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브래들리 쿠퍼] 종잡을 수 없는 미남배우의 행보
2014-03-11
글 : 주성철
브래들리 쿠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올해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허슬>은 ‘충격의 무관’으로 남았다. 흑인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노예 12년>의 반대편에서, 최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정작 한개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한 것. 이같은 결과가 아카데미 위원회의 ‘허슬’(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배우들의 매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다. 그 안에서 충격의 무관은 따로 있다. 크리스천 베일은 같은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의 <파이터>(2010)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제니퍼 로렌스도 역시 같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무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에이미 애덤스는 <아메리칸 허슬>로 올해 골든글로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브래들리 쿠퍼야말로 진정 운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 곧 그의 시대가 열리리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행오버>(2009) 시리즈와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3) 사이의 멀고도 먼 거리감, 그리고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아메리칸 허슬>의 위장경찰 사이에서 흥미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브래들리 쿠퍼는, 이제야 ‘섹시한 또라이’를 넘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력 넘치는 ‘블루 아이’의 등장

브래들리 쿠퍼의 첫인상은 푸른 눈에 날카로운 콧날을 탑재한 금발 남자의 섹시함이었다. <행오버>의 친구 앨런(잭 갈리피아나키스)도 그를 언제나 ‘블루 아이’라고 불렀다. 데뷔 초기에는 외모적으로 종종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의 레이프 파인즈와 닮았다며 비교되기도 했으나, 2011년 미국 <피플>이 선정한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오르며 그만의 매력을 입증했다. ‘퍼펙트 스마일’이라 불리는 톰 크루즈의 미소와 비교하며 그의 멋진 미소를 골든 스마일’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어딘가 바닷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는 지중해 미남의 매력을 풍긴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어머니가 이탈리아계였다(아버지는 아일랜드계). <아메리칸 허슬>에서 연기한 FBI 요원 ‘리치 디마소’도 가난한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자란 설정이다. 그 이미지는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99년 TV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시즌2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났다. 네 주인공 모두 남자친구가 없어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게이 친구 스탠포드를 따라 술집에 간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는 멀리서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이상형’이라고 느낀다. 담뱃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을 때 “불 줘요?”라며 다가오는 그를 보고 넋이 나가버린 것. 장발의 ‘올백’ 스타일로 나타난 그는 자신의 포르셰 자동차로 캐리를 안내했고, 흥분한 캐리가 먼저 달려들어 키스하게 만들었다.

이후 2001년 TV시리즈 <앨리어스>에 시드니(제니퍼 가너)의 오랜 다정한 친구이자 그녀를 남몰래 사랑하는 ‘윌 티핀’으로 출연해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어쩌면 이때부터 그의 강박증적인 면모가 드러나게 됐는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딱 4명만 잡고 끝내려고 했던 계획에 정치인과 마피아까지 연루되면서 판이 커지고, 그렇게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어이 작전을 강행하려 하는 FBI 요원 리치의 모습과, <앨리어스>에서 직업인 기자의 책임감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시드니의 애인인 대니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모습이 무척 닮아 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2008)에서 우연히 지하철에서 한 남자를 만난 뒤 알 수 없는 강한 이끌림으로, 그 실체를 자신의 카메라에 담고자 매일 새벽 지하철역을 어슬렁거리던 뉴욕의 젊은 사진작가 레온의 모습도 그렇다. 언제나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은 눈빛과 어딘가 날카롭고 뾰족한 그의 마스크는 그 역할에 더없이 어울렸다.

<앨리어스> 이후 성공의 길이 의외로 쉽게 열리는 듯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제작자 다렌 스타가 제작한 새로운 TV시리즈 <키친 컨피덴셜>(2005)에 굵은 팔뚝으로 조리기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섹시한 셰프 잭 보데인으로 출연한 것. 뉴욕의 한 레스토랑 주방에서 여자도 꼬이고 주먹질도 일삼는 다혈질의 셰프였다. 흥미로운 것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를 빈정 상하게 만든 이유가 바로, 그녀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표지에 나온 <뉴요커> 잡지를 그가 편의점에서 사왔기 때문인데, <키친 컨피덴셜>의 오프닝에는 늘 잭 보데인이 멋지게 표지로 나온 <뉴요커>가 등장한다. 그렇게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셰프였다. 잭 보데인은 그 특유의 모든 매력이 담겨 있는 캐릭터였지만, 미국 미식축구 플레이오프 시즌과 겹치며 시청률이 폭락해 결국 4회 종영으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그는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2006), <예스 맨>(2008)에서는 각각 매튜 매커너헤이와 짐 캐리의 ‘훈남’ 친구로 등장하며 만족해야 했다.

잘생긴 미친놈의 비상

R등급 사상 최고 흥행 코미디 <행오버>는 3편까지 이어지며, 브래들리 쿠퍼의 성공시대를 열어준 작품일 것이다(아무래도 마약이 난무하는 탓에 국내에서는 2편만 개봉했다). <웨딩 크래셔>(2005)에서 오언 윌슨과 빈스 본의 친구로 나와 살짝 ‘맛’만 보여줬던 그의 장난기와 ‘허당’ 기질은 이 시리즈에서 제대로 폭발했다. 세 친구 필(브래들리 쿠퍼), 스튜(에드 헬름스), 앨런(잭 갈리피아나키스)은 결혼 전 마지막 파티를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다가 ‘꽐라’가 되고 일생일대의 대형 참사를 겪는다. 여기서 필은 앨런이 늘 그의 디젤 셔츠를 탐낼 정도로, 친구들 중 가장 멋쟁이이고 브레인일 것 같지만 의외로 천진난만한 허당이다. 게다가 술만 들어갔다 하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또라이’로 변신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도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는 아내의 외도로 인한 충격으로 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있다 나온 그에게 “절대 술 마시지 말고 사람을 때리지 말라!”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귀여운 다혈질이랄까. TV시리즈 <닙턱>에서도 엿볼 수 있었던 지질하고 능글맞은, 하지만 어딘가 ‘싸게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행오버3>에서 앨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앨런의 불효로 인해 급작스레 돌아가셨다) 앨런이 부르는 염치없는 추모곡에 “목소리가 정말 천사야”라며 순진하게 감탄하고, 그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그들로 인해 교도소에 갇혀 있었던) 차우(켄 정)의 분노를 삭여주는 것도 “언제나 네가 그리웠어”라는 느닷없는 진심의 한마디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그런 대사와 표정은 그를 더없이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만들어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매력도 바로 그것이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와 처음으로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하게 됐을 때, 그는 어이없게 시리얼을 주문한다. 왜 그걸 주문했냐는 티파니의 물음에 “당신이 데이트로 오해할까봐”라고 답한다. 그는 여전히 떠나간 아내 니키와 다시 합칠 수 있을 거란 헛된 꿈을 꾸는 남자다. 그러다 남편을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회사 사람 11명 모두와 잤다는 그녀에게 “그중에 여자도 있었어요?”라고 기어이 황당한 질문을 던지고야 만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티파니와 사랑에 빠지게 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건넨다. “미친 나를 위해서 이러쿵저러쿵해준 당신에게….” 그 특유의 ‘잘생긴 미친놈’ 이미지의 최고봉은 역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호스트로 나왔을 때다. 제니퍼 애니스톤 닮은꼴 찾기 대회에 출연한 그는 긴 금발 머리에 청치마를 입고 한껏 아양을 떨었었다.

<아메리칸 허슬>은 배우로서 그가 보여준 최고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늘 태생적인 섹시함을 자랑해온 그가 처음으로 ‘멀끔한 도시 남자’ 이미지를 벗고 이른바 ‘70년대 스타일’과도 조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닮기 위해 매일 수고스럽게 말아 유지하는 곱슬머리는, 이제껏 그가 보여준 강박증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지질하고 무능력한 작가로 나온 <리미트리스>(2011)와 성공을 향해 달려가다 결국 죄의식에 사로잡히고야 마는 남자로 나온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서로 다른 모습 또한 그의 너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엘리펀트 맨>(1980)으로 브로드웨이에 복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6년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공연했던 <쓰리 데이즈 오브 레인>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과거 1997년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한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뉴스쿨대학의 액터스 스튜디오에 등록했는데, 데이비드 린치의 <엘리펀트 맨>이 바로 자신이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라고 말한 적 있다. 당시 졸업과제로 <엘리펀트 맨>을 무대에 올렸고 영화에서 존 허트가 연기한 주인공 메릭을 직접 연기했으니, 이는 그에게 무척 각별한 작품이다.

물론 또 다른 작품도 나란히 줄을 서 있다. 제니퍼 로렌스와 벌써 세 번째 만나게 되는 수잔 비에르의 <세레나>, 그리고 스필버그와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아메리칸 스나이퍼>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라는 평가를 받는 네이비실 소속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다룬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안타깝게도 스필버그는 예산 문제로 하차했고 그만 여전히 주인공으로 남았다. 지난 몇년간 브래들리 쿠퍼의 갑작스런 성장과 존재감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진짜 할리우드의 스나이퍼가 아닐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magic hour

두번 이상 함께해요

그의 ‘매직 아워’는 데이비드 O. 러셀과의 만남 그 자체다. <리미트리스>에서 그와 함께했던 로버트 드 니로가 자신의 아들 역할로 적극 추천하여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한 이후, 그 인연은 <아메리칸 허슬>로까지 이어졌다. 정작 자신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팻’ 역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친밀한 부자관계’를 위해 ‘오직 너뿐!’이라는 드 니로의 권유를 마다하지 못했던 것. 이처럼 그는 제니퍼 로렌스를 포함해 자신과 두번 이상 함께한 감독, 배우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러고 보면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에 등장한 원숭이를 <행오버2>(2011)에서도 다시 만났으니, 역시 같은 경우일까? 이제 막 스무살이 된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의 이 원숭이는 할리우드에서는 꽤 유명한 ‘연기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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