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영화들을 기억하리라, 이 영화들로 기억되리라 (1)
2014-12-30
글 : 씨네21 취재팀
<씨네21> 기자들과 필진이 2014년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을 선정했습니다
<자유의 언덕>
<보이후드>

한해를 마감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1년 동안 자신을 웃기고 울린 영화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올해의 나머지 빈칸들도 저절로 채워질 것이다. <씨네21>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을 선정했다. 31명의 평론가와 기자들이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베스트5를 뽑고 짧은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어떤 영화들이 과대평가, 과소평가를 받았는지도 함께 살펴봤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국영화 베스트5는 물론, 해외영화 베스트 명단도 함께 싣는다. 올해의 영화인은 감독, 주연 남녀배우, 신인 남녀배우, 신인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촬영감독 등 총 9개 부문에서 선정했다. 2014년 당신과 함께한 영화들, 어쩌면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를 영화들이 여기에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빈칸을 메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씨네21>이 부치는 선물이다.

2014 한국영화 베스트5

올해의 한국영화 1

<자유의 언덕>

올해의 한국영화 1위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이다. 당연하고도 놀랍다. 올해도 홍상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홍상수는 여전히 관객에게 영감을 던져준다. 그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리듬과 변주는 몇번이고 다시 보아도 새롭다.”(이지현) 그는 적어도 지난 몇년간 한번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외적인 조건에 상관없이 여전히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아직 젊고 푸르다.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의 걸음이 결코 멈추지도, 제자리를 답보하지도 않음을 증명한다. <북촌방향>처럼 시간의 배열이 뒤엉켜 있지만 어렵고 복잡하진 않다. 관객을 피안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모리(가세 료)의 뒷모습은 일상의 번잡함을 일깨우는 영화적 화답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과 현재의 욕망과 미래의 소망으로 버텨지는 모리의 이상한 시간. 그 시간은 분열적이고 그래서 피로하고 종종 섬뜩한데, 신기하게도 맑고 절실하다.”(남다은) 그렇게 무작위로 펼쳐지는 모리의 시간은 프리즘처럼 우리의 일상을 되새긴다. “흩어진 편지를 차곡차곡 추려보면 홍상수 영화들의 비밀이 풀릴 것만 같다”(우혜경), “흘러가는 시간만큼 부질없는 진심들,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인생은 무엇이 될까”(김지미), “일기가 곧 편지가 되고, 편지가 일기가 될 때 발생하는 정직한 따스함. 사라져버린 한통의 편지가 이야기에 가져다주는 해방. 결핍과 실망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따뜻하게 조언하는 영화”(김혜리). 홍상수의 영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 그래서, 그래도, 그러므로 올해도 홍상수다.

올해의 한국영화 2

<경주>

근소한 차이였다. 그런 만큼 홍상수와 장률을 비교하는 평도 많았다. 결론적으로 “장률은 홍상수가 아니다. 장률은 첫 영화 이후 꾸준히 여성과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들이 부딪치는 경계와 벽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다. <경주>는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엿보이지만 가볍고 유쾌한 농담의 방식임에도 그 끈질긴 질문만은 계속되고 있다(변성찬)”. 장률의 지지자들을 대표할 만한 평이다. 얼핏 자유로운 에세이에 가까운 분위기가 홍상수의 세계와 맞닿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두 감독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영화적 화두를 풀어왔다. “무덤 위에서 바라본 가련한 인간 개미들의 꿈틀대는 마음들. 소극적이지만 간절한 꿈틀거림으로 지탱된 경주에서의 아련하고 안쓰러운 하룻밤”(남다은)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 공간에 대한 탁월한 묘사도 장률의 영화답다. “이야기보다, 인물보다, 공간이 좋았다”(송효정), “죽음과 삶을 관통하는 욕망의 흐름을 고도 ‘경주’의 능선과 아우라 안에서 탁월하게 포착해냈다”(김지미), “공간의 느낌, 배경에 대한 사유가 압도적이다”(이현경)라는 찬사는 이 영화가 여전히 장률의 공기 속에 있음을 증명한다.

올해의 한국영화 3

<한공주>

“올해 한국영화의 최대 수확 중 하나다.”(김태훈)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한공주>의 해외영화제 수상 소식은 국내뉴스 지면의 단골손님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가 이룬 성취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피해자가 온전히 피해자로 남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통찰”(김수), “피해자가 비난받고 죄인처럼 쫓겨다니는 성폭행 사건의 역설을 피해자의 심정에서 느껴보게 만드는 영화”(황진미)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사회적인 차원의 멜로드라마. 화려하게 해체된 실제의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이지현),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서로를 상관하도록 한 형식은 두고두고 연구할 만한 구조적인 성취다. 시대가 추악할수록 더 그렇다”(송형국)는 평처럼 전통적이고 익숙한 방식을 활용하되 “엄청난 집요함과 밀도”(듀나)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영리함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감독의 밝은 눈으로 성취해낸 캐스팅과 섬세한 연기 연출”(정한석)로 올해의 여자배우 천우희를 발굴했다. 아파서 더 외면할 수 없는 힘 있는 영화.

올해의 한국영화 4

<끝까지 간다>

끝까지 재미있다. “현재 충무로 환경이나 관습에 타협하지 않고도 솜씨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순도 높은 상업영화”(송형국)라는 평에는 일말의 과장도 없다. 탄탄한 구성과 적절한 템포의 조절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이 영화는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최대한 제거하고 기본에 충실하다. “한눈팔지 않는 집중력”(송효정), “스릴러 장르가 추구해야 할 모든 쾌감과 서사적 모티브를 전부 살린다”(이현경)라는 평가처럼 장르 본연의 쾌감에 충실할 때 결과물도 좋다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증명한다. 특히 한눈팔지 않고 끝까지 몰아붙이는 속도감이 일품이다. “100미터 달리듯 1000미터를” 전력질주하는데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서스펜스의 연쇄가 사소한 구멍 같은 건 금방 메워버리고 관객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이후 욕심을 덜어내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와 소재를 찾아 7년 반을 고심했다는 김성훈 감독의 뚝심이 빛난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유머 코드와 이선균, 조진웅 두 주연배우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한국 장르영화가 아직 활력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신호다.

올해의 한국영화 5

<도희야>

익숙한 듯 새롭다. 가정폭력, 외딴 마을에서의 편견, 불법 이주노동자, 동성애, 성차별 등 <도희야>가 건드리는 문제의 결들은 간단치 않다. 이에 정주리 감독은 해답 대신 질문으로 마감한다. 영화를 지지한 평자들도 공통적으로 이 점을 언급했다. “아동 학대를 캠페인성 구호로 동원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와 그 아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윤리의식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김지미), “학대받는 아이, 차별당하는 소수자를 이야기하되 접고 들어가지 않는 영화.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떠안고 관객에게 당신의 판단은 무엇이냐고 묻는다”(김혜리). <도희야>는 여러 갈등을 서사적으로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영화다. “도발적인 소재 선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능숙하게 제어해낸 리듬감이 돋보인다”(이지현), “한국영화 속에서 익숙한 재료를 가지고 그 의미와 폭을 넓혔다”(듀나)는 점도 주요한 지지 근거다. 특히 “여성감독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의 갈등을, 여성적인 호흡으로 그린 영화. 섬세하고 맑다”(한창호)라는 평가는 이 영화가 지닌 의미를 새삼 환기시킨다. 제작사의 기호에 맞춰 기획된 여성영화가 적지 않은 요즘,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을 이야기하는 제대로 된 여성영화다.

<철의 꿈>

천만 관객 시대의 아쉬움

한국영화 총평과 6~10위까지의 한국영화들

올해는 1위 <자유의 언덕>과 2위 <경주>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자유의 언덕>은 여러 평자가 고루 언급했고, <경주>는 <자유의 언덕>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는 적었지만 많은 평자들이 1위로 꼽으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한공주>는 4, 5, 6위와는 상당한 격차를 두며 안정적으로 3위를 차지했다. 4위 <끝까지 간다>와 5위 <도희야>, 그리고 6위에 오른 <철의 꿈>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 근소한 차이로 순위가 갈렸다.

6위에 오른 박경근 감독의 <철의 꿈>은 근래 보기 드문 참신한 시도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신선한 피들이 수혈되고 있는 느낌”(김태훈)이란 찬사부터 “포스트인더스트리얼한 경관이 선사하는 숭고감. 다만 압도적 경관의 배후에 역사적 감각을 모호하게 은닉해두지 않았나 싶다”(송효정)라는 다소 아쉬움을 지적하는 의견까지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전반적으로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적인 수작이라는 평이다. 7위부터 10위까지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순위가 갈렸다. 7위는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다. 장르영화로서의 충실한 완성도에 비해 과소평가됐다는 반응이다. “소재를 활용하는 속도감 있는 전개. 후반부로 갈수록 추동력이 부족하나 윤종빈의 재기는 그대로”(이화정), “퓨전 사극 장르로서 각 분야 베스트들의 기분 좋은 총력전”(주성철)이란 평이 있었다. 8위는 이용승 감독의 <10분>이다. 과소평가된 영화로 가장 많이 언급되기도 한 이 영화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직장 생활의 애환을 그려냈다. “남의 일이면 그냥 슬플 텐데 남의 일 같지 않아 아프다”(이현경)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잘 포착했다는 평이다. 9위는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다. “역사는 가르치는데 인간은 배우지 않는다”(이용철)라는 평처럼 지존파 사건의 후일담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꿰어낸다. 10위는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과 심성보 감독의 <해무>에 돌아갔다. 둘 다 과대평가, 과소평가 양쪽에 언급될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변호인>은 “상업영화가 추구할 미덕과 영화미학의 접점을 살리려 한 노력”(이현경), “1980년대라는 첨예한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한 인물의 성장극을 통해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를 일깨운다”(황진미)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무>는 “폐쇄공간에서의 광기, 폭발을 유려하게 그려냈다”(김수)라는 점이 장점으로 제시됐다.

한편 올해 과대평가된 영화로 언급된 영화로는 <명량> <변호인> 등이 언급됐다. <명량>에 대해선 “해상 전투 신이 볼만했다는 게 서사에 대한 평가를 미루는 이유가 될 수 없다”(정지혜), “누구 하나 잘못하지 않았어도 커다란 잘못이 돼버린 숫자, 1760만”(송형국) 등 완성도와 산업적 맥락에서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과소평가된 영화는 <10분> <슬로우 비디오> <마담 뺑덕> 등 다양한 영화가 거론됐다. “<마담 뺑덕>은 ‘욕망’을 향한 현대적 드라마를 창조해냈다. 고전과의 비교로 극적인 장점이 평가절하된 면이 있다”(이지현), “<슬로우 비디오>는 마이너한 취향과 의식을 보편적인 호흡으로 풀어내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잘 보인다”(윤혜지)는 점이 근거로 꼽혔다.

한국영화 10선

1 <자유의 언덕> 2 <경주> 3 <한공주> 4 <끝까지 간다> 5 <도희야> 6 <철의 꿈> 7 <군도: 민란의 시대> 8 <10분> 9 <논픽션 다이어리> 10 <변호인> 10 <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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