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공간 <개똥이>
2013-09-04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박스 공장에 다니고 있는 개똥이(송삼동)는 왼쪽 눈가에 커다란 반점이 있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공장 사장은 묵묵하게 일해 온 개똥이를 아끼고 전망 없는 공장일 대신에 자신의 형이 있는 중국에 가서 일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개똥이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늘 도망가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개똥이는 어머니와 살던 그 집에서 혼자 살아가며 집과 직장일, 그리고 직장 동료인 희산(박건락)과 술을 먹는 것이 일상의 전부이다. 그러던 중 개똥이는 공장에서 돈을 훔쳐 서울로 도망가려는 공장 사장의 딸 선주(이은경)를 만나게 된다. 개똥이는 마을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 선주를 보호하다 다치고 경찰서에 끌려간다.

개똥이를 지배하는 것은 과거의 트라우마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개똥이는 갇힌 공간, 갇힌 시간, 갇힌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를 아우르는 중심 모티브 중 하나는 공간이다. 영화는 사장이 개똥이에게 중국으로 가라고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해 중국으로 가는 예정일까지 한달 정도를 다룬다. 하지만 개똥이의 어머니도, 개똥이도, 선주도, 희산도 아무도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주도 그 공간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마을의 재개발에는 반대한다. 그 공간을 벗어나는 방법은 죽거나 감옥에 가는 것이다.

영화는 “내 진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개똥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개똥이는 그 공간에서는 진짜 이름으로 호명될 수 없다. 어머니한테도 개똥이로 불린다. 진짜 이름을 말하는 것은 그 공간 밖에서이고 음성이 아니라 글로 표현된다. 그 공간에서 개똥이는 말도 하지 않는다. 찬송가는 계속 틀지만 구원은 없고 개똥이의 얼굴과 이름, 공간에 새겨진 커다란 반점은 굳건한 트라우마로 개똥이를 지배한다. 영화는 한 인간의 영혼에 자리한 빠져나올 수 없는 상처와 그 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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