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최진혁] <신의 한 수>
2014-07-08
글 : 이주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최진혁

여성관객 세명이 극장을 빠져나오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최진혁, 몸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더라.” “<구가의 서>에 나왔던 애지?” “<구가의 서>에서 진짜 멋있었지.” 여릿여릿한 꽃미남과보다 상남자 스타일에 더 끌리는 나이대, 그러니까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막 <신의 한 수>를 보고 나와 영화의 여운을 곱씹던 참이다. 앞서 걸어가던 이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으며 생각했다. ‘최진혁, 영화배우로도 뜨겠구나!’ 2006년 <서바이벌 스타오디션>에서 우승하며 배우가 됐으니 벌써 데뷔 8년차. <파스타> <로맨스가 필요해> <내 딸 꽃님이> 때의 최진혁을 기억하는 눈 밝은 이들도 있겠으나, ‘어제 뭐 봤어?’류의 대화에 최진혁이란 이름이 끼어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구가의 서> 이후부터다. 그리고 <상속자들> <응급남녀>에 연거푸 출연하며 최진혁은 TV에서만큼은 꽤 친숙한 배우가 되었다.

영화는 이번이 고작 두 번째다. “<구가의 서>를 하기 전까지는 찾아주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영화 오디션도 최종까지 갔다가 막판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경우가 꽤 있었다.” 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는 듯, 첫 영화 <음치 클리닉>에서의 미약한 존재감을 만회하고 싶다는 듯, 최진혁은 <신의 한 수>에서 에너지를 한껏 발산한다.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이시영, 안길강, 이도경 등 날고 기는 배우들 사이에서 도드라졌다는 게 중요하다. 프로 바둑기사 태석(정우성)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내기 도박판의 비정한 악당 살수(이범수). 최직혁은 살수네 패거리 중 한명인 선수를 연기한다. 살수가 악랄함의 끝을 보여주는 악역이라면 선수는 “젠틀한 이미지에 격식도 다 차리는 건달” 캐릭터다. 젠틀함은 새롭지 않지만 건달은 낯설다. 최진혁은 정의롭고 반듯하고 듬직한 보디가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야멸치게 상대를 공격하는 악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악에 받쳐 바둑판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내기 바둑꾼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무서워 보인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최진혁의 눈빛엔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다. 웃으면 금세 순해 보이는 인상의 주름이 얼굴에 퍼지지만 날렵한 콧날과 눈매, 홀쭉한 볼은 매정한 악역으로 손색없는 마스크를 완성한다. 그동안 ‘선한 역할’만 맡았던 게 신기할 정도다. “악역에 대한 욕구가 컸다. 희한하게 한번도 악역 제의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잘 알지 않나. 내 안엔 악랄한 구석, 악마 같은 구석이 분명 존재한다.” 누구의 마음속엔들 지킬과 하이드가 공존하지 않을까. 최진혁의 하이드는 주로 승부욕의 화신으로 등장한다고 했다. <신의 한 수>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태석과 선수의 냉동창고 액션 신. 최진혁은 웃통을 벗고 정우성과 일대일로 맞붙는다. 자칫 정우성의 원맨쇼가 될 수도 있었을 이 장면에서 최진혁은 정우성에 뒤지지 않는 탄탄한 몸을 과시하며 두 캐릭터의 대결을 팽팽하게 이끈다. “깡이라고 하잖나. 그런 게 좀 있다. 우성이 형님 보면서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는 거 되게 싫어한다. 꼬맹이 때는 운동하다가 지면 울고 그랬다. 요즘도 일할 땐 그 성격이 나오는 것 같다.” <신의 한 수> 최봉률 무술감독은 최진혁의 액션 연기에 감히 점수를 매긴다면 “9점을 주겠다”고 말했다. “노력파다. 액션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없어서 액션에 대한 감이 몸에 배어 있진 않았지만 몸에 익을 때까지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힘이 너무 세서 현장에선 ‘몸에 힘 빼라’라는 주문을 많이 했다. 힘 못 뺀 것 때문에 1점 감점.”

‘승부근성’ 없이는, ‘강한 멘털’ 없이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최진혁은 일찍 깨쳤다. 스무살, 가수가 되기 위해 목포에서 서울로 상경했다가 ‘가수 할 얼굴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소속사의 권유로 김태호라는 본명을 내걸고 <서바이벌 스타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배우가 되겠다고 각지에서 모여든 청춘들을 모두 제치고 최진혁이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악으로 깡으로 덤볐기 때문이다. “그때도 내 안의 악마가 튀어나왔는데, 친한 후배가 3주차에 떨어지는 걸 보고 이게 현실이구나 싶으면서 오기가 발동했다. 그때부터 매일 7~8시간씩 미션으로 주어지는 드라마의 장면들을 후벼팠다. 드라마 <첫사랑>의 한 장면이 주어졌을 땐 한밤중에 최수종 선배님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친분이라곤 전혀 없었는데 무작정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그러곤 우승했다. (웃음)”

시작은 순탄했으나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갖기까지 최진혁은 꽤 오래 갈팡질팡했다. “성격이나 성향도 이 업계와 맞지 않는 것 같고, ‘내가 진짜 연기를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구가의 서> 찍으면서 정말 많이 했다. 구월령이라는 좋은 캐릭터로도 반응이 없으면 연기를 그만둬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 이것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실은 연기는 1, 2회 출연으로 사라지고 마는 캐릭터였던 지리산 신수 구월령을 부활시켰다. “배우로서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구가의 서>에서 보여준 애절한 연기는 김은숙 작가의 눈에도 띄어 <상속자들> 출연으로 이어졌다. “정말 잘할 수 있는데 그동안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그게 바로 <응급남녀>의 오창민이다.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했다 원수지간이 돼 돌아선 이혼 남녀가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대 의사로 만나 또다시 티격태격하는 이야기. 메디컬 드라마이자 로맨틱 코미디인 <응급남녀>에서 최진혁은 드라마, 멜로, 코미디 등 이종 장르를 가로지르며 훨훨 날아다녔다. 7월2일 첫 방송된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선 자수성가한 젊은 디자이너이자 현대판 키다리 아저씨를 연기한다. 이로써 필모그래피에 로맨틱 코미디 한편이 더 추가됐다.

“다른 작품을 참고하면 자꾸 따라하게 되는 것 같아 배우로서 창피한 느낌이 든다”, “스스로 재밌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의 최진혁은 희로애락을 다 겪어본 데뷔 8년차 배우처럼 보인다. 반면 “안성기, 정우성, 이범수, 김인권 등 어렸을 때부터 팬이었던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거나 “내가 어떻게 이 사람들과 같이 서 있는 거지? 이 자리가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할 땐 갓 데뷔한 신인 같다. “가수 했으면 쪽박 찼을 거라던 점쟁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젠 연기가 “좋아서 하는 업”이 됐다. “요즘 같아선 평생 연기하고 싶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는 없지만.” 올해 혹은 내년,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진혁은 군 입대로 인해 잠시 연기에 쉼표를 찍어야 한다. 확실한 건 쉼표를 찍기 전까지 최진혁이 쉼 없이 달릴 거란 사실이다. 사각의 브라운관 혹은 스크린에서 ‘선수 입장’ 이라는 외침을 몇번은 더 듣게 될 테니 너무 아쉬워하진 말자.

<구가의 서>

magic hour

영생보다 사랑

“사람이 되고 싶어졌네.” <구가의 서> 1화의 마지막 장면. 인간 여인을 마음에 담은 지리산 수호령 구월령은 불로불사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기로 한다. 그깟 여자 때문에, 그깟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특권을 내다버리는 구월령은 역시 구미호였다.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홀려버린 구미호. 태어나 한명의 여인밖에 사랑한 적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저 대사를 내뱉는 최진혁은 그때부터 만인의 수호신이 되었다. 최진혁은 인간과 구미호, 두 모습을 연기하는 게 어려워 <트와일라잇> 시리즈까지 다 챙겨 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뱀파이어 에드워드 컬렌(로버트 패틴슨) 못지않게 멋진, 도포 입은 남자 구미호의 탄생을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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