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화면에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작품이 끝날 때 즈음이면 어딘지 희미해진다. 인상이 흐릿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캐릭터가 약해서도 아니다. 굳이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편안함’이 적당할까. 이선균을 바라보면 눈이 편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괴팍한 말투로 독설을 내뱉을 때도 밉지 않다. 제아무리 울퉁불퉁한 캐릭터도 이선균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나면 우리 집 욕실에 걸린 수건마냥 부드럽고 친근해진다.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쌓아온 이미지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두르고 있는 일상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작품을 발판으로 스스로 빛나기보다 스스로를 숙여 작품을 받쳐주는 쪽에 가까운 배우다. 두드러지는 한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장면마다 스며들어 전체적인 정서를 쌓아나가는 진귀하고 ‘희미한’ 배우. 늘 상대배우를 돋보이게 해주는 ‘케미스트리의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선균의 강력한 친화력을 칭찬해주는 동시에 일말의 아쉬움도 대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끝까지 간다>는 진정한 이선균 주연의 영화라 할 만하다. 비단 “55회차 촬영에 한번 빼고 전부 나갔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상대배우와의 화학작용을 이끌어내기보다 온전히 자신의 역량으로 영화를 이끌고 가려 시도한다. 물론 그렇다고 본래의 절묘한 호흡, 상대배우와의 친화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배우 이선균의 날것 같은 얼굴이 강렬하게 남는다는 점에서 이선균의 영화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시나리오가 왜 나에게 왔는지 의아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끝까지 간다>의 형사 고건수는 이전에 이선균을 알렸던 낭만적 역할과도, 소심하고 예민한 남자와도 거리가 멀다. 입도 거칠고 실력보다 자존심이 더 센 고건수는 ‘다혈질’이라는 점을 빼면 이선균과 좀처럼 접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자신의 자리로 캐릭터를 당겨온다. 물론 이선균 스스로도 한 발짝 정도 캐릭터에 맞춰 다가간다.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만난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전형적인 배우 이선균의 이미지는 완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색다르고 과장된 듯하면서도 리얼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상투적인 이 캐릭터가 장르적이고 과장된 캐릭터로 소비되는 대신 사실적인 옷을 입고 다가오는 건 이선균이 지닌 특유의 자연스러움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친구가 어디서 범죄를 저지르는데, 나쁜 짓을 하지만 그 행동이 마냥 나빠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출연을 결정했다. 코믹과 액션, 선과 악,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배우, 그게 이선균이었다는 감독님의 말이 믿음을 줬다.” 장르와 리얼리티, 양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워낙 출연분량이 많다보니 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절로 생겼다. 부담감 때문인지 장면마다 집중력이 높았던 것 같다.” <끝까지 간다>에 대한 이선균의 애착은 남달라 보이지만 그것이 그저 출연분량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촬영 마지막에 갈비뼈에 금이 가면서도, 바로 다음날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음에도, 다시 한번 찍자고 제안하는 주연배우를 두고 누가 손 놓고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작품이 다 중요하겠지만 나에게 또 다른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스탭들도 고생이 많았고 유달리 정이 들어서 그런지 끝날 때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열심히, 진하게 뭔가를 같이 했구나 싶어 뿌듯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자신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자평하는 그의 눈빛에서 결과에 상관없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흥행 결과나 주연으로서의 존재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이선균 고유의 케미스트리가 이번에는 촬영현장에서까지 빛을 발하는 진득한 경험을 했기 때문 아닐까. 모든 장면에 얼굴을 비춰서 주연이 아니다. 영화의 안과 밖에서 모두 영화를 지탱하고 있기에 ‘주연’이다. 영화에 대한 책임감, 현장에서의 열정, 그리고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주는 편안함이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를 가능케 했다. 진짜 주연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