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였던 ‘복수 3부작’을 지나 박찬욱의 시선은 소녀와 여자의 경계에 위치한 ‘딸’에게로 향했다. <스토커>는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성년을 맞이한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프스카)의 이야기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날, 해외를 유랑하던 삼촌(매튜 구드)이 집으로 돌아온다. 유약하고 아이 같은 엄마(니콜 키드먼)는 삼촌에 매료되는 듯 보이지만, 어른스럽고 예민한 감각을 지닌 인디아는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그렇게 가족과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던 인디아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삼촌과의 동거라는 점에서 히치콕의 1943년작 <의혹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테지만, 정작 <스토커>를 보며 히치콕의 그림자를 떠올리기란 어렵다. 무엇보다 주인공 인디아의 존재가 그러한 비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벨트와 엄마의 블라우스, 삼촌의 구두”를 몸에 두른 나이, 다시 말해 아직은 온전히 그녀만의 것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18살 인디아의 성장통을 영화적 요소로 체화하는 데 <스토커>는 많은 공을 들인다. 정든 집을 낯설고 위험한 공간처럼 보이게 하는 정정훈의 촬영, 귓가에 못처럼 박히는 클린트 만셀의 명징한 음악과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듯 관능적인 필립 글래스의 피아노곡은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춘기 말미 소녀의 정서를 닮았다. 무엇보다 <스토커>는 이러한 영화적 요소들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박찬욱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이 완벽하고 탐미적으로 설계된 영화 미로의 가이드라인을 쫓다 보면 의외의 즐거움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스토커>는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감독 박찬욱의 노련한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