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에 들어온 이진욱은 벽에 붙은 선배 배우들의 사진부터 둘러봤다. 데뷔한 지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씨네21> 표지 촬영은 물론, 인터뷰도 처음이다. 물론 전작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를 통해 젊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고, 드라마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2013, 이하 <나인>)을 통해 ‘연기남’(연기를 잘하는 남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는 관객에게 이진욱은 낯선 배우이고, 낯선 이름이다. 그런 그가 <표적> 개봉을 앞두고 어깨가 무겁다. 포스터와 광고에 적힌 이름이 주연배우 류승룡 다음이다. 김성령, 유준상, 조여정, 진구 등 그보다 경력이 많은 배우들도 그의 이름 뒤에 있다. “나서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 까닭에 부담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의 이름이 류승룡 다음에 놓인 건 류승룡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보다 더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 아니다.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다. 올해 초 개봉했던 <수상한 그녀>에서 맡은 방송국 PD 한승우 역시 오두리(심은경)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감초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적>에서 이진욱이 연기한 태준은 서사를 끌고 가는 동력이다. 레지던트 태준은 억울한 남자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아내 희주(조여정)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 희주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임신부. 태준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평소 만날 일 없는 여훈(류승룡)과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태준은 “평범한 남자”였다. 본의 아니게 일이 꼬이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사건의 중심에 놓인 남자. 막막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든 남자. 막상 뛰어들었지만 누군가를 쫓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남자. 평범한 캐릭터였기에 이진욱의 실제 성격이 캐릭터에 반영되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접었다”고 한다. “사건이, 주변 캐릭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캐릭터다. 평범하다는 말이 일반적이라는 뜻은 아니지 않나. 태준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라 ‘우왕좌왕’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상황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는 태준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단 하나, 납치된 아내를 안전하게 구출하는 것이다. “뭐든 해야 하는 상황이 태준에게 펼쳐진 거다. 평범하기에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판단을 빨리 내리진 못하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36시간 동안 발전하는 친구인 건 분명하다.”
태준이 그렇듯이 이진욱 역시 조금씩 발전 중인 배우다. 스스로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는 드라마 <연애시대>(2006)를 시작으로 <강적들>(2008), <로맨스가 필요해 2012>, <나인> 등 주로 드라마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대중이 이진욱을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된 건 <나인> 때다. 남들보다 다소 늦게 발동이 걸리기까지 불안하거나 초조한 적은 없었을까. “글쎄….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어릴 땐 걱정이나 고민을 안 했던 것 같다. 일이 없으면 없구나, 안 풀리면 안 풀리구나 그랬다. 마냥 낙천적이었던 것 같다. (웃음)” 철없던 그가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욕심을 슬슬 가지게 된 것도 30대가 되면서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작품으로 따지면 <로맨스가 필요해 2012> 때였다. 안일했던 자세에서 벗어나 연기를 좀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표적>은 30대 이진욱이 제대로 뛰어놀았던 영화다. 몇몇 장면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만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달은 터널 신에서 승룡이 형한테 울분을 쏟아내는 장면은 정말 힘들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데 애를 먹었다.” 자신을 내던진 노력이 나쁘진 않았나보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영화 홍보도 참여하게 됐고, <씨네21> 표지도 찍게 됐다.” 연기에 대한 새로운 맛을 알았으니 계속 욕심이 날 것 같다. “물론이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매편 긍정적으로 욕심을 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