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이 말하길 지구의 모습에 장혁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더라.
=구조대원 지구는 평범한 시민이다. 이런 재난블록버스터에서 흔히 보는 대단한 영웅이 아니다. 구조대원들 역시 직업적으로 사명감에 구조 임무를 행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철저히 현실감 속에 놓여 있는 인물이고 때론 뜻밖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그 역시 실제 상황처럼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감기>는 전형적인 재난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제복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가 슈퍼맨이 되길 바라지만, 비번으로 사복을 입고 있을 때는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전형적으로 구조대원스러운 대사들은 다 뺐다. “못 가겠어요”, “발이 안 떨어져요” 같은 대사들도 있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관객은 더 공감할 것이다.
-인해와의 멜로 라인이 어떤지 궁금하다.
=어떤 사건을 통해 알게 되어 지구는 인해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이후 그 멜로 라인이 명확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뭔가 작위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 앞에 계속 일이 터지고 매번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 사이의 ‘연’이 생겨난다. 또 수애씨나 나나 작품 들어가기 전에 꽤 ‘공부’를 해서 접근하는 사람들인데, 이번에는 감독님이 ‘다들 편히 내려놓고 일단 뛰어들라’고 하셨다.
-<영어완전정복> 이후 다시 만난 김성수 감독은 어떤가.
=내가 막 데뷔했을 때 <비트>를 촬영하고 계셨고, 당시 정우성 선배가 나와 같은 소속사여서 <영어완전정복> 이전에도 잘 알고 지냈다. 남자배우들이라면 너무나 동경하는 감독이라, <영어완전정복>을 함께하자고 하셨을 때 뭔가 ‘비영어권 국가에서 만들어지는 누아르풍 영화인가?’라고 잠시 착각하기도 했다. (웃음) 김성수 감독님과는 언젠가 꼭 액션영화를 해보고 싶긴 하지만, <감기> 역시 전형적인 영웅 스토리나 신파가 아니어서 무척 공감이 갔다. 그에 대한 낯섦과 낯익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만들어진 미장센의 느낌보다는 감정의 흐름에 따른 컷이 많다. 규칙적인 리듬감보다는 엇박이 많은 영화다. 캐릭터들의 시점에 따라 마치 ‘체험’하듯 몰입할 수 있는 영화다.
-TV드라마 <추노> <뿌리 깊은 나무> <아이리스2> 등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감기>는 그런 가운데 놓여 있는 작품이라 더 기대된다.
=21살 때부터 연기를 해오면서 늘 ‘액션’만 하는 배우였다면, 군대 제대 뒤에는 ‘리액션’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의뢰인>(2011)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쾌감에 빠져들었고, 늘 배우는 게 많다고 느낀다. 최근 작품들이 다 잘돼서 나로서는 늘 감사하다. 건방진 얘기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40대의 매력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부터 관록있는 40대 남자배우의 매력을 동경했었다. <감기>가 그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