상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다. 일단 300만원 놓고 시작했다. 이기는 사람 주겠다고 했더니 평소와 너무나 다른 모습과 열의를 보이더라. (웃음) 다른 장치 없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내러티브가 생성되었다. 그러다가 메시지도 좀 넣어보자 해서 나온 게 ‘여드름 브레이크’였다. 추격전은 사전지식이 없어도 재밌고, 심각하게 안 가도 되는 장점이 있더라.

윤종빈_300회 넘으니 이젠 아이디어 뽑는 것도 힘들지 않나.

김태호_8년차 되니까 ‘이거 한번 해봅시다’ 하는 건 시청자가 기대를 안 하더라. 제일 재밌는 순간은 캐릭터가 생성될 때인데 이제 우리는 뭘 해도 예상이 되니까 미리 반응을 예측하고 그걸 어떻게 피해갈지만 일주일 정도 고민해야 하는 거다. 매주 방송하는 게 한계가 왔나 싶은 생각도 든다. 멤버들 모두 바쁘고, 방송 분량은 더 늘어났고 그런데 매주 만들어야 하고.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인 거다.

윤종빈_보통 촬영기간이 얼마나 되나.

김태호_10월엔 한달에 24일 촬영했다. 예능은 일주일에 하루 찍는 게 맞는데, 가끔 스케줄이 너무 안 맞는다. 우린 항상 다른 프로보다 1분 안에 웃음이 많거나 긴장감이 많거나, RPM 개념으로 몰입도를 높이자는 생각을 공유해왔다. 찍어놓고도 고민이 많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니니까 뭔가를 더 넣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영화감독 윤종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8년째다, 익숙함이 칼이 되어 돌아올 때 아닌가

윤종빈_추격전 외에도 배워가는 코너, 장기 특집 등이 있다. 지금까지 했던 것 말고 새롭게 기획하는 것도 있나.

김태호_장르적인 실험을 해보고 싶다. 원래 우리의 기획의도는 2% 부족한 사람들의 도전인데, 언젠가부터 더이상 그런 부족함이 없어졌다. 달려가서 싸우고 뒹굴고 이런 배고픔, 절박함이 없는 거다. 한편으론 계속 그런 것을 내세우는 게 가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캐릭터도 확고해져버렸다. 그런 게 문제다. 8년을 했으면 그럴 만도 하다. 시트콤이건 드라마건 다 마찬가지다. 드라마 <전원일기>만 해도 캐릭터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익숙함을 안고 가야 하는 건데, 오히려 그 익숙함이 칼이 되어 돌아올 때가 됐다. 그래서 플랫폼, 판, 환경을 계속 바꿔보는 방식을 가져오는 거다.

윤종빈_쭉 보면서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는 것 같더라. <프렌즈>를 보면 왠지 그들이 내 옆의 사람들 같고, 친구 같고 아주 잘 알게 되잖나.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시즌8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은 그들끼리 멜로 라인이 있다는 거였다. 커플도 중간에 바뀌고. (웃음)

김태호_나도 보면서 ‘오죽하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할 게 없으니까 멜로로 가는구나, 6명 안에서 나오는 모든 관계를 다 하나씩 뽑아 쓰는구나 싶더라.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리얼한 세상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드는데, 한편으로는 스토리 라인이 정말 나올 게 없어서 택한 선택이겠구나 싶은 거다. (웃음)

윤종빈_<무도>가 유일하게 못하는 장르가 멜로 아닌가. 여자가 없으니까. 대신 멤버간의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는 꽤 있었다. 예를 들어 하하와 정형돈이 어색했을 때 멤버간의 관계 같은 건 충분히 멜로 이상의 감흥을 줬다. 그래서 내가 이런 에피소드를 생각해봤다. 멤버간의 관계를 정리해주는 특집 해보는 것은 어떤가? 일종의 전사(前事) 정리다.

김태호_안 그래도 얼마 전에 후배들과 얘기하다가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처럼, <우정과 전쟁>으로 한번 가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진짜 리얼한 라이프를 보여주면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금 극화해서 보여주자는 거다.

윤종빈_멤버들이 이젠 다 스타가 되고 유명해졌다. 혹시 촬영 오래 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나. 감독을 하다보면 연기하는 걸 귀찮아하는 배우도 보게 된다. 뭐 이리 많이 찍냐, 이 정도면 괜찮은데 그냥 가자, 이러면서. 배우라고 다들 연기에 목숨 거는 건 아니더라. (웃음)

김태호_우리도 드라마타이즈 할 때는 그렇다. 그냥 투숏으로 끝내지 이러면서. ‘무한상사’ 찍을 때는 좀 귀찮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거 말곤 처음부터 똑같았다. <무도>가 이만큼 오는 데는 멤버들의 희생이 컸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이 하루에 프로그램 하나씩 해도 돈의 가치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건데…. (웃음)

윤종빈_멤버들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판을 만들고 편집하는 건 제작진의 몫이다. 그들의 취향이나 정치 성향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태호_우리 PD가 조연출까지 7명이다. 초창기에는 나랑 조연출 둘이서 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로 전달 가능했는데, 이제는 똑같은 뉘앙스로 이야기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들 창작자다 보니까 자유는 주되 기본적인 가이드라인, 대강의 흐름, 화법, 이런 것은 정해두고 간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프로그램이 옴니버스같이 되더라. 한쪽은 자막 자체가 설명조로 가고, 어떤 쪽은 아예 자막이 없기도 한다. 시청자도 처음에는 잘 몰라도 누적되면 뭔가 일관성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다.

멤버들의 사생활과 재미 사이의 균형 잡기는?

윤종빈_영화 편집하다보면 연기는 좋은데 배우들의 안 좋은 모습, 얼굴이 이상하게 나온다거나 신체 부위가 흉하게 보인다거나 그런 것 때문에 알아서 없애주기도 한다. 예능의 경우엔 어떤가. 웃기기는 한데 멤버 개인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은 장면은 거르기도 하나.

김태호_토크이다 보니 자주 쓰는 단어나 말버릇 같은 것을 솎아낸다. 유재석 같은 경우 ‘여러 가지’, ‘이’, ‘그’, ‘저’ 같은 말을 유독 많이 쓰는데 그런 건 잘라낸다. 그건 멤버에 대한 정성이고, 성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캐릭터가 잘 살고 멋있고 재미있어야 그게 우리의 자랑이 되지 않나.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예능 프로가 그럴 거다.

윤종빈_자연스럽게 하다보면 수위가 높은 이야기도 나올 텐데 그럴 땐 어떻게 하나.

김태호_재밌어도 수위 때문에 빼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얼마 전 동영상 유출사건(‘무한상사 두 번째 이야기’편에서 박명수가 욕설을 한 걸 편집에서 뺐는데 그 영상이 유출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명수가 센 욕을 하면 그런 것은 알아서 뺀다.

윤종빈_역으로 PD는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멤버들이 가만히 와서 빼달라는 경우는 없나.

김태호_영화는 대본대로 가서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 않나.

윤종빈_그렇긴 한데 보고 나서 조금 달라지긴 한다. 중간 시사 때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 내가 볼 때는 필요없는데 특정 장면을 꼭 넣어달라는 식이다. (웃음)

김태호_프로그램에 ‘리얼’이라는 말이 항상 들어가니 알아서 조심하게 되는 게 있다. 박명수의 흑채 같은 경우도 하하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박명수가 격분했다. 그런데 다음 주에 CF 들어오니까 또 좋아지더라. 다들 가정이 생기면서도 달라졌다. 가령 느닷없이 혼자 사는 형돈이 집에 들어갔는데, 그제 먹던 제육볶음 남아 있고 옷방 열어보니 빨래가 많이 쌓여 있다면, 예전에는 막 찍었는데 이제는 안된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시청자 입장에서 친근함이 사라졌다 싶기도 하다. 그럴 땐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다른 걸 찾아보려 한다. 멤버들도 나이를 먹어가니 지켜줘야 할 것이 분명히 있더라.

윤종빈_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가니까 개인적인 부분과 프로그램의 흥망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멤버들의 사생활과 재미 사이의 균형을 잡기가 참 힘들 것 같다.

김태호_우리가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반드시 쓰고, 의견이 달라지는 부분은 조율해서 해결한다. 그런데도 워낙 격이 없다 보니까 비방용 단어가 많이 나온다.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이걸 꼭 내보내야 하는데, 내보내자니 방송법에 걸리고. (웃음)

윤종빈_이번에 15세 관람가 영화(4월 크랭크인 예정인 <군도>)를 처음 해봤는데 답답해 죽겠더라. (웃음) 콘티를 짜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내 취향상 이 순간에 누구 목이라도 날아가야 하는데, 15세 관람가 영화는 신체 절단은 안된다. <범죄와의 전쟁>은 처음부터 청소년 관람불가로 생각하고 갔었는데 이번엔 예산이 100억원 넘어가니까 수익구조상 무조건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야 되더라. 기획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가니, 제약이 생기는 거다.

김태호_우리도 12세 관람가인데, 연출 막내가 25살이다. 이미 성인이고 알 것 다 아는데…. (웃음) 가끔 깊숙이 들어가다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다 걷어내야 하니 답답하다. 한번은 하하가 길에서 담배 피우는 걸 보고 지나가던 애가 울었다더라. 집에서 TV 볼 때는 하로로고 친구인데 이미지의 충돌이 생긴 거다.

PD 김태호 MBC <무한도전>

새로운 멤버 영입은 ‘먼 나라 이야기’인가

윤종빈_각 멤버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도 다 다르지 않나.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낮은 멤버를 볼 때는 어떤 생각이 드나.

김태호_우리는 아예 대놓고 얘기를 한다. 항상 유재석이 1등이라 다들 불만이 있는데 오히려 그걸 소재로 써버린다. 지난해 12월에 우리끼리 모의 연예계 대통령선거를 해보려고도 했다. 당을 만들고, 코미디분과 지지 선언 얻어내고, 정책내고, TV토론 하는 거다. 그런데 다른 사람 다 합쳐도 유재석한테 안되더라. 이런 부분은 충분히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요제 할 때의 음원판매량도 인기순위 따라간다. 멤버들의 캐릭터 상품이 품절되는 순서도 다르다. 지금은 그때보다 격차가 많이 줄긴 했다. 때로 에피소드의 주제에 따라서 다른 멤버가 유재석을 꺾을 때도 있다.

윤종빈_현재 멤버들 때문에 새로운 멤버를 못 들이는 경우도 있나.

김태호_7명을 데리고 가는 체제가 우리 프로그램의 가장 큰 포맷이 되어버렸다. 멤버 하나 들어오고 나가는 걸 놓고 시청자의 반응이 들끓었다. 반대로 들어오는 쪽도 부담이 있었다. 하하가 공익 갔을 때 빈자리를 메울 멤버를 섭외했는데,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예능 잘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들 못하겠다고 하더라. ‘거기 들어가면 내가 못 버틸 것 같다’며 거절하더라.

윤종빈_그 부분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은 찾았나.

김태호_요즘은 인원이 필요하면 준패밀리 개념의 멤버를 꾸려서 운영한다. ‘무한도전 월드’가 있으면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는 불변으로 확고하게 가고, 나머지를 조금씩 변화하는 방식이다. 이것도 계속 하면 식상하다. 그래서 조금 어색하지만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한다. 3월쯤 ‘<무한>의 예능 새 인물’ 해서 기존의 멤버들이 새로운 사람을 육성하는 기획을 생각 중이다. <무한> 멤버들이 1명씩 신진 인물을 데려와서 꿈나무로 육성하고, 오디션도 해보는 거다. 어쨌든 예능에도 재원이 많으면 좋지 않겠나.

윤종빈_업무량은 어떤가. 집에는 잘 들어가나.

김태호_이거 말고 아무것도 못한다. 그제도 (노)홍철이랑 새벽 4시까지 작업했고 어제도 늦게까지 일했다. 아내 자는 얼굴만 보는 것 같다. 그럴 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새벽이라 감상적이지 싶기도 하고. (웃음)

윤종빈_나도 어제 새벽 3시에 들어가서 아내와 아기 자는 얼굴만 봤다. 촬영을 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김태호_그래도 영화는 한편 마치면 빈 시간이 생기는데, 우리는 준비할 시간이 아예 없으니까 그게 안타깝다. 젊을 땐 패기로 밀고 나갔는데 이제는 가정도 있고 나만 생각하면 안되겠더라. 월화수에 그주 방송분 준비하다가 목요일 녹화 끝내고 금요일에 시사와 편집하고, 토요일 저녁에 테이프 넘긴다. 그러고 집에 와서 자고 일어나면 일요일 오후고, 촬영 관련 미팅하면 벌써 월요일 아침이다. 책 한권 못 읽고 회사 가는 거다. 인풋 없이 사는 느낌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패러디한 <무한도전>.

김태호와 <무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비친다

윤종빈_나도 <범죄와의 전쟁> 끝나고 좀더 쉬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찍을 때는 머릿속에 뭐가 안 들어온다. 영화 관련된 자료나 책도 다 못 보니 다른 책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다음 작품 시작해버리면 배우는 게 없이 그냥 또 소진되는 거다.

김태호_나 개인의 성장이 저해되는 것은 괜찮은데, 시청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면 안되니까 그 고민이 제일 크다. 길게 여행도 다녀오고 싶은데…. 나만 변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요즘 고민은 예능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기있는 예능도 똑같은 것 반복하다가 결국 소재가 고갈돼 끝나는 게 운명이다. 예능 스스로 초래한 면도 있다. ‘이거 해야 광고 받지’ 하면서 말이다.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딱히 해결책이 안 떠오른다. 내가 안 바꾸면 후배들도 똑같이 이런 걸 반복할 텐데 말이다.

윤종빈_특정한 1인에 의존하는 프로그램 제작방식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김태호_나와 <무도>가 마치 나무뿌리가 바위를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비치는데, 방송에는 그게 안 좋은 것 같다. 나도 사람인지라 갑자기 마음이 바뀔 수 있고, 어느 날 종교에 귀의할 수도 있는 건데. (웃음) 이상문학상처럼 다양한 PD들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좋았다 싶은 프로그램에는 방송우선권이나 캐스팅권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

윤종빈_예능의 목적은 방송국 입장에서는 시청률이고, 관객은 웃음일 수 있을 거다. PD로서 생각하는 개인적인 목표나 윤리의식은 어떤 건가.

김태호_<무도>니까 ‘무도스러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다. 처음 후배들이 들어오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무도>만의 정해진 스타일을 지켜야 하는 거다. 자막도 쉽게 못 쓴다. 아무리 길어도 15자 미만이어야 하고, 지나치게 서술형이어도 안되고, 한번 더 생각해서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야 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야 하고, 궁서체는 최대한 아껴서 정말 웃기겠다 싶은 데만 쓰고. 이런 우리만의 암묵적인 합의점이 있다. 각자 맡은 파트가 얼마가 되든 거기에 자신의 역량을 다 넣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로서는 이게 최선이고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다. 좀 잘 봐줬으면 한다. 잠깐, 그런데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건 아닌가?

윤종빈_곧 쉰다고 하니, 그 문제 해결되면 다시 보자. (웃음) 옛날 노래 신청할 수 있는 음악카페에 자주 가는데 그곳에서 봐도 좋겠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