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실화 <코뿔소의 계절>
2014-01-15
글 : 이주현

영화가 시작되면 “카망가르를 포함하여 모든 정치범 수감자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뜬다. <코뿔소의 계절>은 이란혁명 당시 반혁명죄로 누명을 쓰고 30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쿠르드족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을 비판하는 정치적인 시를 썼다는 이유로 30년형을 선고받은 사헬(베로즈 보소기)이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다. 혁명 당시 남편인 사헬에 협조했다는 명목으로 미나(모니카 벨루치) 역시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남몰래 미나를 짝사랑해온 운전사 아크바(일마즈 에르도간)는 자신의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 감옥에서 미나의 몸을 더럽힌다. 감옥에서 쌍둥이를 낳은 미나는 이후 출소해 남편의 허위 사망 통지서를 받아들고 “오랜 세월 가짜 무덤에서 눈물을 흘린다”. 한편 출소한 사헬은 미나의 행방을 쫓아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사헬은 멀리서 미나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미나는 남편의 시구를 문신으로 새기는 일을 하며 자식들과 살아간다.

<코뿔소의 계절>은 바흐만 고바디가 이란에서 터키로 망명한 뒤 만든 첫 영화이며, 그가 전문 배우를 기용해 만든 첫 영화다. <코뿔소의 계절>이 고바디의 전작들과 다른 결을 지니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단적으로 <코뿔소의 계절>에선 참담하고 비통한 현실보다 모니카 벨루치의 모습에 우선적으로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장면들이 더러 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거북이도 난다> 등 이란 내 쿠르드족의 현실을 그리며 우리를 속절없이 비탄에 젖게 했던 고바디는 여기 없다. 대신 그는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북이, 차창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말, 메마른 땅에 쓰러진 코뿔소 등 낯설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고바디의 이 이미지의 실험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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