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속도를 지배하라
2014-06-10
글 : 송경원
<끝까지 간다>의 쾌감 전략에 관하여

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서가 아니다. 보면 안다. <끝까지 간다>는 한동안 과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영화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빠르고 깔끔한 전개를 통해 장르영화의 기본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주의를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대로 웃길 줄 안다. 이 영화는 진짜다.

간만에 물건이 나왔다. 극장 문을 나설 때 남는 것이 없는 가벼운 영화라고 아쉬워 할 수도 있다. 익숙한 소재와 구성으로 버무린 기획영화 중 한편으로 치부한다 해도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끝까지 간다>는 작가적 메시지보다는 관람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설계된 기획영화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다고 느낄 관객은 감히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끝까지 간다>는 재미있다. 그거면 족하고 사실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여느 기획영화에 비해 한번 더 눈길이 가는 건 그 깔끔하고 선명한 만듦새와 욕심 부리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수준 이상의 재미를,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상업적 재미로 치부해버릴 수 없을 만한 어떤 가능성이 엿보인다. 최근 필요 이상으로 의미 부여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여타 상업영화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끝까지 간다>는 거추장스런 미사여구를 최대한 제거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관객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왜, 어떤 지점에서 재미있는지를 좀더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끝까지 간다>가 관객을 즐겁게 하는 방식에서 최근 상업영화들이 잊어버린 기본과 장르영화의 미덕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스펜스와 유머를 향한 전력질주

<끝까지 간다>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밝은 햇살 아래까지 여운을 가지고 나오는 영화가 있는 반면 철저히 불 꺼진 스크린 앞에서 통제되는 영화가 있다. ‘지금 여기’ 극장 안에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주는 게 장르영화의 본령이라면 <끝까지 간다>는 철저한 기획 장르영화다. 어찌됐건 극장 안에서 웃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 <끝까지 간다>에 대해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보는 동안의 재미’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영화는 의미의 연쇄에 앞서 장면마다 관객을 어떻게 붙들지를 연구한다.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보다 짧은 호흡으로 매 시퀀스에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재미라는 게 매우 주관적인 가치인지라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모호할 수 있다. <끝까지 간다>가 전달하려는 재미는 단순명료하다. 서스펜스와 유머, 딱 두 가지다. 나머지는 모두 이를 위한 부속물로 생각해도 좋다. 이 선명한 목적의식은 의외의 효과를 자아낸다. 바로 이 영화 최대의 장점이기도 한 속도와 호흡이다.

<끝까지 간다>는 제목 그대로 끝까지 달려가는 전개가 돋보이는 영화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이유가 제아무리 빨라도 달리다 보면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의 속도감이란 단순히 이야기를 급격히 전개시킨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면을 빠르게 전환시키거나 편집이 빠른 것과도 약간 다른 문제다. 물론 <끝까지 간다>는 총 111분 2232컷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빠른 호흡의 영화다. 다만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물리적인 속도감의 문제가 아니라 시종일관 앞으로 치달아간다고 느끼게끔 하는 감각의 지배다. 모름지기 ‘빠르다’는 주관적인 감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요령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완급 조절에 있다. <끝까지 간다>는 웃음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정교하게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방식을 통해 이 필수적인 리듬을 구축, 유지한다. 긴장된다 싶으면 웃기고 한참 웃다보면 어느새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펼쳐지는 사이 관객은 상황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간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끝까지 간다>는 엄밀히 말해 연속된 흐름 안에서 관객과 함께하는 영화가 아니다. 차라리 대여섯편의 잘 짜인 단편영화를 절묘하게 이어붙인 쪽에 가깝다. 매 시퀀스는 그것으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지닌다고 할 정도로 꼼꼼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 매 시퀀스가 전력질주를 했다가 한 타임 쉬어가고 다시 전력질주하기를 반복한다. 당연히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속도감의 또 다른 비결이 여기에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당연히 각 시퀀스의 연결이다. 그리고 김성훈 감독은 오직 캐릭터, 그러니까 고건수(이선균)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따라가는 것을 통해 각기 결이 다른 시퀀스들(거의 단편영화들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을 이어붙인다. 요컨대 독립된 시퀀스들이 서스펜스를 빼곡히 구축하기 위해 튼튼한 바닥공사가 필요한데, <끝까지 간다>의 경우는 공감 가는 캐릭터가 마법의 열쇠다.

큰 악당과 작은 악당의 흥미로운 대결

<끝까지 간다>의 동력은 적당히 부패한 형사의 자잘한 악행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발생한다. 형사 고건수는, 아니 고건수가 속해 있는 강력반은 상납금도 적당히 받아먹고 소소한 부도덕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소위 ‘인간미 있는’ 집단이다. 법보다는 내 식구가 중요하고 어느 정도 보신도 생각하지만 의리도 간간이 챙기는 이들의 특징이라면 딱히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의로워야 할 경찰이 ‘적당히’ 부패했다는 것이 캐릭터의 아이러니이자 사건을 촉진시키는 동력이 된다. 악행도 저지르고 사는 형사에게 연이어 찾아오는 불행, 한순간에 선을 넘어버린 행동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가면서 사건은 멈추지 않고, 정확히는 멈추지 못하고 내달려 나간다. 여기서 유희의 포인트는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매 장면 어디를 ‘끝’으로 설정하는가 하는 점이 이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설계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다.

<끝까지 간다>의 각 장면의 끝은 매번 느닷없지만 쉽고 납득 가능하다. 이 단순한 반응 과정은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일차적으로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으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후 느닷없이 장면을 마감함에도 결국 ‘그럼 그렇지’ 하는 납득으로 이어지는데 이게 이 영화가 주는 재미의 핵심이다. 시퀀스마다 정교하게 설계된 서스펜스가 장르영화로서의 첫 번째 미덕이라면 그 긴장감의 근간을 받치고 있는 건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다. 생각해보면 적당히 부패한 형사를 중심에 놓고 유머와 통제 불능의 상황을 겹쳐나가는 방식은 한국영화에서 이미 익숙한 전개다. 정으로 살고 소소한 악행에 둔감한 캐릭터들도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익숙하다는 말은 종종 식상함으로 오해되며 부정적인 어감을 남기는데 기실 그것만큼 직접적인 소통의 통로도 드물다. 장르영화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때 이 영화의 익숙함은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느껴진다. 관객은 큰 맥락에서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매 장면 꼬인 상황들이 주는 긴장감을 게임을 접하는 감각으로 즐길 수 있다. 상황 자체가 주는 유머러스함과 함께 말이다.

애초에 <끝까지 간다>의 제목은 ‘무덤까지 간다’였다. 원래 이야기는 형사 고건수가 무덤까지 가는 것에서 끝난다. 그러던 것이 박창민(조진웅)이라는 새로운 인물과 그가 끌고 들어온 사건과 엮이면서 좀더 달려나간다. 고건수는 ‘적당히’ 부패한 형사인데 부정한 것에 정도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용인 가능한 선에서 소소한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던 고건수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내면서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끝까지 간다>는 큰 악당이 작은 악당을 몰아붙이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익숙한 고건수에 반해 그를 괴롭히는 박창민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장르적으로 익숙한 기능적 캐릭터다. 박창민의 악행에 얽혀 들어가버린 순간 고건수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때문에 후반부 박창민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시점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색깔로 바뀐다.

박창민의 등장과 더불어 영화는 땀내 나는 액션과 추격전이 더해지지만 사실 <끝까지 간다>의 진짜 재미는 전반부에 담겨 있다. 고건수의 당황스러움에 초점을 맞춘 전반부의 쫄깃함이야말로 소소한 악행이 주는 현실감과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건수가 진지하게 땀을 흘릴수록, 곤란해할수록 지켜보는 이들은 재미나다. 고건수가 처한 상황은 무척 심각함에도 우리가 ‘웃기다’는 감각을 유지한 채로 그의 발버둥과 불행을 관람할 수 있는 건 그가 보여줬던 악행이 우리에게도 용인되는 수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건수가 이리저리 치이는 장면들은 쉽게 휘발되고 말 한없이 가벼운 것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순간순간은 더 재미나다. <끝까지 간다> 최고의 미덕은 판을 벌이는 대신 고건수라는 캐릭터 하나에 집중해서 ‘끝까지’ 간 뚝심에 있다. 큰 음모보다는 작은 악행이 더 정감가고 반전 시나리오보다는 장면의 서스펜스가 쫀득하게 뇌리에 남는다.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더 힘든 법, <끝까지 간다>는 덜어낼수록 재미는 선명해진다는 장르영화의 오래된 즐거움을 떠올리게 한다.

웃기고도 슬프게 빛나는 순간들

<끝까지 간다>는 흥미로운 단편영화가 다발로 묶여 있는, 맛있는 장편영화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각종 ‘웃픈’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과 배우들에게 들어본다.

상황1. 엄마 옆의 외간 남자
교통사고를 낸 고건수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결국 어머니의 관에 시체를 숨겨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이자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성훈 감독 역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라고 꼽은, 실질적인 영화의 출발이자 끝이었다. 애초에 영화는 시체가 무덤으로 가는 상황까지를 다루려고 했으나 장편 상업영화다운 액션과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박창민이라는 인물이 새롭게 투입되며 장편에 어울리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나중에 고건수의 여동생이 “엄마 옆에 외간 남자가 누워 있대. 엄마 사귀는 사람 있었나봐”라는 대사로 다시 한번 웃픈 상황을 만들어준다.

상황2.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박창민의 등장. 영화 중반에야 처음으로 나오는 만큼 강한 인상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원체 무시무시한 캐릭터인지라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박창민 역의 조진웅은 많은 아이디어를 내며 이 장면에 매달렸다. 카메라, 조명, 대사 등 바꿀 수 있는 건 모두 바꿔보면서 수십컷을 찍은 끝에 비로소 원하던 분위기의 장면이 탄생했다고 한다.

상황3. 참을 수 없는 개그 본능
억지로 과장된 상황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이른바 생활개그다. 별거 아닌 대사도 이들이 하면 코믹하다. 특히 최 형사 역의 정만식은 그야말로 ‘한국스러운’ 형사의 결정판을 보여주며 동료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았다고. 첫 등장한 박창민이 고건수를 흠씬 두들겨 패자 그를 말리며 터져나오는 “우리 은인이잖아”라는 대사는 사실 별거 아님에도 그의 입을 거치자 빵 터지는 개그가 된다. “개그를 참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는 조진웅의 말이 십분 이해가 간다.

상황4. 나 19층 옥상에 왜 매달린 거지?
고건수가 쫓아오는 박창민을 피해 방에서 베란다로 점프하는 장면은 놀랍게도 CG가 아니다. 실제 아파트 19층에서 이선균이 직접 와이어를 달고 촬영했다. 촬영 전에는 걱정도 많았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좀더 팍팍 당겨보라”고 다그치기 바빴다고. 조진웅은 “그런 게 직업병”이라는 말로 선배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촬영을 마치고 나니 클로즈업을 따기 위해 똑같은 세트를 만들어둔 게 아닌가. “처음부터 여기서 찍어도 될 걸 나 도대체 왜 매달린 거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유쾌하게 웃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아마 다시 촬영한다고 해도 서슴없이 19층에 난간에 매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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