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류의 시작은 우리였지”
2013-04-18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이국정원> 출연한 배우 윤일봉 인터뷰

반세기가 훌쩍 넘어 자신의 출연작 <이국정원>을 다시 보게 된 원로배우 윤일봉은 그야말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이국정원>에서 윤일봉은 주인공 김수평(김진규)의 친구이자 홍콩 주재 한국영사관 직원인 박철고를 연기한다. 그는 “솔직한 얘기로, 조연으로 출연한 데다 지금까지 영화며 방송이며 출연한 작품이 200편이나 되다보니 내가 무슨 장면에 어떻게 나왔는지 잘 기억을 못한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물론이고 <이국정원>의 영화사적 의미를 꼼꼼하게 짚어주었다.

-최초의 한/홍 합작영화에 출연했다. 자부심이 상당했을 것 같다.
=홍콩의 쇼브러더스와 합작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에 다들 참 놀랐고, 많이 부러워했다. 그때 김진규, 최무룡, 나 이렇게 셋이서 홍콩에 갔다. 홍콩에 가기 전 국군묘지에 가서 참배도 했다. 총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살아온 게 몇년인가. 나라에선 이런 문화사업으로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것 같다. 여의도 비행장에서 육군 군악대의 환송도 받았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영화에 참여한다는 자긍심이 굉장했다. 그리고 홍콩에 도착했는데, 내 평생 그렇게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많이 받은 건 처음이었다. 홍콩에서 저녁을 먹는데 뉴스에 우리가 나오더라. <사랑하는 까닭에>(1958)라는 영화가 아시아영화제에 출품되면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배우들을 조찬모임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 대통령은 활동사진(영화)이 민간외교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 홍콩, 일본, 이렇게 세명의 감독이 공동연출했다.
=한국에선 전창근 감독이 참여했다. 그는 왜정시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었다. 홍콩 감독은 도광계였다. 촬영장에선 일본의 와카스키 미쓰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레디고를 외쳤다. 쇼브러더스의 런런쇼는 최초의 한/홍 합작영화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커서 컬러영화에 감이 있는 일본 감독을 불렀다. 촬영도 니시모토 다다시라는 일본의 카메라맨이 맡았다. 한번은 일본 감독이 자신의 숙소로 나를 불렀는데,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방에 색종이가 쫙 깔려 있더라. 일본 감독은 세트가 무슨 색이니까 양복은 무슨 색이어야 하는지, 꽃병에 꽂히는 꽃의 색깔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연구했다.

-1967년부터 71년까지 4년 동안 홍콩과 대만을 오가며 외국에서 연기 활동을 했다.
=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국적이 문제가 됐다. 중요한 역할도 주고 하지만 높이 올라가기 힘든 구조가 있었다. 그때는 나 개인이 아니라 한국영화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어떻게 보면 한류의 시작은 우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엔 영화배우 사위(엄태웅)도 얻었다. 사위에게 옛날 한국영화 얘기 종종 들려주나.
=아이고, 그런 얘기 안 한다. 또 옛날 얘기하면 뭐하나. 현실에 맞춰 살아야지. 그저 때만 묻지 말아라 그런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