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오류를 발견하는 재미
2013-11-14
글 : 남순건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물리학자가 보는 사실적 SF

많은 과학자들이 영화의 과학적 상상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과학적 상상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과학 이론을 최대한으로 확대 해석하여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부류가 그 한 가지이다. 예를 들면 칼 세이건의 원작 소설에 기반을 둔 <콘택트>가 있다. 먼 우주로의 시간여행 등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설정이 다수 등장하지만 인간이라면 그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부류는 말도 안되는 ‘유사’과학(pseudo-science)에 기반한 영화들이다. 과연 인간이 무엇이고 우주 속에 놓인 우리의 존재가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있다. 우주에 관한 최고 궁극의 문제를 추구하는 나와 같은 이론물리학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영화이다. 엄청난 계산 끝에 나온 궁극의 대답 ‘42’라는 숫자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여운이 오래 남는 질문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경험

과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여러 부류의 영화 중 대부분의 SF액션영화들은 과학적 상상력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충분히 재미는 있지만, <스타워즈>와 같은 영화는 몰입도가 떨어지고 사유의 여운을 남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한 요즈음, 웬만한 특수효과로는 관객을 놀라게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영화 <그래비티>는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인가.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즉, 영화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들이 보는 사람의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우주여행에 대한 많은 정보를 이미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물리학자들이 <그래비티>에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가,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시각적으로 매우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일단 아주 얇은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구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모습만으로도 장관이다. 상공에서의 우주 유영 장면은 이제까지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경험, 직접 우주여행을 하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더불어 우주선의 여러 장치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 또한 과학자들이 좋아하는 면이다.

그러나 특히 물리학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이 영화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과학적 ‘오류’를 발견하는 재미가 클 것이다. 이 영화는 우주여행의 여러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겪는 드라마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허무한 사고로 딸을 잃은 뒤 표류하듯 살아가던 주인공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가서도 비슷하게 떠돌게 되지만 극적으로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로 귀환하면서 다시 바닥을 딛고 일어선다는 이야기, 그것이 더 주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전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여러 설정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역으로 그 오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수 있다.

불가능한 연쇄 충돌, 생략된 우주복 기저귀

일단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인공위성의 폭발이다. 이후 폭발로 인해 허블 망원경, 국제 우주정거장이 반복적인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이는 개연성이 없는 상황설정이다. 폭발에 의한 파편들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날아가 다른 위성에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인공위성들의 고도와 궤도의 배치가 그와 같은 상황이 가능하도록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전속도가 다른 인공위성은 같은 고도에 위치할 수 없다. 그러니 90분 뒤에 인공위성의 파편이 다시 같은 지점을 지난다는 설정은 현재까지 알려진 물리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주인공을 극적으로 지구로 생환시키기 위해 같은 고도와 궤도의 근거리에 여러 우주정거장들을 설치해둔 것이나 그 우주정거장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어느 나라든 자국의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이 자국의 영토 상공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해 궤도 설정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그 우주정거장들의 고도도 수백 킬로미터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는 우주정거장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는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저건 말도 안돼!’라고 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래비티>, 즉, ‘중력’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무중력에 대한 것이다. 지구 궤도상에서 운동하는 것들이 무중력 상태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영화는 이 점에 충실했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아주 작은 힘으로도 다른 물체를 당길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맷(조지 클루니)이 자신의 줄을 놓아버려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매우 극적인 상황이다. 이 상황은 아마도 의도된 과학적 오류일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오류이나 영화 스토리의 긴박감을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것 같다. 한번 툭 당기기만 했으면 맷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이런 장면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약간의 사족을 더하자면 라이언(샌드라 불럭)의 머리카락도 무중력 상태라면 공중에 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헤어 젤을 사용했다면 가능했겠지만 우주에서 그랬을 리 없다.

또 눈에 띄는 것이 우주복이다. 밀폐된 우주복 속에 속옷만 입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를 일으킨다. 우선 체온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물을 순환시킬 수 있는 옷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체격에 자신이 있는 샌드라 불럭을 기용했기 때문인지(?) 그 부분을 생략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시간 우주 유영을 하는 도중에 발생하는 생리적 문제를 위해서 우주인들이 기저귀를 차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영화에서는 민망해서인지 생략해버렸다.

세밀한 정물화의 한계

이 영화는 과학적 치밀성은 갖추고 있다. 즉, 우주정거장 내외부의 소품들, 우주 유영 시 우주인들의 운동들,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우주 파편과의 반복적 충돌로 일어나는 사고 장면들은 매우 치밀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세밀하게 그려진 정물화를 보다 오히려 추상화를 보면서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지 않는가. 비유하자면 이 영화도 정물화에 가까워서 상상력이 숨쉴 틈을 주지 못한다. 그것이 앞서 나온 훌륭한 SF들과 <그래비티>의 다른 점이다.

어쨌거나 <그래비티>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과학적 오류가 다수 발견되는 영화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과학적 오류가 이 영화의 원래 의도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의지적 활동, 액션 스릴러로서의 재미, 그리고 복선이 깔려 있는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 같은 것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사실적인 영상 표현 때문에 과학적 사실에 더 집착하여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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