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기억과 망각 <환상속의 그대>
2013-05-15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차경(한예리)과 혁근(이희준)은 연인 사이다. 차경은 한없이 사랑스러우며 귀지를 파주는 차경의 품에 안긴 혁근의 표정은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그러던 중 차경은 절친한 친구인 기옥(이영진)의 생일 선물을 갖다주기 위해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한다. 선물을 전달한 차경은 기옥의 자전거를 빌려 혁근에게 오다가 브레이크가 고장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1년 뒤, 혁근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차경의 환청을 들으며 환상을 본다. 기옥도 자신의 자전거 때문에 차경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차경의 환상을 본다. 기옥은 혁근을 찾아가 차경의 기일에 무덤에 같이 가자고 한다. 그리고 차경의 무덤에 다녀온 그날 기옥과 혁근은 술에 취해 잠자리를 같이한다. 혁근의 불면증과 환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혁근은 귀에서 피가 나도록 귀를 판다. 기옥도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브레이크를 자르고 자전거를 탄다.

<환상속의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절친했던 친구는 죄책감에 힘들어하고 남겨진 가족은 그 친구에 대해 원망의 감정을 보내고 연인은 그녀를 보내지 못하고 기다린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인류가 수없이 대답해왔지만 어쩌면 한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이 물음에 대해서 끈질기고 집요하게 감독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먼저 영화에서 과거는 지나가버리고 죽은 시간이 아니다. 현대의 우리는 과거를 폐기시키고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문서처럼 자료화하지만 영화 속 과거는 면밀히 살아서 움직이는 시간이다.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는 뒤섞이고 기억과 지각, 환상과 실재가 뒤섞인다. 그리고 물속을 유영하는 돌고래의 이미지와 불면증, 환청과 환영 등의 모티브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차경의 불면증은 혁근에게 이어진다. 기억과 망각의 작용은 수면과 함께 이루어진다. 잠을 잘 수 없는 혁근은 차경에 대한 기억을 붙들어두고 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망각하기 위해서 장례식장을 간다. 장례식장에는 망각과 잊을 수 없음이 섞여 있다. 혁근은 차경의 기일에 무덤에 가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영화는 기나긴 애도작업을 통해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죽었지만 죽을 수 없었던 차경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혁근과 기옥도 삶으로 되돌아간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아픈 것이다. 수술 뒤 마취에서 풀리면 의식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신체는 그것을 다 기억하듯이 망각한다고 해서 아픔이나 상처가 다 사라지진 않는다. 영화는 바로 그 아픔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 걸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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