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은 동시대 프랑스의 특별한 여배우 마리온 코티아르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연기하여 전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던 <라비앙 로즈>(2007) 이후 그녀의 진정한 두 번째 명연이 <러스트 앤 본>에서 펼쳐지고 있다. 돌고래 조련사였으나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된 여주인공 스테파니(마리온 코티아르)는 처음에는 실의에 빠져 지내지만, 이내 야수 같은 한 남자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리온 코티아르는 여주인공 스테파니의 씩씩함을, 때론 슬픔을, 때론 사랑에의 열망을 한몸에 새기고 연기해낸다. <라비앙 로즈>의 성공을 지나 할리우드영화의 그저 그런 조연으로 전락할까 염려되었던 한 시기를 지나 그녀는 지금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로 돌아와 있다.
마리온 코티아르가 유별난 미모를 지닌 여배우인 것 같진 않다. 카트린 드뇌브나 소피 마르소를 떠올리게 하는 배우는 아닌 셈이다. 그래서일까, 20대를 넘어 30대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서투른 젊음을 이제 막 지났을 그쯤에야 그녀는 스타로 각광받았다. <라비앙 로즈>라는, 여배우에게 미모보다는 삶의 이해를 더 요구하는 그 영화의 주인공을 훌륭히 해내면서 비로소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코티아르는 실제로 복잡다단한 삶을 살았고 다양한 층위에서 인생을 노래한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로 완벽히 변신했다. 카트린 드뇌브나 소피 마르소가 아닌 그 무엇으로 비로소 지금의 그녀가 된 것이다.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코티아르의 배우 항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잠재력을 누군가가 알아보고 있었다. <라비앙 로즈>의 감독 올리비에 다한은 각본을 쓰면서 이미 코티아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 “피아프와 코티아르의 눈이 닮았다”고 느껴서다. 눈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고 하던가. 피아프의 마음을 코티아르의 연기가 헤아려줄 거라고 예상했던가 보다. 그 예상은 멋지게 적중했다. 도대체 저 정도의 여배우가 장사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등 각종 핀잔과 걱정을 감수하고 제작된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모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목도나 흥행에 관한 요인을 꼽을 때 그 근거는 대개 피아프를 연기한 코티아르의 연기력으로 모아진다.
“한 사람의 모든 인생을, 게다가 나이든 여인까지 연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나는 그녀를 모방하려는 대신 그녀의 속내를 이해하기를 원했다. 그건 기술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서, 설명하기에는 추상적인 그런 것이다. 물론 기술적 부분과 그 부분이 합해져서 마리온 코티아르라는 나 자신을 포기하게 될 때, 비로소 그 모든 장면들을 연기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일어나는 거다”라고 피아프를 연기한 코티아르는 말했다. 그러니 피아프와 코티아르, 두 사람의 눈의 상관성을 알아본 감독의 직관은 옳았던 셈이다. 젊음에서 노년까지, 거리 부랑자에서 대스타까지, 코티아르는 피아프의 마음을 끝내 헤아렸다.
그리고 코티아르는 이 영화로 각종 기록을 경신했다. 프랑스의 오스카라고 할 만한 세자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물론이었고 미국으로 건너와 골든글로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례로 석권했다. 그녀는 1961년의 소피아 로렌 이후 비영어권 연기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두 번째 배우가 되었고, 프랑스어 연기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첫 번째 배우가 되었다. 코티아르는 오스카 시상식장에서 말했다. “고마워요 인생, 고마워요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후에 그녀가 걸어온 행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유명세를 얻은 비영어권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흔히 겪는 그런 과정을 코티아르도 지나고 있다.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뮤지컬에도 캐스팅됐고(<나인>), 갱스터의 여인으로도 나왔다(<퍼블릭 에너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내로도 등장했다(<인셉션>). 하지만 하나같이 돋보이진 않았다. 특히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그녀의 역할은 민망한 수준이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에서 코티아르의 자리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 영화들은 그녀의 특별함을 절실히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티아르의 특별함?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삶을 개척하는 입지전적이며 진취적 인물 그러나 그 인물을 둘러싼 통속의 진한 감정들, 그걸 표현할 때 그녀의 특별함이 발휘된다. <라비앙 로즈>가 그랬다. 그리고 최근에 코티아르의 그 특별함이 되살아난 건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가 연출한 <러스트 앤 본>이다. 비로소 코티아르는 몇년의 시간을 지나 할리우드 바깥의 영화 <러스트 앤 본>에서 그녀 인생의 두 번째 명연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돌고래 조련사였으나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인 스테파니, 그녀는 거리의 야수 같은 남자 알리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알리가 스테파니를 돕는 조력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스테파니가 알리의 삶의 구원자가 된다. 고통과 고난을 겪었으나 그 뒤에 찾아온 새로운 사랑 그리고 두렵고 거칠지만 이미 시작되어버린 새 삶. 그 길 위에서 알리는 스테파니의 작은 조력자가 되고 스테파니는 알리의 거대한 구원자가 된다.
코티아르의 연기가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다. 두 다리를 잃었으나 삶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여인, “그녀의 심정을 내가 결코, 결코, 모를 것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그 느낌의 진정성을 찾기를 원했다”고 코티아르가 거듭 다짐한 결과 그녀의 연기는 빛난다. 코티아르는 피아프의 마음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만큼, 두 다리를 잃은 여인의 저 마음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덕에 이 영화는, 인물의 마음을 얻고자 최선을 다한 한 여배우의 특별함으로 인해 호소력있는 극복의 드라마이자 진한 통속의 멜로드라마가 된 것이다.
생전의 에디트 피아프는 스타로서의 영광 외에 사랑과 이별의 슬픔과 약물 중독에의 고통 등으로 뒤엉킨 삶을 살았다. 그래도 그녀는 자hour신에게 닥친 모든 삶의 희로애락에 관하여 꿋꿋하게 노래했다.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러스트 앤 본>에 관하여 “이 영화는 녹(rust)과 뼈와 피와 사랑에 관한 영화예요”라고 코티아르가 말할 때 결국 그 말이 피아프가 부른 노래 가사와 다르지 않다. 그녀도 인생의 희로애락에 관하여 그렇게 연기로 노래하는 중이다.
magic hour
마리온 코티아르가 뽑은 명장면
<러스트 앤 본>에서 연기하기 가장 힘든 장면은 어디였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묻는다. 마리온 코티아르가 꼽는 특별한 장면 하나가 있다. 주인공 스테파니가 다리 절단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서 깨어나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되는 그때다. “그건 어려운 장면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내 두 다리가 사라졌다는 걸 깨닫게 된 어떤 사람의 반응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버전을 해봤다. 그리고 지금 같은 충격으로 결론지었다. 스테파니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 그게 진짜 충격이다. 그 장면에서 관객에게 들리는 건 거의 없다. 스테파니의 내면의 싸움뿐이고 이런 질문뿐인 거다. 내 다리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라는 것 말이다. 이건 정말 미칠 만한 노릇이 아닌가.” 코티아르는 영화 속 인물에게 찾아온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기억해낸 것이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결국 다시 일어나 새로운 장밋빛 인생(라비앙 로즈)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러니 코티아르의 연기가 부린 마법은 그녀가 말한 고통의 순간뿐 아니라 기쁨의 순간에서도 여실히 발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