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 예술,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바르고’, ‘아름답고’, ‘명확하게’ 사고하기를 강요받아서일까? 에릭 로메르(1920~2010), 크리스 마커(1921~2012), 알랭 레네(1922~2014) 같은 누벨바그의 주요 멤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새 영화를 더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박탈감보다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건 이들이 젊은 감독으로 왕성히 활동했던 1950~80년대의 자유, 반항, 전복, 일탈, 도전 등이 역사의 저편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일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뿐 아니라 공식 석상에서 가끔 사고(?)까지 치는 장 뤽 고다르나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설치미술, 사진, 극영화,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아녜스 바르다를 보면 적잖은 위안을 얻는다.
지난 7월30일부터 파리의 MK2 보부르, 르플레 메디시스 극장에서는 아녜스 바르다가 1960년과80년대 당시 미국에서 연출한 다섯 작품을 디지털 버전으로 복원해 상영하고 있다. 1967년 당시, 바르다는 <로슈포르의 연인들>(1967)의 대성공으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에 띈 남편 자크 드미의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미국에 갔다. 드미가 대규모 할리우드의 시스템에 적응하려고 진땀을 빼는 동안, 바르다는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번 상영작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화가로 활동하면서 히피 문화에 흠뻑 빠져 살고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친삼촌, 장 바르다에 관한 인물다큐멘터리 <얀코 삼촌>(1967), 백인 경찰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된 블랙팬서의 리더 휴이 뉴튼 석방 운동을 기록한 <블랙팬서>(1968), 케네디 암살 당시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으려 안간힘을 쓰는 여성감독과 두 남자배우와 한 여배우의 기묘한 동거를 다룬 <라이언의 사랑>(1968), LA의 벽화를 통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벽, 벽들>(1980), 남편과 헤어진 프랑스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머물 곳을 찾아 거리의 이곳저곳을 헤매는 여정을 다룬 모큐멘터리 <다큐멍테르>(1981)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