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의 ‘007’ 시리즈나 <해리 포터> 시리즈가 빠진 2013년 영국의 영화 박스오피스 수익이 지난 20년 사상 최악의 하락폭을 보였다는 조사가 나와 영국 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리서치전문회사 ‘렌트랙’ (Rentrak)은 지난 1월, 2013년의 영국 전체 영화 박스오피스 수익이 10억1700만파운드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것은 2012년에 비해 겨우 1%가 하락한 수치이기는 하나, 하락폭은 영국 박스오피스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후 가장 큰 폭이라는 것이 렌트랙의 설명이다. 렌트랙은 2013년에는 영국 영화사상 가장 많은 관객인 100만명을 동원했던 2012년의 <007 스카이폴>을 잇는 히트작을 내놓지 못한 것이 이번 박스오피스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꼽았다.
렌트랙의 연구원 루시 존스는 “2013년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슈퍼배드2>를 비롯해 <레미제라블> <아이언맨3>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등 다양한 장르의 인기작이 많은 한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12년의 <007 스카이폴>을 잇는 대작은 분명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관객수가 100만명이 넘기 위해서는 일종의 붐이 있어야 한다. 즉 극장을 평소에도 즐겨 찾는 십대 영화팬뿐 아니라,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여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인데 2013년에는 이런 현상을 불러오는 영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2011년 영국 영화계가 <킹스 스피치>로 성황을 이룬 것을 떠올리게 한다. <킹스 스피치>를 보기 위해 당시 극장을 찾은 이들 중에는 영화 관람을 그리 즐기지 않는 중/장년층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킹스 스피치>는 첫주 이후부터 관객수가 서서히 줄어드는 여타 영화들과 달리 둘쨋주와 셋쨋주에 오히려 관객이 느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2014년에도 ‘해리 포터’나 ‘본드’는 없다. 또한 <트와일라잇> 같은 인기 시리즈도 없다”고 운을 떼면서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고질라>라는 기대작이 있다. 기대작이 드문 만큼 의외의 영화가 많이 상영되어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하는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2014년 영국 영화산업을 예측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