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송새벽] <도희야>
2014-05-27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송새벽

송새벽에 관한 ‘다른’ 해석을 접한 건 4년 전 블록버스터영화를 준비 중이던 한 PD로부터였다. “수차례 매니지먼트사를 설득했는데 안 되더라. 아쉽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서 송새벽이 맡을 캐릭터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에서 작은 악마로 변해가는 인물이었다. 당시 송새벽은 한창 코믹한 이미지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광고에서 그는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미친 고백’을 하는 수줍은 남자였고, 그런 송새벽에게 파괴와 악의 근성을 가진 캐릭터는 헐겁거나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그런데 PD가 들려준 말은 주변의 견해와 달랐다. “제작자로서 지켜볼 때 배우 송새벽에겐 지금이 중요하다. <방자전>(2010)의 스타성이나 CF의 웃음기를 걷고 그가 가진 연기력, 의외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에겐 분명 그런 지점이 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방향은 좀 손쉬운 이미지 선택이 아닐까.”

그 배역은 결국 당시 신인이었던 배우에게 돌아갔고 그 배우는 엄청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송새벽은 따로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갔고 그리고 건재했다. 솔직히 <마더>(2009)의 형사 ‘세팍타크로’와 <방자전>의 ‘변학도’로 각인시킨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쌓아올린 ‘제2의 송강호’라는 수식은 쉬 사그라지지 않을 확고한 그만의 무기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잠깐 송새벽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대학로 연극배우들 사이에서는 ‘별스럽지’ 않았던 음색과 말투였는데, 영화에 출연하고 나니 갑자기 다들 특이하다고 좋아해주시더라. 선배들한테는 사실 외모 지적도 많이 받았다. (웃음) 배우로 써먹기엔 영 심심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영화계에 계시는 분들은 ‘도화지’ 같다고들 칭찬을 해주시는 거다.” 어쨌든 그렇게 <마더>로 주목받고 <방자전>으로 뜨고 주연급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성공기’가 펼쳐졌다.

단숨에 주연으로 도약한 뒤…

코믹 캐릭터를 공유하는 배우들이 ‘감초연기’, ‘명품조연’으로 활동 영역을 구축하는 것과 달리 송새벽은 빠르게 주연급으로 충무로에 안착했다. 첫 주연작 <위험한 상견례>(2011)에서 경상도 여자와 결혼을 앞둔 전라도 남자 ‘현지’는 송새벽의 코믹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를 찾았다기보다 애초 기획부터 그를 위해 맞춘 설정처럼 보였다. 연달아 그는 코믹 연기의 달인 성동일과 짝을 맞춰 <아부의 왕>(2012)이라는 빅카드를 내밀었다. <아부의 왕>의 융통성 없는 보험 세일즈맨 ‘동식’. 정면에서 살짝 비껴나간 시선 처리와 엇박의 어눌한 말투, 하이톤의 갈라진 음색 등 웃음을 유발하는 이 모든 요소가 캐릭터가 아닌 송새벽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송새벽의 장점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서 다소 위험해 보이기 시작했다. 작품 속 캐릭터로 빠져드는 대신 캐릭터를 ‘송새벽화’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앞서 작은 배역으로 등장해서 강탈하듯 영화의 신을 뭉텅 떼어가버린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의 데이트 의뢰남이 그 불안의 단초였다. 송새벽은 이외에도 2010년부터 불과 일년 사이 <해결사>와 <7광구> <인류멸망보고서> 등 다양한 작품에서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 매니지먼트사와의 분쟁으로 잠깐의 휴지기도 있었다(올 초부터 그는 새로운 매니지먼트와 일하고 있다). 그사이 송새벽을 향한 질문은 대부분 비슷했다. ‘송새벽은 코믹하다’, ‘다른 장르의 연기엔 취약하다’, ‘너무 빠르게 주연급으로 도약한 게 아닌가’, ‘생각보다 흥행에 취약한 배우다’같은 질문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송새벽이란 배우는 흥미로움과 식상함 사이에서 고전 중이었다.

<도희야>는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던 송새벽에게 새로운 해소의 출구였다. <도희야>의 ‘용하’는 외딴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조달해오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남자다. 그가 행사하는 폭력은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선 마을의 질서와 경제를 유지해줄 일종의 필요악이다. 암암리에 묵인된 파괴적 성향에서 죽어나는 것은 용하의 의붓딸이자 약자인 도희(김새론)뿐이다. 딸을 향한 매질이 그저 ‘술에 취해서 한’ 아버지의 체벌로 용인되는 가학적인 공간. 좌천되어온 파출소장 영남(배두나)은 도희의 보호자를 자청하며, 그의 폭력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용하는 도희와 영남이 형성하는 이 유대에 끊임없이 긴장과 방해와 폭력을 행사하는 나쁜 남자다. “용하를 완벽한 악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배우들은 매 작품 인물에 대해 연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도망간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고 홀어머니와 살며 마을의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는 남자. 그가 가진 복잡한 마음을 눈빛 하나하나에 담으려 노력했다.” 온전히 용하가 되기 위해 송새벽은 아무렇게나 머리를 기르고, 무릎이 나온 낡은 바지를 입고, 트레이드 마크인 뿔테 안경을 벗어던졌다. 그을린 얼굴을 위해 유독 하얀 피부를 수차례 태닝했고, 용하의 욕설과 매질을 ‘괴롭게’ 익혀나갔다. 허술해 보여서 동정표를 주고 싶은 기존의 송새벽을 ‘말살’하는 대신 거칠고 강한 남성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정주리 감독은 이 ‘변화’를 부추긴 촉매자 역할을 해냈다. “용하 역을 캐스팅하지 못해 애먹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조감독님이 새벽씨가 출연한 연극 <해무>의 스틸컷을 보여주더라. 옆모습을 보고 바로 이 사람이다 싶었다.” 중국인 밀입국자 스물다섯명이 수장된 이른바 ‘제7태창호 사건’을 극화한 <해무>는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송새벽의 대표작으로 2007년부터 무려 4회차나 공연한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 그를 발탁한 계기가 된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 송새벽은 우리가 아는 대중적이고 코믹한 모습이 아닌 비극의 한가운데 있는 젊은 선원 ‘동식’을 연기한다. 그는 이 작품을 두고 “나랑 같이 거의 살았던 역할”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도희야>는 이렇게 상업영화에서 전개한 송새벽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연극배우 시절 표현했던 어두운 면모를 끌어내는 색다른 작업이었다. “작품은 의심할 여지없이 좋았지만 어린아이를 손찌검해야 하는 악한 근성을 과연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라는 송새벽. 정주리 감독은 용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를 설득했고, 마침내 관객에게 송새벽의 다른 지점을 인지시켜주었다. 촬영하는 동안 정주리 감독은 바쁜 촬영 일정 중에도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새벽씨가 슛 들어가기 전에 용하로 변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라고 전한다. “겉으로 순한 이미지지만, 저런 짐을 지고 있자면 인간 송새벽은 참 힘들겠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우의 무서움이 느껴지더라.” 그럼에도 송새벽은 이번 작품을 두고 섣불리 ‘변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시점엔 이런 성향의 작품을 하자라는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그런 다짐이야말로 배우에겐 위험한 생각이다. 작품은 늘 개별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이 좋으니 하는 거지 그외의 이유는 없다.” 유독 코믹한 모습이 부각된 전작들에 대해서도 그는 결국 “호흡의 문제일 뿐” 다른 연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번 작품은 코믹의 호흡이 없을 뿐이다. 출연 장면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이 뭐가 다른가 싶다. 한 장면에 나오든 전체에 나오든 극 안에서 완성된 연기를 보여준다는 원칙이 있을 뿐이다. 내가 주연을 하는 걸 두고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자세는 항상 같았다. 사실 난 연극 무대에선 주연도 많이 했고. (웃음)”

장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본인은 이렇게 애써 의미를 지우려고 하지만 <도희야>는 객관적으로 볼 때 분명 송새벽 필모그래피의 새로운 지표가 될 작품이다. 캐스팅을 앞둔 한 감독은 “송새벽씨와 한번 꼭 작업하고 싶다”며 인터뷰 때 언질해줄 것을 부탁했다. “코믹하지 않은 그의 말간 얼굴을 탐내고 있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충무로에서 지금 배우 송새벽이 가진 좌표가 가늠이 된다. 일단 다음 작품은 이미 촬영을 마친 가족 코믹극 <덕수리 오형제>(개봉 미정)다. 혹시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는 <해무>에서 역할은 없냐고 하자 “안 그래도 <설국열차>(2013) 시사 때 감독님이 “새벽, 미안해!” 하시더라. 이거 말 잘해야 하는데. (웃음) 사람이니 나도 뭐 바람은 있겠지. 그런데 내가 제작자라도 박유천 같은 풋풋한 신인을 캐스팅하지 않겠나.”

magic hour

지리멸렬한 일상의 표정

송새벽의 ‘다름’이 확연히 드러난 건 대중적이지 않은 숨은 영화에서였다. 이난 감독의 <평범한 날들>(2010)에서 그는 실적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무능한 보험설계사 ‘한철’을 연기한다. 특유의 웃음기를 거두어들인 표정이야말로 제작자와 감독이 찾고자 하는 ‘또 다른’ 송새벽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난 감독은 “웃긴 사람 같지 않아서” 송새벽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나는 <방자전>을 보지 않고 그를 캐스팅했다. 만나보니 차분하고 느릿한 평소의 말투가 오히려 송새벽이라는 사람을 대변해주는 것 같더라. 철학을 전공해서 특히나 그런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송새벽 스스로도 <평범한 날들>의 한철에게 “내 모습이 배어 있다”고 말한다. 이난 감독은 “제작자들이나 감독들이 송새벽을 좀더 다양하게 활용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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