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짧은 장르소설과 학습물이 주를 이루던 한국의 청소년 출판시장에 새로운 빛이 비쳤다. 이 땅에도 바야흐로 YA, 영 어덜트(Young Adult) 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2∼18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YA 문학은 사춘기의 경험과 성장을 주로 다룬다. 장르는 판타지와 SF, 미스터리, 로맨스, 모험소설 등을 망라하는데, 중요한 것은 시기이다. <트와일라잇>의 제작자 에릭 페이그는 YA 문학을 “삶의 모든 것이 중요해 보이는 특정 시기에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그 시절, 우리 앞엔 얼마나 많은 문이 열려 있었던가. 그리하여 YA 문학은 어른들의 이야기보다 무모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아이들은 단 한번뿐인 사랑을 지키고(<아이 엠 넘버 포>), 주저 없이 생명을 바치고(<헝거게임>), 자유를 찾아 목숨을 베팅한다(<메이즈 러너>). 그땐 그럴 수 있었다, 사랑만이, 자유만이 전부였으므로. 펭귄 랜덤하우스의 ‘펭귄 영리더스 그룹’ 대표 돈 와이스버그의 말처럼 “YA 문학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결정적이었던 삶의 순간으로 다가간다”. 모든 이가 간직한, 삶의 매 순간이 절박했던 성장기의 기억을 품고 YA 문학은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08년, 앨리스 세볼드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러블리 본즈>는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살해당한 소녀의 영혼이 남겨진 이들을 지켜본다는 스토리가 그 소녀 또래 아이들에겐 너무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라인드 시사회 결과는 달랐다. 그 영화에 반응을 보인 건 10대 소녀들이었다. 마음을 할퀴고 가는 폭력과 죽음, 거대한 블랙홀과도 같은 부재, 그 구멍을 끌어안고 지속되는 삶. 10대라고 하여 봐주지 않는 그 모든 생의 잔인함에 소녀들은 공감했고, 깜짝 놀란 제작사는 마케팅 타깃을 수정했다. 출판사 하퍼콜린스의 10대 브랜드 담당 알렉산드라 볼저가 말한 것처럼 “이제 금기는 없다. YA(Young Adult)는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영 어덜트(YA) 문학은 몇년 전부터 새로운, 그리고 거대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볼저는 “지금 10대 시장은 성인 출판 시장과 훨씬 비슷해졌다.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포함해서”라고 말했다. 할리우드에서 2013년 상반기에 제작 또는 기획 중이었던 YA 소설 원작 영화는 60여편. 그 대부분이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SF와 판타지, 액션영화였으니 YA 문학시장은 거의 출판만으로 운영되었던 3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르네상스는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을까, 15년 전이다. 그해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던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출판되었다. 출판•영화 관계자 대부분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YA 문학 붐의 방아쇠가 되었고, <트와일라잇>과 <헝거게임>이 그 붐을 엔터테인먼트 시장으로 확대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메이즈 러너>와 <다이버전트> 등이 성공하기 전까지 숱한 YA 소설원작 영화들이 냉혹한 전장에서 스러져갔다. <뷰티풀 크리처스>와 <섀도우 헌터스>, <퍼시 잭슨> 시리즈…. 나름대로 잘 팔렸던 소설들이 광대한 시장을 두고도 날개를 펼치지 못한 건 애초 그 날개가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진정 성공한 YA 소설은 어른과 10대 남성을 독자로 거느린다.
출판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YA 소설 구매자의 55%가 18살 이상의 성인이었다. 실제로 <트와일라잇> 시리즈 독자의 상당수가 성인 여성이다(<트와일라잇> <가십 걸>의 독자들이 더 센 걸 찾다가 전설의 에로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옮겨갔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남자도 필요했다. 그것이 <트와일라잇>보다 <헝거게임>이 성공한 이유였다. <헝거게임>은 첫 번째 영화가 개봉한 이후 판매부수 5천만부를 넘겼는데, 이는 나이와 성별의 제한이 있다면 기록할 수 없는 부수였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문학 담당 알리시아 고든은 “<트와일라잇>보다 높게 도약하려면 젊은 남성 관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다 어둡고 액션이 강한 이야기를 찾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YA 소설이 초현실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문학 시장에서 일종의 현상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는 작가 존 그린은 그저 그랬던 시절, 유튜브 영상을 이용한 획기적인 자체 마케팅을 시도했던 새로운 세대의 작가지만, 그의 소설 <알래스카를 위하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는 전통적인 서사를 지닌 드라마에 가깝다. 다른 차원의 판타지나 아직 오지 않은 디스토피아의 미래로 도약하지 않더라도, 10대의 나날은 어른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드라마틱하고 너저분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존 그린은 말했다. “나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비애를 움켜잡는 첫 순간, 10대들이 겪는 격렬함을 사랑한다.” 처음 겪는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죽음도 고통도 절망도 첫 순간이 있고, 그건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다섯살배기 꼬마도 죽음과 싸워야만 한다.
이제 YA는 세대를 초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도 YA 소설을 찾는다. 그들과 더불어 서점의 YA 서가는 아동물 코너를 떠나 독립적인 자리를 얻었다. 펭귄 랜덤하우스의 YA 담당 사장 벤 슈랭크는 “문화 시장에서는 실제 나이만큼 자기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30~50대 독자도 <헝거게임>의 캣니스와 함께 활을 당기고 <메이즈 러너>의 토마스와 함께 미로를 질주한다. YA 소설과 영화는 모험이 사라진 세상에서 뜨겁게 피를 달구고, 모두가 적이자 동지인 복잡한 세상에서 선과 악의 명쾌한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YA 문학 붐은 슈랭크의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를 위해 좋은 책을 쓰는 작가가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다.” 그 어떤 세상을 만나더라도, 훌륭한 이야기는 불멸의 운명을 지닌다.
영화로 기획 중인 영 어덜트 소설
가장 기대되는 영화는 팀 버튼의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다. 기형 인간들을 담은 사진을 단서로 숨겨진 할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빅 피쉬>를 떠올리게 한다. 비밀에 싸인 이야기들도 있다. 신데렐라를 디스토피아 SF 버전으로 각색한 <신더>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인데, 판권이 팔렸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착취당하는 아이들의 잔혹한 SF <스타터스> 또한 피터 잭슨이 각색 중이라는 소문만 돌고 있다. 이 밖에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사회에서 사랑을 발견한 소녀의 이야기인 <매치드>, 뱀파이어도 모자라 천사와 악마가 등장해 불멸의 로맨스를 논하는 <추락천사>, 계급 차별과 로맨스를 절묘하게 엮은 <레전드>(좀비도 사랑을 하는데 나는 뭐냐며 수많은 싱글을 비탄에 빠뜨렸던 <웜 바디스>의 조너선 레빈 감독) 등이 3, 4년 안으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