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덜어내고 기울이니 보이더라
2014-06-10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 인터뷰

무려 7년 반 만이다.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흥행 실패는 김성훈 감독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차기작을 못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동안 방황도 했다. 하나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데뷔작의 참패는 스스로를 되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선물했다. 김성훈 감독은 신작 <끝까지 간다>에서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장르와 소재를 들고 정면 승부한다. 욕심을 덜어내고 하고 싶은 걸 찾아낸 그간의 과정을 들어봤다.

-호평 일색이다. 뿌듯할 것 같다.
=민낯을 잘 못 보는 편이라 그런지 볼 때마다 화끈거린다. 깨끗하게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닦지 못한 지문이 묻은 게 계속 보여서. 현장은 늘 행복했지만 55회차를 찍는 동안에 돌아와서 반성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이걸 내가 찍었어?’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은 보이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다. 덤덤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재촬영 거의 없이, 심지어 일정도 당겨서 찍었다고 들었는데.
=정해진 회차를 넘기면 안 되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잘 못 찍으면서 제작비까지 넘겨버리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단 들고 나가 연습 삼아라도 무조건 다 찍고 오자는 마음이었다. 기본적으로 일정을 따르고 나중에 정 아쉬우면 떼를 써서라도 재촬영하려고 했다. 나중에 편집실에서 아쉬운 장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찍으면 더 나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작 이후 7년 만이다. <끝까지 간다>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당시엔 이것밖에 안 됐나 싶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빈틈만 계속 보여서 힘들었다. 그땐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걸 먼저 의식했던 것 같다. 첫 작품이 유작이 될까봐 두려웠고 혹시라도 기회가 다시 온다면 뭘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제일 먼저 한 건 내가 뭘 좋아하는지부터 되돌아보는 거였다. 걷어내고 걷어내다 보니 솔직한 마음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08년쯤 알모도바르 감독 <귀향>을 보다가 한 장면에 꽂혔다. 딸이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강가에 시체를 묻는 장면이었는데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이 되게 신경이 쓰이더라. 걸릴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들키지 않을까 생각하며 상황을 계속 그려갔다. 들키지 않도록 무덤을 만들자, 그런 상황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다. 원래는 시신을 은닉하는 것만으로 100분을 달려보고 싶었는데 그것만 가지곤 설득이 안 되더라. 여러 요구와 아이디어를 수렴해 최종적으론 지금의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워낙 주인공 한명에 집중해서 가는 영화라 어쩔 수 없이 삭제된 장면도 많았을 것 같다.
=조진웅씨가 연기한 박창민이란 인물을 설명해주는 장면들이 빠진 게 내심 아쉽다. 가령 교통사고 현장에서 생존자를 발견하고도 귀찮아서 ‘생존자 없음’이라고 보고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창민의 냉혹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결국엔 뺐는데 그런 장면들이 적지 않다. 좀더 설명하고 싶었지만 속도를 위해 과감히 뺐다. 덜어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유난히 현장에서의 호흡이 좋았다던데, 원래 현장에서 스탭들의 의견까지 두루 듣는 편인가.
=그럴 리가. 원래 현장은 지옥이다. 감독 한명만 신난다. (웃음) 첫 영화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외면하지 않았나 싶어 이번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오십보백보라지만 오십보는 죽고 백보는 살더라. 예전에는 남 이야기를 듣다가 산으로 갈까 두려웠는데 어느 순간 그게 쓸데없는 고민이란 걸 깨달았다. 다들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오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걸 발견해준다. 예전에 내가 스탭 할 때도 ‘된다 안 된다 저렇게 따질 시간에 그냥 한번 해보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다행히 <끝까지 간다>는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아이디어를 내서 또 찍는, 함께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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