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충만의 선율, 역동의 리듬
2013-08-14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추천작 10편
<팝 리뎀션>

올해로 9회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8월14일부터 19일까지 청풍호반무대 등 제천시 일대에서 열린다. 음악페스티벌 초청 명단에서나 볼 법한 뮤지션들의 이름이 영화의 크레딧을 채우는, 개성있는 음악영화들이 올해도 다수 상영된다. 그중 당신의 눈과 귀를 만족시켜줄 음악영화 10편을 소개한다.

<미셸> 그레고리 만느, 슈테판 비야르 / 2012년 / 90분 / 프랑스 / 시네 심포니
샹송가수 미셸 델페슈를 소재로 한 프랑스 독립영화다. 1970년대 전성기를 보냈던 가수 미셸은 90년 이후 잠적해 종교에 귀의하는 등 개인적 암흑기를 보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지는 않지만, 그를 대중에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다. 주인공은 법원의 채무집행관인 그레고리다.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법원 소속 집행관이 된 그는 우연히 가수 미셸 델페슈의 재산을 압수한다. 죽기 전까지 그의 광팬이었던 아버지를 기억하기에, 그는 쉽사리 이 왕년의 스타의 몰락을 지켜볼 수 없다. 때문에 원제가 이르듯 ‘무관심하고 담담하게’(l’Air de rien) 미셸의 재활을 돕기 시작한다. 음악영화인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을 비춘 일종의 성장영화다.

<팝 리뎀션> 마르탱 르 갈 / 2012년 / 94분 / 프랑스 / 개막작
기타리스트 에릭과 드러머 파스칼, 베이시스트 JP, 보컬 알렉스는 십대 때부터 줄곧 함께 블랙메탈을 해온 친구들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들은 ‘여름투어’라 부르는 공연여행을 떠나는데, 삼십대가 되자 생계 때문에라도 이제는 곤란하다고 느끼던 차다. 알렉스의 폭군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질을 탓하며 세 친구는 합심해 연주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데, 때마침 알렉스가 헬페스트 페스티벌에 초청됐단 낭보를 들고 나타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공연을 떠나고,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 <팝 리뎀션>은 신예 마르탱 르 갈 감독의 데뷔작으로, 블랙코미디 요소를 지닌 일종의 뮤지컬 로드무비다. 비틀스의 애비로드 등 다양한 클리셰들이 극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끈다.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 제이 벌거 / 2012년 / 92분 / 미국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과 섹스 피스톨스의 존 라이든, 산타나의 카를로스 산타나와 롤링 스톤스의 찰리 워츠, 그리고 프로그레시브의 제왕 닐 퍼트가 진저 베이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영화다. 진저 베이커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가장 선명한 그림은, 2차대전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을 따라 기차를 뒤쫓던 때라 한다. 영화는 나치의 폭격이 시작되던 해 런던에서 태어나, 에릭 클랩턴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순간을 거쳐, 약물 중독으로 인해 폐인으로 살던 나이지리아에서의 모습, 그리고 현재 남아공에서의 일상까지 진저 베이커의 전 생애를 이야기한다.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 리안 룬슨 / 2012년 / 109분 / 미국, 캐나다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전설적 포크싱어인 케이트 맥개리글의 지인들이 모여서 고인을 추억하는 콘서트를 연다. 영화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는 63살에 세상을 등진 케이트 맥개리글을 기리며, 2010년 6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열린 추모콘서트에 대한 ‘기록영상’의 성격을 띤 다큐멘터리이다. 참가한 뮤지션의 면면이 무척 화려하다. 고인의 자녀인 루퍼스 웨인라이트와 마사 웨인라이트를 비롯해 노라 존스, 에밀루 해리스, 지미 펄론, 테디 톰슨 등이 수준 높은 공연을 벌인다. 빔 벤더스가 프로듀싱한 이 영화의 연출은 배우 출신의 감독 리안 룬슨이 맡았다. 1997년 컨트리 가수 윌리 넬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데뷔한 뒤, 현재 그녀는 연출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마지막 랩소디>

<마지막 랩소디> 기용교시 벤체 / 2011년 / 75분 / 헝가리, 프랑스 / 시네 심포니
헝가리의 낭만주의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영화이다. 1911년 헝가리의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극이 시작된다. 작곡가 리스트의 이야기를 준비하던 극단원들은 막바지 리허설 도중에 19세기 옷차림을 한 미스터리한 여인과 조우한다. 그녀는 극의 내용이 실제 자기가 아는 스토리와 다르다며 트집을 잡는다. 이렇게 여인의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이야기 속의 다른 이야기로 빠져든다. 1886년 부다페스트에서 시작해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화 <마지막 랩소디>는 실재했던 리스트의 말년의 역사를 뒤쫓는다. 역사를 다룬 극이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됐고, 그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리스트의 뮤즈 ‘리나 슈말하우젠’의 일기에서 힌트를 얻어 구상되었다.

<카르수> 메르세데스 스탈렌호프 / 2012년 / 87분 / 네덜란드 / 뮤직 인 사이트
어려서부터 가수를 꿈꾼 카르수 돈메스가 부모 소유의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터키식 레스토랑의 홀 가득히, 17살 소녀의 서정적 음색이 울려퍼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싱어가 될 때까지, 영화는 그녀의 3년간을 뒤쫓는다. 마침내 가수가 되어 텔레비전 쇼에 초청된 그녀를 사회자는 노라 존스에 비견해 소개한다. 실제로 그녀는 터키의 고유한 문화, 네덜란드의 최신 유행 요소들, 미국의 재즈나 팝이 뒤엉킨 유니크한 자신만의 영역을 지향하고 있다. ‘카르수’라는 이름의 뜻은 ‘스노 워터’라고 한다. 아버지는 딸의 목소리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레 피아노와 뒤섞인다고 소개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귀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폴 사이먼, 그레이스랜드 그 이후> 조 베링거 / 2012년 / 101분 / 미국 / 뮤직 인 사이트
70년대 전설적 포크록 듀오인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앨범 ≪그레이스랜드≫의 발매 25주년을 기념해 사이먼이 직접 남아공을 방문한다. 앨범의 제작 당시 그는 자신의 노래에 아프리카 음악을 도입했는데, 이 때문에 극 사이사이에 남아공 뮤지션들과의 매력적인 합동공연 클립들이 더해진다. 영화 <폴 사이먼, 그레이스랜드 그 이후>에는 당대의 인종차별과 관련해 그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도 함께 담는다. 음악과 함께 이 사회적 경향들을 되돌아보는 것 역시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조 베링거 감독은 이 작품으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문글로우> 장해랑 / 2013년 / 102분 / 한국 /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베니 골슨의 <블루스마치>가 연주되는 가운데, 대한민국 재즈 1세대라 불리는 ‘The lives’의 원년 멤버들이 소개된다. 클라리넷의 이동기와 색소폰의 김수영, 재즈 피아니스트 신광웅과 트럼펫의 최선배, 퍼커션 류복성과 드러머 임헌수, 보컬 김준 등은 스승도 없고 악보도 없던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스테이지에 남은, 한국 음악계의 진정한 승자들이다. 다큐멘터리 <문글로우>는 작은 무대에서 거대한 음악을 창조하는 이들을 비추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답한다. 재즈 1세대들의 원숙한 연주를 듣는 것도 충분히 즐겁지만, 올해 3월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은 홍대 재즈클럽 ‘문글로우’를 기록한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음악영화.

<우드스탁의 추억>

<우드스탁의 추억> 바버라 코플 / 2009년 / 87분 / 미국 / 주제와 변주
오스카 수상 경력을 가진 여성 감독 바버라 코플의 다큐멘터리이다. 알려졌다시피 우드스탁은 미국의 보이지 않는 대중문화 흐름을 주도한 최대의 음악축제다. 때문에 영화는 다양한 푸티지 필름들을 재활용한다. 제목처럼 우드스탁을 소개하지만, 1998년 동일한 감독이 만들었던 <우드스탁 ’94>와 다르게 이번에는 40주년을 맞아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축제의 이면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 특색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뉴욕타임스>의 버나드 콜리에는 “아름다운 사고”란 표현을 썼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 역설적 표현에 동조하게 된다. 울타리를 넘어 ‘사랑과 평화’를 외치는 대중들, 경제적 손실에도 행사를 감행했던 프로모션의 기록이 우아하게 담긴다.

<안전불감증> 프레드 뉴마이어, 샘 테일러 / 1923년 / 73분 / 미국 / 시네마 콘서트
할리우드 고전영화 <안전불감증>은 찰리 채플린과 당대를 함께 풍미한 배우 해롤드 로이드의 대표작이다. 주인공은 시골에서 직장을 찾아 대도시 LA로 떠나온 해롤드다. 그에겐 시골에 두고 온 약혼자 밀드레드가 있는데, 성공해 도시로 부르겠다고 공언한 상태이다. 어느 날 그가 보낸 선물을 받고 그녀가 오인해 혼자 도시로 찾아오고, 해롤드는 자신의 가난을 숨기기 위해 좌충우돌하다 여러 소동을 벌인다. 1923년 완성된 무성영화인 까닭에 사운드트랙은 오직 경음악뿐이다. 해롤드 로이드는 1919년에 있었던 사고 때문에 손가락 두개를 잃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를 찍을 당시 4, 5m 높이의 건물 벽에 실제로 매달렸다니 새삼 영화에 바친 그의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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