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 정통한 이과생이 아니라면, <인터스텔라>는 한번의 관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우주 탐험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이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알기 쉬운 말로 전달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행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진다. 뇌과학자이자 블랙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정재승 박사에게 <인터스텔라>를 보기 전 미리 알면 좋을 네 가지 상식들에 대해 들었다.
1 웜홀
웜홀은 <인터스텔라>에서 시공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다. 정재승 박사에 따르면, 흔히 학계에서 말하는 웜홀은 멀리 떨어진 두 공간에 중력을 가해 공간을 휘어지게 만든 다음,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통로를 뜻한다. 웜홀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영화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킵 손의 논문은 그 가능성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했다고 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원래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로 알려져 있던 웜홀의 개념에서 화이트홀의 존재를 제외했다는 것이다. “물리학계에서 화이트홀의 존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 밝혀짐에 따라 영화의 감수를 맡은 킵 손 또한 화이트홀에 대한 언급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계의 최신 버전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잘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머피의 법칙
일이 갈수록 꼬여만 가는 상황을 흔히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인터스텔라>의 머피 또한 아버지인 쿠퍼에게 왜 불길한 징조를 뜻하는 단어로 자신의 이름을 지었냐고 불평한다. 하지만 주인공 쿠퍼의 딸이 머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점은 이 영화에서 일종의 장치처럼 느껴진다고 정재승 박사는 말한다. “비행기 기술자였던 로버트 머피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언제나 염두에 두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머피의 법칙’의 본래 뜻이었다. 웜홀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이 의미하는 것처럼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웜홀은 존재할 수 있는 무엇이다. 머피라는 이름은 그러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느껴진다.”
3 5차원의 존재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5차원의 존재들이 언급되는 순간은 <인터스텔라>의 명장면 중 하나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건, 아직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3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정재승 박사는 말한다. “최근의 과학자들은 5차원, 11차원, 21차원 등 3차원을 넘어서는 다양한 차원이 존재하고, 그 차원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겨우 3차원의 시공간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라는 가설을 얘기한다. 그것을 ‘초끈이론’이라 부른다.”
4 타스
타스는 외형부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의 모노리스의 영향이 느껴지는 인공지능형 로봇이다. 정재승 박사는 타스의 생김새와 기능이 현실세계에서 그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도우미 로봇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보통 타스처럼 인간을 돕는 컴패니언 로봇들은 방향성이 지극히 예측 가능하고 손가락이 발달되어 있다. 무언가를 집는 기능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스는 방향성도 제멋대로이고 손도 무딘 모양이다. 차라리 인간이 나서서 일하는 게 편할 것 같은 모습이랄까. (웃음) 웜홀을 만들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시대에 적합한 로봇은 아닌 것 같고, 모노리스에 헌사하는 놀란의 오마주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