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이라 부르는 소리가 그리 끔찍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비행기 한번 타본 적 없고 외국어 한마디 못하는 정연(전도연)은 졸지에 프랑스 공항에서 미아가 된다. “마담! 마담!” 그렇게 정연은 (수사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약청정지역’인 대한민국에 마약을 운반하다 걸린 ‘마약 아줌마’가 된다. 하지만 전도연이 생각하기에 그 마약 아줌마는 그저 평범한 한국 사람이다.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는 그저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정연을 연기하며 특정한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진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난 몇년간 읽어본 중에 가장 흡입력 있는 시나리오였다. 나였어도 그런 선택을 할지도 모를, 평범한 그 누군가의 이야기. ‘내가 이렇게 쉽게 출연 결정을 내려도 되나? 좀더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냐?(웃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망설임 없이 선택한 영화였다.”
실제 현실의 전도연도 한 아이의 엄마다. 그래서인지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이와 함께 문방구에 가고 즐겁게 노래 부르며 아이와 호흡하는 장면이란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역시 현실에서 한 아이의 아빠인 고수와 깊이 통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것은 ‘억류’와 동시에 세상과 단절된 정연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전도연이 바라본 정연 캐릭터의 핵심은 ‘일상성’이었다. “드라마틱하다기보다 조금 더 일상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여자이길 바랐다. 어쩌면 방은진 감독님이 나보다 더 감성적이었는데(웃음), 나는 그보다 더 현실감이 배어든 캐릭터였으면 했다.” ‘드라마틱한 실화’라는 모호한 접점 위에서 우리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관록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거기일 것이다.
방은진 감독과의 호흡은 굳이 ‘여감독과 여배우의 만남’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면 편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은 문제였다. “딱히 남자감독, 여자감독이라 분리한 적도 없을뿐더러 방은진 감독님은 내게 감독이기 이전에 ‘존경하는 선배배우’ 느낌이어서 사실 굉장한 모험이었다.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좀 무서웠다. (웃음) 게다가 왠지 좀 까칠하고 까다로우실 것 같은 선입견도 있었다. (웃음) <집으로 가는 길>은 이야기의 무게보다 그런 ‘관계’ 때문에 망설여진 영화였다.” 하지만 한달 정도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하며 호흡을 맞추다 보니 선입견이 무색하게 역시 편한 ‘언니’, ‘동생’이 됐다.
프랑스의 황량한 감옥에 갇히게 된 정연은 “정말 마약인 줄 몰랐어요. 전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예요. 딸도 있고, 제발 한국에 전화 좀 하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은 내가 여기 온 것도 몰라요”라며 통사정을 한다. 하지만 프랑스 경찰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할뿐더러 마약 현행범은 외부통화 금지다. 사정을 알게 된 한국대사관은 프랑스를 방문할 의원님 접대에 바쁘고, 외교통상부 역시 국정감사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렇게 정연은 혼자가 되고 남은 것은 가족뿐이다. “요즘처럼 1분 1초도 스마트폰 없이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정연의 고독은 그야말로 공포다. 정연이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한참 시간이 지나 남편 종배와 통화를 하게 되자, “여보, 나 어떡해. 나 너무 무서워. 여보, 나 좀 어떻게 해줘. 나 좀 살려줘”라며 울먹인다. 하지만 시간은 무시로 흘러가고 어린 딸도 알아서 큰다. 영화 속 대사로도 나오지만 ‘딸아이가 한창 클 나이에 보지 못한다는 것, 아이가 나 없이 큰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전도연이 맨 처음 받아본 시나리오의 겉표지에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과 함께 ‘가제’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방은진 감독은 더 어울리는 제목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물론 전도연도 함께 고민했다. 하지만 촬영을 끝내고 보니 도저히 그 이상의 제목을 찾을 수 없었다. “정연은 감옥에서 매일 똑같은 꿈을 꾼다. 출구도 입구도 없는 방 안에 갇혀 있는 꿈. 수면제 한 움큼 털어넣고 눈을 감지만 잠도 오지 않는다. 정연이 답답한 외국 법정에서 한국의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실제로 정연으로 살면서 해외 촬영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가는 길의 느낌도 비슷했다. (웃음)” 전도연은 인터뷰 내내 아직 ‘정연으로 살던 느낌’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고 했다. “잠깐이나마 감옥으로부터 우연히 탈출하게 된 기회에 보게 된 너른 바다의 비현실적인 해방감, 그리고 법정에서의 클라이맥스. 정연의 마음이 관객에게 온전히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최근 가장 좋았던 영화를 물었더니 <그래비티>라고 했다. <그래비티>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린 영화 아니냐는 웃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