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자유를 가능케 한 순응
2013-03-27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시네아스트의 초상: 장 르누아르_규칙과 예외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3월28일부터
<우리의 후견인 장 르누아르 3부: 규칙과 예외>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

쾌활한 비극. 앙드레 바쟁을 포함해 장 르누아르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많은 시네필들은 그의 영화를 말할 때 저 형용모순을 즐겨 사용했다. 네오리얼리즘의 산파나 다름없었던 그는 인간의 심리, 사회적 갈등을 묘사하는 데 있어 어떤 모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예술가였다. 물리적 차원에서도 그는 영화사를 통틀어 포용력이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하나였다. “감독이 사용하는 도구는 환경에 대한 지식과 환경의 영향에 고개 숙이는 자세일 뿐”이라 여겼던 그의 순응적인 태도가 그토록 자유로운 미장센과 카메라워크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는 배우의 매력, 자연적 배경, 인공 세트와 소품 등 서로 다른 요구를 지닌 요소들에 기꺼이 굴복하는 가운데 ‘균형’과 ‘자유’를 추구했다. 그 신비로운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3월28일부터 4일간 열리는 ‘시네아스트의 초상: 장 르누아르_규칙과 예외 전’을 찾아봄직하다.

우선 자크 리베트의 다큐멘터리가 르누아르만의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현 프랑스 예술 전문 채널 <아르테TV>에서 제작한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리베트가 1967년에 만든 <우리의 후견인 장 르누아르> 3부작은, 르누아르의 영화들의 창조 과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1부 <상대성의 탐구>에서는 르누아르와 그의 동료들이 개별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2부 <배우의 연출>에서는 일흔이 넘은 르누아르와 배우 미셸 시몽이 함께했던 작품들에 관해 가볍고도 의미있는 일화들을 풀어놓고, 3부 <규칙과 예외>에서는 르누아르가 <게임의 규칙>과 <라 마르세예즈>의 클립들을 바탕으로 캐릭터 설정부터 편집에 대한 태도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작업 규칙과 예외를 설명한다. 그 모든 말들을 충실히 담아내고자 했던 리베트는 최소한의 편집으로 르누아르와 그의 친구들의 친밀한 대화를 전달한다.

함께 상영되는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1932), <인간야수>(1938), <탈주한 하사>(1962)는 르누아르의 작업의 규칙과 예외가 빚어낸 대표작들이다. 그중 르네 포슈아의 희곡을 각색한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가 특히 아름답다. 캐릭터 창조 능력과 자유의 탐구에 있어 르누아르와 시몽의 긴밀한 협업이 시적 결과물을 낳았다. ‘부뒤’는 개봉 당시 파리 중산층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뜬금없이 센강에 투신했다가 어느 한 부르주아에게 구출되지만 그는 삶의 풍요와 도덕을 업신여겼다. 맨손으로 정어리를 집어먹고, 구두를 닦으려다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며, 발자크의 책에다 침을 갈겼다. 바쟁의 말마따나 이 “장엄하도록 외설적인” 히피의 선조는 실로 르누아르 영화의 자유분방함을 최고 수준으로 체현한 인물이다. 결혼 직후 다시 강물에 몸을 던진 채 한참을 떠내려가는 이 무정부주의자의 몸짓과 그의 자유로운 운동을 허락하는 카메라는 유쾌하다 못해 시원하다.

르누아르는 영화를 통해 “인간이라 불리는 그 놀랍도록 복잡한 피조물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인간야수>에서도 그는 “나름의 이유를 지닌” 인간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가 “오이디푸스 왕만큼이나 흥미롭게 여긴” 주인공 자크 랑티에는 선조로부터 발작증을 물려받은 기관차 정비사로, 우연히 동료의 살인을 목격한 뒤 그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밀애가 파국을 향하는 동안, 카메라가 운명을 향해 달려가는 자크 라티에와 그의 운명을 지나쳐 계속 달려가는 기차를 담담히 비춘다. 그런가하면 세계 2차대전을 배경으로 전쟁 포로들의 탈출기를 다룬 <탈주한 하사>에서는 “자유만이 유일한 주제”다. 하지만 장 두셰가 <위대한 환상>보다 <밑바닥 인생>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 이 비참한 역사드라마에서도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겪는 내적 모순과 해소의 과정을 선입견 없이 끌어안는 르누아르의 태도일 것이다. 그 태도에서 비롯된 그의 영화적 풍요로움은 21세기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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