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문소리] 제대로 웃겨주신 아줌마
2013-09-16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문소리

“이 영화는 네가 웃겨야 돼. 네가 웃겨야 영화가 살아.” 설경구가 문소리에게 해줬다는 이 얘기는 정확한 예언이 됐다. <스파이>는 첩보영화의 외피를 두른 코미디영화다. 그리고 그 웃음폭탄의 8할은 문소리가 투척한다. <스파이>에서 문소리는 자신의 남편이 능력 좋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출장이 잦은 남편에게 쉼 없이 잔소리를 늘어 놓는 안영희를 연기한다. 남편 철수가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처리하려 할 때마다 공교롭게도 자꾸만 철수의 레이더망에 잡히며 그의 집중을 흩뜨리는 영희는 자칫 민폐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희는 문소리라는 배우를 만나 귀여움을 입는다. 고음역대에서 쉽게 갈라지는 목소리를 지닌 문소리가 애교를 섞지 않은 담백한 부산 사투리로 철수를 닦달하는 모습도 밉지 않다. 또한 그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영화 전체의 분위기마저 띄운다.

그런데 문소리가 이렇게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던가. 아니, 코미디 장르 안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논 적이 있었던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 문소리는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영화들에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 힘든 캐릭터를 힘들인 티 내지 않고 연기하는 게 문소리였다. 정작 본인은 “눈에 쌍심지 켜고” 연기했으면서도. <스파이>에선 그러지 않아도 좋았다. <하하하> 이후 생긴 변화이기도 한데, 문소리는 작품에 임하는 시간을 그 자체로 즐기게 됐다. <스파이> 역시 홀가분한 마음으로 찍었다. “처음엔 (감독 교체라는) 심란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마음을 비울 수가 있었다. ‘내가 편하게 연기해야 보는 사람도 편하겠지’, ‘좋은 마음으로 잘 마무리하면 그 마음이 관객에게도 전달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끼리도 그래서 더 끈끈해졌고.”

문소리는 임신 중에 <스파이> 출연 제의를 받았고, 몸 추스를 시간도 넉넉히 갖지 못한 채 출산 6개월 만에 촬영에 임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굳이 출연을 고사하지 않은 건 ‘사람’ 때문이었다. “결국 가장 크게 남는 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더라. 한 작품을 하면 1년이 간다. 작품의 결과로 좌절하는 시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 <스파이>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설경구라는 이름은 든든함 그 자체였다. “아무렇게나 던지면 아무렇게나 받아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안 받아줘도 결코 서운하지 않다.” 남편 몰래 작전에 투입된 영희가 현장에 나타난 남편을 보고 도리어 그를 보호하겠답시고 나서는 장면은 두 배우의 호흡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 그러곤 망설임 없이 철수의 머리를 내려치는 영희. “경구 오빠가 얼빠진 표정을 짓는데 그게 너무 웃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빡!’ 때렸지. 합도 맞추지 않고 어떻게 배우 머리를 막 때리나. 그런데 경구 오빠랑은 그게 된다. 경구 오빠도 맞은 다음에 ‘야, 이거 웃긴다’ 그러고. (웃음)”

출산 이후 <스파이>로 시원하게 몸을 푼 문소리는 현재 조민수, 엄정화와 함께 <관능의 법칙>을 촬영 중이다. 그사이 박찬경 감독의 <만신> 촬영도 끝냈다. “나는 연기와 다정한 친구처럼 오래 가고 싶다”는 문소리에게선 한결 여유가 느껴졌다. 연기와 뜨거운 연애를 했던 한시절을 보내고 은근한 우정을 나누려 하는 문소리의 미래가 어쩐지 기대된다.

“항상 (오빠) 마음속에 내가 있었을 거야. 생각하면 가슴 아픈 막내 여동생처럼. ‘저놈의 계집애 잘돼야 하는데’ 하는. 그래서 날 추천했겠지. 말은 안 해도 내가 알아.” “저 사람은 표현이 이상해. 서툰 게 아니고 이상해.” “<박하사탕> 현장에서 경구 오빠 눈 보고 미친 사람 같았다니까.” 10여년 전 <박하사탕> <오아시스>로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서로에게 ‘막말’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박하사탕> 땐 설경구의 심신이 힘들었고 <오아시스> 땐 문소리의 심신이 만신창이였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상대방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와 응원”이었다. “연기 오래 해서 다시 만나니까 참 좋더라.” 그러고 덧붙이길. “다음엔 송강호 만날 거야! (웃음)”

스타일리스트 원서/헤어 예산(순수 설레임점)/메이크업 희진(순수 설레임점)/의상협찬 헬무트랭, SH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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