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현지보고] “코미디언의 눈으로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
2013-11-14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벤 스틸러 인터뷰

-<월터>는 제임스 서버의 단편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1939년작)을 원작으로 한다. 더불어 대니 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월터의 비밀 인생>(1947)도 있는데, 이 점이 부담이 되진 않던가.
=늘 영화의 전반적인 면모를 먼저 보는 편이다. 스티브 콘래드의 시나리오는 원작을 좀더 감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현재의 나 자신이나 연출가로서, 배우로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나에겐 새로운 시도였다.

-월터의 실생활은 무척 지루해 보인다. 당신의 인생에선 이런 경우가 없었을 것 같은데.
=부모님이 배우라 어릴 적부터 쇼비즈니스쪽에 관심이 많았다(그는 유명 코미디언 부부 제리 스틸러와 앤 미어러의 아들이다.-편집자 ). 재미있고 화려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도 배우 지망생 시절에 카메라 가게 점원이나 쓰레기 수거 등 많은 일을 했다. 다행히 월터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사무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마 못 견뎠을 거다.

-월터처럼 당신도 가끔 백일몽이나 판타지를 꿈꾸곤 하나.
=특별히 자주 공상하는 것은 없지만, 주로 작업 중인 작품이나 최근에 본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자주 혼자 꿈을 꿔서 아이들이 그런 나를 깨우곤 하지. (웃음) 또 극중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는 과정이 나오지 않나.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선 백일몽을 꿀 시간조차 없다. 사람들은 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도 그렇고. 하지만 가끔 상상 속에서 어딘가로 향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월터의 직장이 <라이프> 잡지사인 만큼 실제로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 월터처럼 <라이프> 잡지사가 문을 닫을 때 아카이브 정리를 담당했던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1883년 창간된 <라이프>는 2000년 폐간된 뒤 여러 차례 특집 이슈를 발간했다.-편집자 ). 실제 오피스와 로비에서 촬영했는데, 나에게 아이콘인 <라이프>의 모습과 잡지 속에 담겨 있던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건물은 물론 당시 잡지의 분위기를 최대한 담고 싶었다. 극중 사용된 사진도 아카이브에서 직접 보고 사용할 수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봤던 역사적인 이미지들을 보면서 고른다는 것이 즐거운 고민이었다.

-이 작품에서 코미디와 드라마의 밸런스를 맞추기 힘들지는 않았나.
=코미디언의 눈으로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 어떤 장면을 웃기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 만들지도 않았다. 나는 스토리 자체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거다. 월터라는 캐릭터는 늘 표면 아래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월터가 상상을 할 때에는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없었던 행동을 하는거다.

-가라오케 장면에서 휴먼 리그의 <Don’t You Want Me Baby>가 나오는데.
=그렇다. (웃음) 고등학교 다닐 때 유행했던 노래다. 개인적으로 가라오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웃음)

-이제는 없어져가는 전통 미디어에 대한 오마주인가.
=월터는 내 나이쯤 됐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를 경험한 세대다. 아날로그 세계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디지털로의 전환 역시 완벽하게 해야 하는 세대다.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세계에서 산다는 것과 필름이 없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래서 이 영화도 필름으로 촬영했다. 이 작품은 필름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누구나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50살이 되기 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그는 현재 48살이다.-편집자).
=(웃음) 리스트를 만들거나 하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생활하는 것이 아닐까. 앞만 보고 살면, 놓치는 게 너무 많다. 인생에는 보장되는 것이 없지 않나. 지난 몇년간 가까운 사람들을 잃게 되면서, 더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그래서 현재 이 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싶다.

-연기와 연출, 제작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연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릴 적부터 꿈이 감독이었다. 제작보다도 연출이 더 좋다. 프로듀서는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 힘들다. 물론 제작과 연출을 겸한다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감독이 가장 큰 꿈이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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