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현지보고] 단지 그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잔인하다!
2013-08-15
글 : 이화정
아틀리에 니바라키에서 만난 미야자키 하야오

도쿄 고가네이시에 위치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틀리에 니바라키에서 <바람이 분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본격적인 성인 대상 애니메이션은 처음이라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하야오 감독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도 짚어볼 지점이 많다. 하지만 소재와 관점 때문에 이번 기자회견은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질문이 앞서는 상황이었다. 하야오 감독은 “영화 기자회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민감한 사안과 관련한 질문이 있다면, 지금 다 해달라”며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은 처음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
=호리 다쓰오는 전쟁의 내용을 소설에 전혀 담지 않고, 호리코시 지로도 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만큼 대항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안고 가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아버지도 전쟁에 가담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 전쟁으로 힘든 시기를 살았던 만큼, 그들에겐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들이 시대의 그림자를 업고 가는 건 숙명이지만, 무조건 그들을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영화의 초반에 관동대지진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3.11 대지진에 대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지진 신 콘티를 그리고 난 뒤에 일본에서 3.11 지진이 일어났다. 점점 재해가 커진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 할까’ 고민도 했고 몇몇 스탭은 더는 작업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도 그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다. 관동대지진은 일본의 운명을 정하는 데 있어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본다. 그전까지 일본이 안정적인 사회였다면 그 지진으로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상황이 됐다.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 생각한다. 당시 내 아버지는 9살이었는데 이번 작품에는 내 아버지의 삶도 포함돼 있을 것 같다.

-작품 속 사회상은 지금의 일본 분위기와 상당히 비슷하다. 지금 일본의 분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었을 때 일본의 상황은 거품경제의 절정기였다. 그런 만큼 그 작품은 ‘이 사회가 어찌 되어 갈까’ 하는 의문과 걱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후 <벼랑 위의 포뇨>를 만들고 나서 진짜 지진이 발생했고, <바람이 분다>를 만들고 나서 3.11 지진이 발생했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상황을 예측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일본의 상황이라면 <모노노케 히메> 같은 작품이 어울릴 것 같다.

-호리코시 지로는 ‘전쟁은 파멸의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본군의 비행기를 만든다.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의 삶을 토대로 만들었고, 실제 인물이 만든 비행기가 태평양전쟁에 쓰였다. 그런데 과연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죄가 줄어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었지만 결국엔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게 아니라 TV만 보고 있게 됐다. (웃음)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싶다.

-극중 등장하는 비행기 제로센이 가미카제 특공대에 쓰인 비행기라고 알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민감한 소재이다.
=지금까지 내 작품에 이렇게 많은 일장기를 그린 적이 없다. 그런데 일장기가 붙은 비행기들이 줄줄이 떨어진다. 이 장면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일본에서는 일장기가 추락하는 이미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편집자). 제로센에 대해서 말하자면, 실제로 가미카제 특공대에 사용된 제로센은 구식이었기 때문에 당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인공 지로는 실제로 많은 압박을 받았지만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인물이다. 단지, 전쟁이 끝나고도 그 회사에 계속 근무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다고 무조건 죄를 안고 살아야 하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배우가 아닌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는 30년지기이다. 주인공 성우를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스즈키 도시오가 제안했다. 어떻게 보면 효과음을 만든 상황이랑 같다. 전문가들이 하다보니 신선함이 떨어졌다고 할까. 그래서 전문 성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다.

-헌법 개정에 대한 당신의 최근 발언(월간 <열풍>에 헌법 개정 등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는 아베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평소 생각한 것을 솔직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나라 정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게 좀 껄끄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한 일을 감싸줄 순 없는 일이다. 지금 시대가 크게 움직이고 있다. 더 어려워질 수도,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를 경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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