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해무 속에 욕망이 갇혀 있네
2014-08-14
글 : 주성철
심성보 감독의 <해무>, 뚝심 있게 드라마를 완성하다

어쩌다 앞서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함께 마치 ‘여름 블록버스터’처럼 한데 묶이기도 했지만, <해무>는 ‘청불’ 영화라는 점에서 다르다(<군도: 민란의 시대>와 <명량>은 ‘15세 이상 관람가’이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전체 관람가’이다).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한 여섯명의 선원이 밀항자들을 실어나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해무>는, 꽉 닫힌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지긋지긋한 욕망의 드라마다. 더불어 기획 및 제작을 맡은 봉준호 감독과 <살인의 추억>(2003)의 시나리오를 쓴 심성보 감독이 이룬 조합은 제작 초기부터 화제였다. 드디어 베일을 벗은 <해무>의 이모저모, 그리고 장고 끝에 장편 데뷔작을 만든 심성보 감독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해무>는 극단 연우무대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인 연극 <해무>를 바탕으로 완성됐다.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날 보러 와요>, <왕의 남자>(2005)의 원작인 <이>(爾) 같은 걸출한 작품들도 모두 연우무대로부터 배출됐다(심성보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썼고 그 연출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김민정 작가의 오리지널 희곡 자체가 워낙 탄탄하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옮겨낸 힘은 전적으로 심성보 감독의 솜씨”라고 말한다. 실제로 <해무>의 인상적인 지점들은, 연극에서 어두운 막과 막 사이 사운드로만 처리된 순간을 영상화한 대목들이다. 가령 영화에서 수십명의 조선족 밀항자들이 전진호로 옮겨 타는 긴박한 순간이 연극에서는 그저 어두운 무대 위 사운드로만 처리됐었다. 이를 위해 국내 최초로 수조 세트 안에 두개의 짐벌(gimbal, 구조물을 떠 있거나 움직이게 하면서 수평을 유지하는 장치)을 넣고 그 위에 배 두척을 올려 촬영했다. 특수 짐벌 세트를 물에 넣어 촬영한 최초의 시도다.

더불어 ‘해무’라는 핵심적인 설정 또한 그렇다. 이미 연극을 본 사람들일지라도 그 해무가 어떻게 표현됐을지 궁금할 것이다. 심성보 감독은 “해무는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안개 속에서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표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은 바로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IMF 이후다. “선원들이 밀항자들을 대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1997년 IMF 이후는 우리가 너희들보다 잘 산다는 환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때다. 1990년대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차별했다. 16년이 지난 지금, 그들도 우리처럼 역시나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일 뿐”이라는 것이 감독의 얘기다. 어쩌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심성보의 <해무>는 한국 사회의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며 대구를 이루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한때 여수 바다를 주름잡던 ‘전진호’는 더이상 만선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감척사업 대상이 된다. 낡은 배는 고장나기 일쑤다. 결국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린 선장 철주(김윤석)는 고기 잡는 일 대신 조선족을 실어나르는 밀항 일에 손대게 된다. 선장을 필두로 배에 숨어사는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김상호), 돈이 세상에서 최고인 거친 성격의 롤러수 경구(유승목), 언제 어디서든 욕구에 충실한 막무가내 선원 창욱(이희준), 이제 막 뱃일을 시작한 순박한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까지 여섯명의 선원은 비밀스럽게 출항한다. 드디어 어둠이 깔린 바다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밀항자들이 배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동식은 그 와중에 바다에 빠진 홍매(한예리)를 구해주면서 가까워진다. 홍매를 몰래 기관실에 숨겨주기까지 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깊어진다. 그렇게 수십명이 한배에 올라탄 운명이 된다. 그러다 해경 감시선이 접근할 때면 밀항자들은 고기를 담아두는 거대한 어창에 들어가 위기를 모면하곤 한다.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해무’가 몰려오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살인의 추억>에서 시작된 인연

<해무>는 <살인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려졌다시피 심성보 감독은 연우무대의 연극 원작 <날 보러 와요>를 <살인의 추억>으로 재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봉준호 감독은 “당시 심성보 감독이 아니었다면 <살인의 추억>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경기도 화성 일대를 돌며 현장조사를 한 것은 물론 현장에서 연출부, 스크립터로 참여해 후반작업 끝까지 나와 함께했다”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해무> 역시 연우무대의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이번에는 각본은 물론 직접 연출까지 맡게 됐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기획, 제작으로 그를 도왔다. 10년의 세월을 두고 무대의 연극을 스크린으로 성공적으로 옮긴 그 ‘각본의 추억’은 <해무>에도 깊이 새겨졌다. 봉준호 감독과는 <마더>(2009)와 <설국열차>(2013)를 함께한 ‘추억’이 있는 홍경표 촬영감독 또한 <해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장비 등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촬영해야만 했다. “바다 색깔은 일조량과도 연관이 있어 각도나 색감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게다가 바다 위에서는 촬영준비를 위한 셋업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카메라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해 힘든 부분이 많았다.”

<살인의 추억> 당시에도 발로 뛰어다녔던 심성보 감독은 이번에도 부지런히 취재를 다녔다. 당연히 ‘밀항’을 소재로 한 작품이기에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었다. “영화 속 안강망 어선은 국가에서 그 숫자를 관리하는데 지역적으로 보면 군산, 목포, 여수에만 있다. 말하자면 ‘어디에서 벌어지는 일인지, 누가 그걸 하는지’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접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시나리오에 도움을 주신 분들 중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신 분들이 꽤 많다”라는 게 감독의 얘기다. 직접 배에 올라타 그 구조를 익히고 사진을 찍을 때는 해경의 도움으로 졸지에 ‘해경홍보책자를 쓰는 작가’라고 소개되어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해무>에서 다방아가씨를 내쫓는 선장의 모습에서 보듯, 아직도 미신이 남아 있는 분위기 속에서 아무나 배에 올라타게 하는 것은 ‘재수 옴붙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선 내부의 구조를 치밀하게 재현하는 데는 그런 수고가 필요했다. 그에 더해 이하준 미술감독은 실제로 구입한 배를 안강망 어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엔진 자체는 소품처럼 제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폐선이 되는 배를 분리하는 고물상에서 엔진을 빌려와 기관실 세트 내에 실제 엔진을 배치하고 거기에 따른 요소들을 디자인했다.

<해무>의 전진호와 해무는 지나치게 상징적이다. 여섯 선원들과 밀항자들이 부대끼는 전진호는 말 그대로 삶의 축소판 같은 무대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해무는 감추고 살아온 욕망의 은신처가 된다. 그런 폐쇄공포증과 음산한 안개의 이미지는 영화사적으로도 수없이 영화화된 소재이자, 연출자로서는 언제나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그 안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선장과 막내 선원 동식의 대립이다. 특히 선장에게 전진호는 하나뿐인 집이나 마찬가지다. 조업으로 인해 가끔씩 들르는 집에 갔더니 아내는 바람이 났다. 동네에서 좀 모자란 녀석과 정사를 벌이고 있으니 “저런 놈하고 하고 싶냐”라고 핀잔을 주지만, 그 ‘불륜의 발각’이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밀항을 통해 돈을 벌어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에게는 오직 생명과도 같은 배 한척뿐이다. 밀항에 나선 것은 배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래야 자기도 산다. 어쩌면 포기를 모르는 선장을 연기한 김윤석의 모습에서 <황해>(2010)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서 이미 목격했던 뒤틀린 리더의 이미지를 다시 읽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연상 가능한 반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는 ‘역시 달리 떠오르는 배우가 없다’는 독백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어촌계를 찾아 안경을 내려쓰고 서류를 읽어내려가는 모습에서 앞서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그 또한 <해무>를 통해 그 이미지로부터 멋진 작별을 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

<해무>가 1990년대 끝자락의 한국 사회를 항해하는 영화라면, 캐릭터들의 구성이 세대별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배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전진호에 숨어 사는 기관장 완호는 사실상 ‘세상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불법 입국하려는 조선족의 운명과 별다를 바 없는 신세라고나 할까. 또한 선장의 미래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 순박한 동식은 또 어떤가. 매 순간 돈과 욕정만 밝히는 경구와 창욱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고 상상하면 지나친 것일까. 거의 집착하다시피 홍매를 향한 조건 없는 구애의 모습을 보이는 동식의 모습과, 또 다른 조선족 여인을 유혹하는 경구의 욕정은 종이 한장 차이라 여겨진다. 잠깐이나마 (동식은 형들과 다를 것이라는) 착시효과를 주는 것은 동식을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박유천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동식’과 ‘박유천’ 사이에서의 애매모호한 긴장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홍매의 눈에 그들은 그저 똑같은 남자들일 것이다. 그녀가 동식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악다구니 같은 그 배에서 살아남고자 함이었다. 그처럼 <해무>는 저마다 감추고 싶고, 때론 외면하고 싶은 어둡고 비루한 욕망의 전시장이다. 신인감독이라는 표현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심성보 감독은 바로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굳이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삼아서가 아니라, 이처럼 하나의 테마로 팽팽하게 차 있는 밀도 높은 드라마를 본 것이 무척 오랜만인 것 같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