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오역은 휴먼에러예요~
2014-02-28
사진 : 최성열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인사이드 르윈> 황석희 번역작가

Filmography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2014), <노예 12년>(2013), <아메리칸 허슬>(2013), <인사이드 르윈>(2013), <폴리스 스토리 2014>(2013), <엔더스 게임>(2013), <시절인연>(2013), <돈존>(2013), <리딕>(2013), <다이애나>(2013),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2013),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웜바디스>(2013)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1~3>(2011∼13), <레볼루션>(2012), <뉴스룸>(2012), <더 퍼시픽>(2010),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 <NCIS 시즌9>(2011), <NCIS 시즌1~8>(2003~10), <24 시즌8>(2010), <번 노티스 시즌2>(2008), <24 시즌7>(2009), <NCIS: LA2>(2010), <캐슬 시즌1>(2009), <하우스 시즌3>(2006)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 이미 영화가 끝난 건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순간을 위해 자막을 번역하는지도 모른다”는 황석희 번역 작가에게 영화의 끝은 ‘번역 OOO’이라는 이름이 암흑 속에 떠오를 때다. 그는 ‘번역 황석희’라는 자막이 뜨면 “그 어떤 순간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그 이름 석자를 책임지기 위해 적게는 서너번, 많게는 열댓번씩 영화를 돌려보며 한 문장, 한 단어를 마치 퀴즈를 푸는 것처럼 번역한다.”

<인사이드 르윈>은 “예고편을 본 뒤 홀딱 반한” 그가 “이례적으로 먼저 하겠다”고 나선 작품이다. 영화사에서는 “실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자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에 손을 들어줬다. 노래 가사 번역 중 ‘I been all around this world’를 ‘세상 구경 잘했소’로 번역한 대목은 자신도 만족하는 부분이다. 번역자의 입김이 느껴지는 이 문구는 “경력 17년의 통기타리스트이자 6년째 직장인 밴드에서 활동 중”인 황 작가의 내공에서 비롯됐다. 그는 “포크송에 내재한 정서를 일종의 한(恨)으로 봤고, 이에 따라 이를 표현할 적절한 어미로 ‘하오체’를 선택했다”고 한다. 반대로 “르윈이 불어로 하는 마지막 대사 ‘Au revoir’를 ‘또 보자’로 직역하지 않고 ‘잘 가게’로 번역한 것은 두고두고 관객에게 죄송해지는 부분이다. 자신을 두들겨팬 남자에게 ‘잘 가’라고 말하는 것과 ‘또 봐’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니까”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미 공개된 자막은 수정불가”라 냉가슴만 앓는다.

르윈처럼 그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 시절이 있었다. “사범대가 적성에 안 맞아 방황”하던 그는 잠깐 손댄 따분한 계약서 번역 작업을 거쳐, 마침내 미국 심리상담 토크쇼 <닥터 필 쇼>의 번역을 맡게 됐다. 당시 영상은 비디오로, 대본은 하드 카피로만 존재했고, 차마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말할 수 없는 생짜 신입이었던 그는 “번역 자료를 받기 위해 춘천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오가는” 수고를 해야 했다. “비디오를 보기 위해 중고 비디오데크를 장만”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초짜에게 말의 홍수인 토크쇼는 1분 번역하는 데 2시간을 쏟아야”하는 ‘마(魔)의 텍스트’였다. 그가 “이 바닥에서 나만큼 밑바닥부터 시작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작품은 <웜바디스>다. 좀비영화로 의외의 흥행을 거둔 데다 번역에 대한 호평까지 받아, 이후 <레드: 더 레전드>와 <인사이드 르윈>까지 그에게 줄줄이 엮어줬다.

그는 번역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로 “영어 실력보다는 한국어 실력을, 한국어 실력보다는 ‘드립력’, ‘덕력’으로 대변되는 ‘센스’”를 꼽는다. 그가 자신의 번역을 언급한 글들을 샅샅이 뒤지고, “수익이라야 차비에 커피 한잔이면 끝인 영상번역 강좌”를 계속하는 것도 바로 “소통을 통한 깨어 있는 번역을 하기 위해서”다. 그가 관객에게 바라는 한 가지는 “오역을 휴먼에러(human error)”라고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는 관대함이다. “평균 2천개의 문장을 다루는 번역 작업에서 오역이 없기는 수능에서 만점받을 확률 정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여전히 각종 영화사에 하루 150통의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을 알리는 8년차 중고 신인”인 그의 목표는 “굵직한 직배사 영화를 번역해보는 것”, 그리고 “굶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다”.

나의 조력자

감이 좋은 마우스를 제친 그의 보물은 아이패드 속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애니메이션 번역 겸 더빙을 하는 아내는 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번역 과정에서 아내의 검수는 필수 사항. ‘번역 황석희’ 뒤에 숨은 이름이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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