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영화들을 기억하리라, 이 영화들로 기억되리라 (2)
2014-12-30
글 : 정한석
글 : 김성훈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사진 : 오계옥
사진 : 손홍주 (사진부장)
<씨네21> 기자들과 필진이 2014년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을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감독

장률

올해의 영화감독은 장률이다. 그가 <경주>로 시도한 모험적인 변화 그리고 그가 <경주>로 성취한 미적 수준을, 많은 이들이 존중했고 지지했다. “그는 어디에서 영화를 찍어도 경계인만이 가진 거리감을 확보할 줄 아는 감독이다. 그 거리감을 통해 그는 일상의 공간에서 삶과 죽음과 욕망과 초월을 아무렇지 않게 접속시키며 현실 속의 인물을 관념의 세계로 침잠시켰다가 다시 비루한 욕망으로 아무렇지 않게 던져버린다”(김지미), “우리는 홍상수 이후에 훌륭한 배우와 저비용으로 작업하는 철학자를 또 한명 갖게 됐다”(송형국)는 평가들이 대표적이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그동안 수차례 베스트5 안에 들었지만, 한국영화 시스템으로의 안착이라는 점에서 <경주>는 감독 자신에게 더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한 세 작품을 찍어봤다. 다큐로는 <풍경>, 극영화로는 <이리>와 <경주>. 하지만 <이리>는 <중경>과 묶여 있는 절반이니 한국에서 완전하게 찍은 극영화는 <경주>다. 이제야 한국영화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싶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게 뭔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웃음)”

전과는 다소 다른 영화를 만들게 된 변화의 동기에 대해 물었을 때에 장률 감독은 확고했다. “나는 창작이나 뭐나 좀 옛날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이상하게 그 감독이 이전에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내 성격이나 몸 안에 <두만강>이나 <망종> 같은 것도 있지만 <경주> 같은 게 많다. 창작자는 자기의 지평선을 넓혀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의 이 모습, 저 모습, 다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창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말만 안 듣는 게 아니다. 자기 말도 안 듣는다.”

혹시라도 경직될까봐 스스로의 말조차 듣지 않으려는 이 창작자에게 아직 차기작은 미지의 대상이다. “내년 노인영화제에서 단편을 하나 연출해달라고 해서 그걸 준비 중이다. 다른 건 아직 없다. 사람이 좀 성숙하면 더 고민하고 더 좋은 작품 준비하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그쪽이 좀 아니다. 닥치는 대로 한다. 한국영화에 이제 들어왔고 <씨네21>이 문 열어준 거다, 하고 생각하겠다.” 장률 감독이 그의 데뷔작 <당시>를 만들었을 때 그건 중국영화였다. 지금 장률은 뛰어난 한국영화를 만드는 가장 뛰어난 감독들 중 한 사람이다.

올해의 남자배우

<자유의 언덕> 가세 료

올해의 남자배우 부문에 외국인 배우가 선정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여자배우 부문에서는 <만추>의 탕웨이가 선정된 적이 있다). <자유의 언덕>의 지지자들이 상당수 올해의 남자배우로 가세 료를 택했다. <자유의 언덕>의 특별함이 곧 가세 료의 특별함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허문영의 선정 근거가 대표적이다. “<자유의 언덕>을 두 번째 볼 때, 모리가 하는 말을 그냥 믿을 수 있다고 느꼈다. 가세 료는 실감나게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역이라는 허구의 존재를 신뢰하도록 만든다. 연기력이 아니라 인간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짐작한다. 특별한, 아주 특별한 배우다.” 김혜리는 말한다. “가세 료가 홍상수 영화를 가리켜 썼다는 ‘해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약돌’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해변을 걷다가 발견한 완벽한 형태의 조약돌 같다.” 가세 료는 이렇게 소감을 밝혀왔다. “선정 소식을 접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홍상수 감독님, 전원사의 (김)초희 PD님, (이)재한씨, 그리고 <자유의 언덕>의 정말 멋진 스탭들, 아름다운 동료배우들, 그뿐만 아니라 <씨네21> 여러분들,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영화를 보러와주신 관객,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인생을 살면서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께 이해받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홍 감독님을 만나고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제게 있어 보물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홍 감독님은 참된 예술가이며, 그는 시네마의 빛이고 희망입니다.”

올해의 여자배우

<한공주> <카트> 천우희

“정말요? 올해의 여자배우와 올해의 신인 여배우 모두 저라고요?” 수상 소식을 들은 천우희만큼이나 <씨네21>도 깜짝 놀랐다. 한 배우가 두 부문 모두, 그것도 2위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싹쓸이한 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공주>의 연기가 어려운 것은 가장 나쁜 상황에서 조금만 나쁜 것처럼 살아가는 인물을 표현해야 했다는 점이다. 천우희는 연기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일을 맡아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성취가 크다.”(송형국) 올해의 여자배우로 천우희를 꼽은 필자들의 반응은 앞의 언급과 비슷했다. 현재 <뷰티 인사이드>를 촬영하고 있는 천우희는 12월16일 촬영이 끝나자마자 수상 소감부터 전했다. “상 하나 받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두 부문에 선정돼서 너무 기쁘고, 감사드린다. (웃음)”

“<한공주>를 찍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천우희는 <한공주>를 작업할 때 다졌던 각오를 기억하고 있다. “주변 사람 모두 힘들지 않을까 걱정해주셨다. 촬영 들어갈 때 힘들더라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자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 사건을 겪은 사람을 생각하면 연기하는 내가 엄살 피우거나 힘들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달이라는 빡빡한 촬영일정 속에서 춥고, 잠도 못 잤지만 한신, 한신 마음을 다 바쳐서 찍었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천우희가 열연했던 한공주의 얼굴은 올해 한국영화의 얼굴 중 하나”(김태훈)가 되었다.

올해 천우희는 <한공주> 개봉을 시작으로 <카트> <손님> <곡성> <뷰티 인사이드>를 연달아 촬영하며 데뷔 이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내년 개봉할 <손님> <곡성> <뷰티 인사이드>에서 맡은 역할은 저마다 달라도 “비밀스러운 사연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고 한다. “내가 뭔가 비밀스러운가보다. (웃음)” 아직 보여줄 게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는 보물이다.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

<해무> 박유천

그 어느 부문보다도, 그 어느 해보다도 경쟁이 치열했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의 활약과 흡입력 강한 신예들의 등장에 따른 예고된 수순이었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배우는 <해무>로 영화 데뷔를 알린 박유천이다. 영화에서 그는 김윤식, 문성근 등 “관록 있는 선배들과 시너지를 내며 완연한 배우로 거듭났다”(김수)는 평을 받았다. 박유천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만족스럽다. <해무>를 택한 게 옳은 선택이었음을 느낀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의 뒤를 바짝 쫓은 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거인>의 최우식과 독립영화계에 강렬한 스파이크를 날린 <족구왕>의 안재홍이다. 최우식은 “비굴함과 지질함을 이처럼 처절하게 담아내는 미소년의 얼굴이라니”(주성철), 안재홍은 “올해의 독립영화 주인공들 중 가장 긍정적인 인물을 연기했고 놀랍게도 그렇다고 믿게 만들었다”(듀나)는 평이다. “기존 남성 스타들과 중첩되지 않는 영역의 매력을 가진”(김혜리) <변호인>의 임시완과 “자연스럽고 당당한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준”(이지현) <카트>의 도경수도 한국영화의 기대주다.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

<한공주> <카트> 천우희

엄밀히 얘기하면 <한공주>가 천우희의 데뷔작은 아니다.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써니>(2011)에서 맡았던 ‘본드걸’ 상미와 <마더>에서 연기했던 ‘진태(진구) 여자친구’를 기억할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 대부분 천우희를 올해의 신인 여배우로 꼽은 건 “올해의 인상적인 순간엔 항상 그녀가 있었”(김수)고, “<한공주>의 천우희만큼 존재감이 컸던 배우도 없었기 때문”(듀나)일 것이다. 천우희는 “<마더> <써니> 같은 작품에 이미 출연했던 까닭에 신인이냐, 아니냐는 구분은 각자가 판단하기 나름인 것 같다. 중요한 건 신인의 마음을 가지고 매 작품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생에 한번밖에 받을 수 없는 상이라 너무 기쁘다. (웃음)”고 소감을 말했다. <한공주>만큼이나 <카트>를 작업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고 한다. “혼자 찍는 장면이 많았던 <한공주>와 달리 <카트>는 항상 선배님들과 어울렸다. 다수의 힘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는 앞으로 “물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그릇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게 천우희의 바람이다.

올해의 신인 감독

<한공주> 이수진

<한공주>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영화는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성범죄, 자살이라는 까다로운 소재에서 출발해 “드라마 속 사건에 대해 사려 깊은 판단을 내린 후에 자신의 판단에 적합한 미장센을 구축해”(이지현)냈다. 특히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상관하도록 한 형식이 압도적인데, 그 상관은 대화라기보다 치열한 투쟁이며, 이로써 관객은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품게 됐다”(송형국)는 평이다. 자연스레 그 공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밀어붙이는 힘”(김태훈)을 보여준 이수진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는 “관객이 많이 접했을 소재라 작품 시작 전에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이 사건 앞에서) 제3자인 우리는 어떠한가’에 초점을 맞췄다”며 <한공주>의 시작의 순간을 되짚었다. 그의 다음 이야기는 무얼일까. “7년 전에 준비하던 작품인데 다시 구상하고 있다. 여러 명의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다. 근데 또 모른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를 찾아와 만나게 될지도. 어쨌든 <한공주>와는 많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웃음)”

올해의 제작자

<카트> 심재명

명필름 심재명 대표에게 2014년은 “영화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해”였다. <관능의 법칙> <카트> <화장> 등 무려 세편의 영화를 연달아 제작했다. 아직 극장 개봉하지 않은 <화장>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가 한편도 없었음에도 그는 <변호인>을 제작한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와 박빙의 승부 끝에 올해의 제작자로 선정됐다. 그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최초의 상업영화를 기획했다는 용기와 의지를 높이 샀기 때문”(황진미)이다. 심재명 대표는 “상업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뤘다는 점을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제작비 회수를 잘 못해 아쉽다. 도움을 주신 많은 개인 투자자들과 스탭, 배우들에게 감사하고, 송구스럽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명필름 창립 20주년인 내년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래 영화인을 육성, 발굴하는 명필름영화학교가 개교한다. 그런 점에서 내년은 명필름의 새로운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의 시나리오

<끝까지 간다> 김성훈

“영화를 볼 때마다 눈을 감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직선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다보니 페이스 조절이 필요했던 장면이 있다. 이번 수상이 부족한 점을 채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은 자찬 대신 시나리오를 다듬었던 오랜 시간을 곱씹었다. 감독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다>는 “잘 짜인 시나리오의 정석”(김지미)이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스릴러로서 선악 판단의 당위에 기대지 않고 장면과 시퀀스 단위의 순수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빼어나다. 공간, 소품, 행인을 두루 활용한 몇몇 장면은 초단편영화로 따로 보아도 재미있을 것이다.”(김혜리) 이같은 언급은 자극적인 소재와 캐릭터에 의존한 채 이야기를 무리하게 벌이는 최근 스릴러영화의 경향을 고려할 때 아낌없는 찬사다. 현재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든 작업의 즐거움을 쏟아낼 만한 이야기를 쓰고, 만들고 싶다. 참, 상금은 없나? (웃음)”

올해의 촬영감독

<군도: 민란의 시대> 최찬민

“처음 받는 상이다. 오래 버티길 잘했다. (웃음)” 현재 중국영화 <비밀의 가족> 촬영 때문에 대만에 있는 최찬민 촬영감독은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군도>의 스타일은 촬영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김태훈) 영화 속 다양한 액션 스타일을 한 이야기 안에 담아내면서 이제껏 보지 못한 사극액션영화 스타일을 보여준 최찬민 촬영감독에 대한 상찬이다. “드라마가 있는 액션을 찍는 게 목표였다. 기술적으로는 시간대별 해의 움직임과 광량을 가장 신경 썼다.” 규모가 큰 영화였던 만큼 추억도 많다. “특히 군도들이 매복해 조윤을 기다리는 고갯길 시퀀스가 가장 힘들었다. 전체 일정 중에서 스탭들이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누구도 포기하거나 쉽게 찍으려고 하지 않았다.” <낙타(들)>로 데뷔한 뒤 <그림자살인>(2009), <용의자X>(2011) 등 여러 작품을 촬영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갈수록 기본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그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최찬민 촬영감독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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