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상상이 아닌 진짜의 세계
2013-11-14
글 : 배명훈 (SF작가)
우주를 소재로 한 아주 리얼한 픽션

관객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비티>는 SF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작가 입장에서도 어떤 작품이 SF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건 그다지 실용적인 활동이 아니어서 그런 식의 논쟁은 피하는 편인데, 작품이 추구하는 재미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사용된 미학적인 재료에 관해 다뤄보라는 요청을 받으면 별수 없이 장르 구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나 “SF는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어떤어떤 작품은 그런 조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별로”라거나, “<그래비티> 같은 작품은 다른 SF와는 달리 이런이런 점에서 더 훌륭하므로 다른 모든 SF영화들도 이런 장점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더 좁은 것 같다.

리얼한 SF가 아닌 리얼한 영화

<그래비티>가 SF처럼 보이는 건 우주가 나오기 때문이다. 주로 SF 영역에서 다루던 소재들을 재료로 삼아 만든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재료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 즉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 혹은 재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SF가 추구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뭐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그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뜻이다.

깊이 들어가면 꽤 복잡한 이야기지만, SF는 대체로 Science Fiction의 줄임말로 생각할 수 있다. 소설의 경우 한국어로 SF를 창작하고 번역하는 등의 일에 종사하는 분들은 SF의 번역어로 과학소설이라는 말을 권한다. 과학에 관한 픽션이라는 뜻이고, 공상과학이라는 좀 희한한 경로를 거쳐 잘못 수입된 말을 거부하는 뜻도 담겨져 있는데, 실제 창작 과정에서 활용되는 SF적 상상이라는 게 ‘공상’보다는 ‘과학’에 훨씬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비티>처럼 디테일을 잘 살린 리얼한 작품들이 다른 SF보다 훌륭한 SF로 간주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여기에 작은 함정이 있다. 실제와 비슷한 “리얼한” 작품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과학소설이라는 명칭에 포함되지 않은 ‘상상’이라는 미학 또한 명칭의 반을 차지하는 ‘과학’이라는 말만큼이나 중요하다. 다만 그 ‘상상’ 부분을 무조건 ‘공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독자가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작품의 본질을 대단히 괴상한 방식으로 비틀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보이게 된다. 긴 이야기는 생략하고, 아무튼 ‘과학적인 사실과 합리적인 추론에 기초를 둔 상상’이 SF의 가장 핵심적인 미학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상상의 재미는 지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떠올려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로봇이 인격을 갖게 되는 세계라면, 인간의 수명이 영원한 세상이라면, 인류가 은하계 곳곳에 퍼져서 거대한 문명을 이루고 사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아는 세상 밖에 또 다른 문명이 존재하고 그 문명과 우리 문명이 마침내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리고 SF는 이런 수많은 다른 세상에 대한 가정들을 최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열심히 설명하려고 노력하는데, 사실은 이 설명 자체가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지점일 경우도 많다. ‘다른 요소’와 ‘설명’, 그 논리적인 뼈대가 플롯의 핵심에 녹아들어간 이야기. SF는 그런 것들을 추구한다. 그렇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그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고자 할 때 혼동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대부분의 미국 관객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관객이 보기에 영화가 다루고 있는 대기권 밖 세상은 분명 우리가 아는 그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중력이라는 중요한 규칙부터가 이미 바뀌어 있는, 세상 너머의 세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중력의 세계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세계는 분명 리얼한 세계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다른 SF영화와는 달리 디테일을 잘 살린 리얼한” 영화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SF 종사자 중 하나인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리얼한 SF”가 아니라 그냥 “리얼한 영화”로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게 아니라,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을 있는 그대로 음미해 보려면 이 영화가 SF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구닥다리 우주선과 첨단의 영화

사실 SF면 어떻고 SF가 아니면 또 어떤가. 상상 같은 거 접어두고 이미 갖고 있는 걸 리얼하게 풀어내기만 해도 그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문명권에 산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벌써 반세기도 더 된 구식 로켓 발사 과정을 묘사하기만 해도 “첨단과학이라 어려워!” 소리를 듣곤 하는 우리 과학문화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렇다. <그래비티>에 나오는 우주선이며 우주정거장들은 사실 이미 구식이 된 기계들이다. 몇몇 관객이 우주선 이름으로 오해하곤 하는 STS-157은, 이미 낡아서 더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미국 우주왕복선의 임무번호다. 실제 우주왕복선의 마지막 임무가 STS-135였으니, 케플러 망원경도 아닌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로 올라간 미션이란 누군가에게는 이미 ‘오래된 첨단과학’일 뿐이다. 영화에 나오는 다른 우주선들 또한 마찬가지다. 첨단은커녕 구닥다리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 영화에서 첨단에 해당하는 부분은 우주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방법 혹은 관객이 우주를 경험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험이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기념비적인 우주 구조물들을, 전에 볼 수 없었던 리얼한 방식으로 완전히 몰입해서 볼 수 있게 하는 것들이다. 그 리얼함을 통해 영화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한 걸까.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제시되는 우주의 특징은 부재 혹은 희박함이다.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공기도 소리도 아무것도 없는, 공백으로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거대한 우주 속으로 우주복을 입은 존재 하나가 방향조차 상실한 채 떨어져나간다. 그게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때부터 하나씩, 그 존재를 생명으로 이끌 작은 끈들이 존재 근처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가 또 한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 순간 희박함은 절박함이 된다.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단 하나. (현실적으로는 그 하나의 방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제시하는 그 기상천외한 코스는 실제로는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 공간 속을 90분에 한번씩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다. 놓칠 수 없는 가느다란 끈. 하지만 그조차도 곧 사라져버릴 위기.

<그래비티>는 그 서스펜스를 잇고 이어 기적같은 해피엔딩을 향해 아슬아슬하게 나아가는 재난 이야기다. 그러니 구조가 단순하고 앞뒤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따로 없다는 점도 이야기가 추구하는 바를 생각하면 꽤 일관성이 있는 셈이다. 인류가 경험해볼 수 있는 가장 광활한 공간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는 경험을 담고 있으니까.

생존으로 가는 그 험난한 여정의 중간중간에 레어 아이템처럼 놓여 있는 우주의 기념물들. 눈에 익은 우주선들, 그리고 우주정거장, 허블 망원경,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우주왕복선. 그리고 그 우주선들이 산산이 부서져나가는 장면들! 우주를 소재로 한 아주 리얼한 픽션, <그래비티>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그런 것들이다. SF적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이름이 뭐가 됐든 그건 그것대로 이미 충분히 훌륭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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