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이라는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정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설정 자체에 대한 의문 때문에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물리학에 대한 이해야 다들 고만고만하고 아직 증명되지 못한 이론이니 상상력이야 자유라고 친대도 영화 내에서 규칙들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서사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 지질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주로 만들었던 김현석 감독의 <열한시>는 타임머신을 소재적 배경으로 삼아 독특한 스릴러에 도전하고 있다. 전반부의 SF적 설정은 다소 산만해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긴박감을 조성하고 자신의 장기인 코믹 멜로적 요소를 적당히 가미해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다.
타임머신 프로젝트를 연구 중인 우석(정재영)은 투자자로부터 프로젝트 중단 통보를 받고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영은(김옥빈)과 함께 시험 비행을 강행한다. 하루 뒤 같은 시간인 11시로 15분 동안 다녀온 여행 속에서 온통 불바다가 되어 붕괴 직전인 연구소를 목격한 뒤 누군가의 습격을 받지만 살아서 귀환한다. 우석은 다른 연구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CCTV 영상을 통해 화재 원인을 밝혀내 끔찍한 미래를 바꿔놓으려 하고 뒤늦게 깨어난 영은은 미래에서 만난 누군가의 조언을 근거로 바이러스에 걸린 CCTV 영상에 백신을 투여하길 꺼린다. 미래는 노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안다는 사실마저도 그것에 포함된 미래인 것일까?
신화에서 신탁은 늘 진실이 된다. 그것은 신탁이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해서라기보다 신탁을 받은 순간 그것이 결정인자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열한시>의 긴장감도 바로 그 지점에서 촉발된다. 인간이 아무리 지적인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혹은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특별히 지적인 존재들이라고 할지라도 욕망은 지식을 삼켜버리고 윤리적 판단마저 흐려버린다. 그들은 미래에서 보았던 끔찍한 장면을 피하기 위해 더 끔찍한 기획을 도모하고 그것이 결국은 그들이 보았던 미래로 귀결된다. 이런 비판적 접근은 흥미롭지만 동시에 인간의 가능성과 서사의 반전에 대해 너무 폐쇄적인 구도를 생성하게 되어 주제적, 극적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반전으로 마련된 결말 역시 그것이 그들이 말하던 ‘미래’의 범주에 속하는 시간이라고 동의하기 어렵다. 타임머신을 활용한 야심찬 기획과 타자가 아닌 자아와의 대결을 스릴러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발상의 신선함 그리고 소소한 유머코드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목격하게 되는 서사적 구멍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