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감독
그래서, 차기작은 뭐예요?
<설국열차> 봉준호
올해의 영화감독은 봉준호다. “폭주하는 기관차에 맞춰 돌아가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한 리듬감과 그 상징성을 대중적인 화법으로 풀어냄”(김지미), “어떠한 규모와 소재도 봉준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신통한 연출력”(송효정) 등의 지지를 받았다. 결코 쉽지 않은 장르와 규모를 능숙하게 완성해낸 그 뛰어난 연출력이 갈채를 끌어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봉준호 감독은 <괴물> <마더>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올해의 감독을 차지했다. 아직도 <설국열차>와 관련된 일들은 끝나지 않아서, “내년 2월7일에는 일본에서 개봉도 하고 베를린영화제에서는 특별 상영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벌써 <설국열차>를 뒤로하고 차기작을 향해 있는 것 같다. “<설국열차>는 벌써 오래전 일인 것 같다. 이제는 많이 잊었고 그리고 빨리 잊어야지.”
지금 당장에 그는 제작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요즘은 그가 제작자로 나선 영화 <해무>의 거제도 촬영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20분 전까지만 해도 밤바다 촬영현장에 있다가 지금 막 들어왔다. 배를 소재로 한 영화라서 난이도가 높다. 그래서 나도 뭐 좀 도울 것이 없나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촬영 계획 기간 넉달 중 두달가량 찍었으니까 절반 좀 넘었고, 바다 분량은 여기 거제도에서 많이 찍고 내년 1월하고 2월은 세트장에서 찍을 거고 개봉은 내년 정도로 생각한다.” 어쩌면 내년은 올해의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자, “하하 그럴 리가요”라고 응수.
“영화 찍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다음 연출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든다”는 그에게 계획을 물었다. “두 가지 스토리가 지금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 두 가지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리서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걸 먼저 찍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혹은 둘 다 같이 찍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야기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했으니 속도는 붙을 것 같다. 다만 우리의 조급한 희망을 먼저 말하자면, 두개의 스토리 전부, 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봉준호, 그는 그때에도 여전히 올해의 감독 부문의 강력한 후보일 테니까.
올해의 남자배우
미래, 과거 그리고 현재의 표상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송강호
압도적이다. 올해의 남자배우는 과반이 훌쩍 넘는 지지로 송강호에게 돌아갔다. “물량공세 때문 아닐까. 인해전술로 밀어붙인 덕분에 좋게 봐주신 것 같다”며 넉살 좋게 말문을 여는 송강호지만, 영화 한편 한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니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답변한다. “세편이라는 물리적인 숫자보다 미래를 다룬 <설국열차>, 몇 백년 전 이야기인 <관상>, 지금 우리 곁의 삶을 그린 <변호인>까지 다양한 시공간을 아우를 수 있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경우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올해에만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세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이례적이고, 영화마다 전혀 다른 모습과 강렬한 캐릭터로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으니 이견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선정근거 역시 특별한 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김영진), “믿을 수 있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듀나)는 찬사로 족하다. 송강호 또한 “2007년 <밀양>과 <우아한 세계> 이후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쁘다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며 “많은 분들, 특히 전문가들이 이렇게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배우로선 매우 흥분된다. 때로는 크고 작은 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작품을 통해 새로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한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연기를 한해 동안 압축적으로 보여준”(장병원) 그는 이제 “유연함을 잃지 않은 채 관록을 더한 연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김혜리)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올해의 여자배우
유미의 영화
<우리 선희> 정유미
3년 전의 옥희가 선희가 되어 돌아왔다. 다시 만난 정유미 안에는 우리가 아는 정유미도 있었고 우리가 몰랐던 정유미도 있었다. 그렇듯 “홍상수 영화 안에서 진화, 변태하는 여배우”(장병원)로부터 비롯된 존재가 “누구의 선희도 아닌 선희”(김혜리)였다. 그녀의 신비로운 변태의 순간에 감화받은 이들이 줄을 이어 목격담을 전해왔다. “세 남자 사이를 오가는데도 선희에게는 의심할 수 없는 투명함과 단단함이 있다. 정유미여서 가능해진 감흥이다.”(남다은) “‘우리 선희’가 된다는 것은 영화 안에서 일종의 그림이나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기꺼이 그런 소도구가 되면서도, 결코 존재감을 잃지 않는 연기는, 누군가 진정한 배우가 되는 순간 일어나는 일이다.”(변성찬) 그 찬사들에 정유미는 경쾌한 외침으로 응답했다. “안 돼요! 너무 빨리 뽑아주신 것 같아요. 이러다 조용히 사라지게 될까봐 두려워요. (웃음)” 하지만 선희와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다 던져본 것 같아요. 감독님과 스탭들과 함께 있는 현장이 주는 리듬같은 게 느껴질 때 그걸 받아들이며 확 저지를 수 있었어요. 믿음이 주는 용기가 있었어요. 다른 영화를 할 때도 그 때를 생각하면 두려운 게 다 사라지고 힘이 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조용히 사라질 리 절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홍상수 감독과 스탭들에게 “또 만나요!”라고 전한 그녀는 조만간 신재영 감독의 <맨홀> 속으로 또 기운차고 당당하게 몸을 던질 예정이다. <우리 선희>의 마지막에 창경궁 담 밖으로 발을 내딛던 선희처럼, 앞으로의 정유미도 연기의 담을 넘고 넘어 어디까지 우리를 데려갈지 궁금해진다.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정은채
“올해 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아 갔을 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숨죽이고 함께 웃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은채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었다고 답했다. 우리에게 정은채의 등장이 그랬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해원은 정은채다. 신비롭고 씩씩하며 오묘하고 튼튼한 새로운 유형의 여배우가 등장했다. 더 알고 싶다”(남다은)는 말처럼 새롭고 동시에 믿음직한 이 여배우는 우리에게 그녀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한 기대를 안긴다. 선정 소감을 묻자 “무척 기쁘고 용기가 생긴다. 작품에서 늘 자연스럽게 있는 듯 없는 듯 묻어나는, 자유롭고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답하는 모습이 정은채답다고 해야 할까. “홍상수 영화에서 터진 잠재력”(김영진)에 만족하지 않고, “‘홍상수의 배우’가 아니라 ‘배우 정은채’”(우혜경)가 되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이라는 점에서 차기작 <역린>은 기대를 모은다.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여진구
“믿어지지 않을 만큼 굉장한 기운이 느껴지는 배우다.”(김영진) “이렇게 파워풀하고 인상적인 남자 신인은 오랜만이다.”(장병원) “갈 길을 잃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자기 자리를 잡고 빛을 발하는 역량을 보여준 귀한 소년”(김지미) 여진구에게 몰표가 쏟아졌다. 17살에 맡은 첫 주연작에서 친아버지와 양아버지들을 모두 죽여야 했던 소년의 마음의 무게를 거뜬히 버텨낸 결과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관람 등급에 나이가 걸려서” 자신이 키워낸 화이의 실물과 아직 재회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화이의 감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현장에서 내가 준비한 대로 연기를 잘했는지 불안했는데 시사 뒤 아빠들이 많이 칭찬해줘서 기뻤다”는 그는 “아빠들, 감독님, 스탭 형 누나들과 보낸 소중한 시간”을 그리워했다. “영화 연기의 차이를 알게 해준” 시간을 지나 지금은 드라마 <감자별 2013QR3> 촬영에 푹 빠져있는 그는 앞으로 영화를 통해 “지독한 악인역도 해보고 싶고, 1인2역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 여진구‘들’의 나날이여, 어서!
올해의 신인감독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더 테러 라이브>는 올해 비평과 흥행에서의 성공을 양손에 거머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공은 “몰입도 있고 탄탄한 연출력”(김지미)을 선보인 김병우 감독의 몫이다. “원톱 주인공으로 실시간을 내달리는 쉽지 않은 호흡의 조율”(주성철)은 신인감독의 솜씨라 볼 수 없을 만큼 다듬어져 관객을 홀린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쉬움이 더 큰 듯하다. “준비 기간이 길어 자식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병우 감독은 “계절도 두번이나 바뀌었고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시집간 딸 같다. 더 잘 만들 수도 있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는 수줍은 말로 선정 소감을 대신했다. 현재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김병우 감독은 “<더 테러 라이브>를 처음 쓰던 때로 돌아가 데뷔작 준비하는 기분으로 쓰고 있다”며 열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당장 내년에 들고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무엇이 되었건 재미있는 영화를 들고 돌아올 테니 기다려달라”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믿고 싶다.
올해의 시나리오
신연식 <러시안 소설>
“영화 만드는 과정 중에 시나리오 쓰는 게 가장 즐겁다. 이 부문에 선정해주셔서 특별히 감사드린다.” 신연식 감독의 말을 듣고 나니 자리가 제 주인을 만난 것 같다. 올해 저평가된 영화 중 한편으로 꼽히기도 한 <러시안 소설>은 “지극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어떤 문학작품보다 깊은 문학적 사유의 영역에 도달하는 기적”을 보여준 영화다. 치밀하고 촘촘하게 쌓여가는 이야기가 영화라는 문법 안에서 날개를 펼치는 모습은 자못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복잡한 관계의 인물들과 사건을 요리하는 솜씨가 빛나는 다성적 시나리오”(장병원)는 그간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완성도를 선보이며 평단은 물론 관객에게 경탄을 자아냈다. 신연식 감독은 “<배우는 배우다>의 흥행 결과가 좋지 않아 잠시 낙담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러시안 소설>을 통해 위로받을 줄은 몰랐다”며 겸손의 말을 전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만난 이상 사람들이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올해의 제작자
<더 테러 라이브> 이춘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패자는 없었다. 올여름, <설국열차>와의 레이스에서 <더 테러 라이브>는 결코 뒤지지 않는 폭발력을 발휘했다. 이 반가운(!) 테러의 진두지휘자,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가 올해의 제작자다. “전통적 영화제작자의 미덕”(김영진), “저예산 액션영화 아이디어를 성공적 상업영화로 발전시킨 능력”(남동철), “도심재난영화이자 실내극이라는 흔치 않은 작품의 속성을 꽉 붙들고 밀어붙인 뚝심”(김혜리)을 확인했다는 평들이 쏟아졌다. 이같은 결과에 이춘연 대표는 “그 지루한 사람들이 날 뽑아줬을 리 없는데. 나이 먹은 놈이 젊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뽑아준 건가? 음허허. 어쨌든 멍석 위에서 잘 놀아준 사람들한테 고맙고, 600만 관객의 탁월한 선택도 고맙다”며 흐뭇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더불어 “나같은 사람도 오래 버티다 보니 이런 좋은 일이 생긴다. 그걸 보고 후배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나한테 주어졌던 길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지”라고 전했다. 그의 어깨는 여전히 든든하다.
올해의 촬영감독
<베를린> 최영환
“스파이 스릴러의 긴장을 살리면서 단지 기술적인 완성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와 분위기를 살려낸 화면을 만들었다.”(이현경) <베를린>을 봤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최영환 촬영감독은 결이 다른 두가지 화면, 현란하고 실감나는 속도의 카메라와 인물들의 캐릭터를 십분 살려주는 감정의 카메라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베를린>의 땀과 눈물을 관객의 바로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이야기의 템포와 정서를 최대한 살린 촬영”(이주현)이야말로 <베를린>의 힘이다. 최영환 감독은 “이국적인 풍광 덕분에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했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해외 로케이션의 난점을 매끄럽게 소화해낸 것이야말로 최영환 감독의 재능이 빛나는 지점이다. “오랜만에 함께 작업한 류승완 감독과의 호흡이 너무 좋아 별 무리 없었다”며 당연한 일이라는 듯 화답한 최영환 감독. <국제시장> 촬영차 타이에 머물고 있는 그가 또 어떤 이미지를 ‘당연하게’ 낚아올릴지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