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화문에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한다고 한다. 바로 일베충들이 풍기는 악취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는 와중에, 일베충들은 닭을 시켜먹는 등 온갖 쓰레기 같은 짓으로 그들을 욕보이고 있다. 온라인에서 자기들끼리 누가 더 쓰레기 같은지, 누가 더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지 배틀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으니까. 하지만 일베충들이 온라인을 빠져나와 오프라인에서 악취를 풍겨대니 정상적인 사람들의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쓰레기들은 역시 쓰레기통에 모여 있을 때가 가장 쾌적하다. 고로 일베 사이트는 우리 사회를 쾌적하게 만드는 쓰레기통이며, 절대 없어져서는 안 될 사회의 안전장치다.
주인공보다 사랑스러운 쓰레기통 캐릭터
영화에도 쓰레기통이 있다. 영화에서는 모든 캐릭터와 상황들이 제각각의 논리와 이유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 쉽지 극을 짜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동기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개연성이 떨어져 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오류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때 시나리오작가들은 극의 모든 오류를 최대한 잘 모아서 하나의 캐릭터나 혹은 하나의 상황, 어쨌든 한곳에 잘 모아두려고 하는데, 이것(곳)을 업계에서는 쓰레기통이라 부른다. 일베들이 온라인 쓰레기통에 모여 있어야 사회 전체가 아름답듯이, 영화에서도 오류들은 쓰레기통에 모여 있어야 극 전체가 안정되어 보인다.
그럼 어떤 영화에 어떤 쓰레기통이 있는지 한번 볼까나. 먼저 주지해야 할 건 완벽한 시나리오란 없다는 거다. 완벽해 보이는 시나리오가 있을 뿐. 완벽해 보이는 데에는 얼마나 오류들을 잘 정리해놓았는가 혹은 잘 감추어놓았는가가 관건이다. 시나리오 좋기로 소문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경우 쓰레기통마저도 완벽해 보일 만큼 깔끔하다. 예를 들어 픽사의 <인크레더블>의 쓰레기통은 슈트디자이너 에드나다. 그녀는 한두번 등장만으로 인크레더블 가족의 모험을 추동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류투성이, 즉 쓰레기통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온 가족의 슈트를 미리 만들어놓질 않나, 우연히 슈트에 추적장치를 붙여놔 남편의 위치를 알려주질 않나,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를 부추겨놓고는 금세 태도를 바꿔 “(외도는 하지 않았으니) 위기에 빠진 남편을 어서 구하라”라며 전의를 부추기질 않나, 여하튼 “안정된 극 진행을 위해” 온갖 비약과 비논리를 끌어안은 캐릭터다.
하지만 쓰레기통이라고 해서 일베충들처럼 역겨울까? 전혀. 오히려 에드나는 인크레더블 가족의 슈퍼파워보다 더 파워풀한 매력을 자랑한다. 정신없는 드립, 종잡을 수 없는 변덕, 과장된 제스처와 허세. (브래드 버드 감독이 직접 녹음한 목소리 짱드심) 이처럼 쓰레기통 조연들은 과도하게 매력적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류를 감추기보단 외려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취한다. 즉, 관객은 오류인 줄 알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인 그 쓰레기통에 웃고 반하고 빠져들다보니 오류인 줄도 모르고, 아니 오류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하는 전략이랄까. 로맨틱 코미디에서 공식처럼 등장하는 괴짜 조연들이 모두 이런 전략을 취한 유형들이다. 이를테면 <노팅 힐>의 괴짜 조연 스파이크,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시끌벅적한 게이 친구들 등은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보다 더 사랑스러운 쓰레기통들이다. <델마와 루이스>의 매력적인 악동 브래드 피트도 쓰레기통인데, 아예 섹시함으로 들이대는 경우라 하겠다. 물론 그 매력을 애먼 데 설정했다가 오히려 오류들이 드러나는 안 좋은 경우도 있는데, 스릴러영화 <무언의 목격자>의 슬랩스틱 커플이 그러하다. 스릴러 장르에 어울리지도 않은 슬랩스틱을 하고 있자니 분위기만 깨지고 (수사망이 겨우 몸빵으로 좁혀온다는 사실에) 극의 긴장감(tension)마저 흐트러진다.
쓰레기통 캐릭터들은 쓰레기통적 상황을 불사하며 자신의 기능을 다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경쟁자가 갑자기 차에 치이는 상황이 그런 것이다. 주인공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할지 말지를 두고 갈등하는데, “마침” 경쟁자가 차에 치이는 바람에 주인공은 “죄책감 없이” 경쟁자를 제칠 수 있게 된다. 물론 경쟁자의 부주의함이라든지 바쁜 일정 속에 노출된 교통사고의 위험성 등이 영화 내내 깔려 있었겠지만, 갑자기 차에 치이는 상황은 이미 영화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뜬금없다. 하지만 쓰레기통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어차피 비논리로 논리를 만드는 게 그들의 기능 아니던가.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이 계획한 대로 관객은 쓰레기통의 “교통사고”를 수긍하고 즐기고, 얼른 주인공의 감정과 극 전개에 집중하고 싶어진다. (우리 일베충들도 차에 치어 사망하며 사회를 쾌적하게 했으면 좋으련만. 휴우.)
정상적인 이야기와 의도적으로 비정상적인 캐릭터
영화에는 쓰레기통만 있는 게 아니다. 아예 쓰레기장 영화도 있다. 온갖 비논리와 비정상성을 대놓고 매력포인트로 드러내는 영화들인데, 패러디 코미디 영화들이나 요즘 유행인 엽기행각 다큐영화들이 그런 것들이다. 뭐, 정리 안 된 게 매력이라니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영화들을 많이 보다보면 지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ZAZ사단의 영화들이 여전히 매력적인 건 그냥 나만의 노스탤지어인가?) 하지만 쓰레기를 미학으로 승화시킨 쓰레기장 영화의 거장이 몇분 계신데, 그분들 중 으뜸은 단연 존 워터스 감독이라 할 것이다.
물론 존 워터스의 쓰레기 미학은 위에 언급했던 쓰레기/쓰레기통 개념과 조금 다르다. 오히려 존 워터스는 시나리오의 완결성에는 관심이 없다. 존 워터스의 관심사는 오로지 얼마나/어떻게 관객을 구역질나게 할 것인가이다. 즉, 쓰레기의 난삽함보다는 쓰레기의 악취에 집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베충들은 존 워터스 영화에 관심도 없고, 혹 본다 해도 쓰레기 영화라며 무시할 게 뻔하다. 자기들이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쯧쯧.)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악취는 웃음을 유발한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히듯, “불편하게 하면 관객은 웃는다”. 여기에 존 워터스 영화의 신비함이 있다. 구역질은 나는데, 보고는 싶다. 저 쓰레기 같은 캐릭터들이 영화 끝에는 도대체 어떻게 되나 궁금하기까지 하다.
이유는 구역질이 더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극의 전개에 이미 몰입됐기 때문이다. 존 워터스 영화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이야기가 의외로 정합적이고 차지고 균형감이 있다. (존 워터스 영화에 이런 긍정적인 단어들을 갖다붙이니 이상해 보이지만) 바로 이런 의외로 정상적인 이야기와 의도적으로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의 오묘한 밸런스가 존 워터스 쓰레기 미학의 신비로움이다. 그 극점은 누가 뭐라 해도 <암컷 소동> (Female Trouble)인데, 시대풍자적인 엽기 캐릭터들과 당시 냉전시대의 산물인 시대순응적 TV드라마 서사와의 조화는 역겨우면서 동시에 아름답기까지 하다. (물론 일베충들은 이 영화를 보고도 쓰레기 영화라고 무시하겠지만 말이다. 자기들이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쯧쯧.)
존 워터스는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악취미가 있고 나쁜 악취미가 있다. 나쁜 악취미는 외면받을 것이고, 좋은 악취미는 사랑받을 것이다. 둘의 차이점은 유머감각이다.” 유머감각,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바로 그것. 그래서 시나리오작가들은 멋진 쓰레기통을 만들기 위해 유머를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일 거다. 일베충들이 하는 짓이 유머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베충들은 게으르다. 그들은 공부하지 않는다. 웃기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일단 지껄인다. “넌 단식을 하냐? 난 폭식을 한다.” 얼마나 빈약한 발상인가? “넌 약자냐? 난 강자다.” 빈약한데 약자를 깔아뭉개는 치졸함까지 지녔으니 악취가 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이 악취를 사회에서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이다. 제거하자고? 제거는 불가능하다.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비정상성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러니 일베 사이트 폐쇄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자. 일베 사이트가 폐쇄된다면 또 다른 일베 사이트가 생길 것이다. 문제는 일베충들이 온라인 쓰레기통에서 튀어나와 오프라인을 활보하는 것이니 대안은 한 가지 뿐, 일베 사이트를 확장하는 것이다. 쓰레기통을 쓰레기장으로 확장하자. 정부가 일베 사이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서 일베충들이 더 넓고 아늑한 곳에서 잘 놀 수 있게 하자. 그래야 일베충들이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누가 더 쓰레기 같은지, 누구의 악취가 더 역겨운지 배틀이나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