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작은 관계들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붕괴 <현기증>
2014-11-05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출산을 앞둔 큰딸 영희(도지원)와 의사 사위 상호(송일국), 수능을 앞둔 둘째딸 꽃잎(김소은)은 어머니 영임(김영애)과 함께 전원주택에 기거한다. 자꾸만 깜빡하며 치매의 전조증상을 보이는 엄마, 출산 후에도 생계를 위해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고 격무에 시달리는 큰딸, 고아로 자라나 가족과의 경험에 서툰 사위, 수능을 앞두고 있지만 학교의 일진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둘째. 가족 각자가 품은 균열들은 조금씩 벌어지다가 우발적 사건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현기증>은 위선과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광기와 몰락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돈구 감독은 데뷔작 <가시꽃>(2012)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작은 관계들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붕괴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중요한 시선은 증상이 심해져가는 엄마 영임의 망상에 맞춰져 있다. 김영애의 열연은 <깊은밤 갑자기>(감독 고영남, 1981)에서 보여주었던 섬뜩한 망상에 빠진 여성상을 상기시킨다. 아이의 죽음, 과거 남편의 불륜, 딸들의 무심함 속에서 치매에 빠져가는 엄마의 망상이 착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 본성에서 나온 것인지 관객은 판단하기 힘들다. 간간이 등장하는 단서들을 붙잡아본다면, <현기증>은 사소한 악의들이 쌓여 도달한 불안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영화이자 성악설적인 인륜의 세계에 대한 무심한 조망이다. 어디서부터 악몽이었을까? 우리는 파멸의 순수한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어렵다. 감독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핵심을 끝까지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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